무형문화재 부익부-빈익빈
무형문화재 부익부-빈익빈
  • 김창의 기자
  • 승인 2011.03.2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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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전승지원금, 종목에 따른 실질적 교육지원 필요

본지는 지난 57호(3월9일자) 기사를 통해, 일부 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 아래 수많은 문하생들이 문화의 전승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보유자의 들러리로 전락한 이른바 ‘문화권력화’ 현상에 대해 집중 보도했다. 지난 기사를 통해 투명하고 바른 중요무형문화재의 계승과 확립은 우리 전통문화 보존과 발전에 있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지적하고, 공정한 무형문화재 선정과 관리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어 본지는 무형문화재보유 종목에 따라 인적, 경제적 격차가 큼에 따른 문제를 제기하고 무형문화재 제도 도입의 취지에 걸맞게 실질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다. -편집자 주-

정부는 1961년부터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충분하고 보존·전승이 필요한 종목에 대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지원해왔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는 120여 종목에 보유자 200여명이 활동 중이다.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이하 보유자). 속칭 인간문화재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1백8개 종목의 전통문화를 재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란 뜻이다.인간문화재로 지정되면 정부의 지원(전승지원금)을 받을 권리가 생기며, 전통문화를 재현해 보여주고 또 후학들에게 가르쳐 전승시켜야하는 의무(전수교육의무)를 지닌다.

일반인이 느끼기에 ‘문화재’로 선정만 되면 모두가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쥐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과연 ‘문화재’로 선정만 되면 ‘고생 끝, 행복시작일까?’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보유종목에 따라 소득격차는 엄청나다.

▲ 위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계없음

월 130만원으로 중요무형문화재 모든 전수교육을?

현재 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에게는 월 100~130만원, 전수조교에게는 월 50~70만원 가량이 ‘전승지원금’으로 지원된다. 국고 지원은 문화재보호법 제 36조와 동 시행령 제 25조에 의거 해 전승활동 및 전수교육의 경상적 경비로 사용된다.우리전통문화의 전승자이며 살아있는 예술 그 자체인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에게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액 절반도 못 미치는 전승지원금 월 130만원은 한편으론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로 보인다. 본지는 지난 호 한 언론계 관계자의 “차라리 주지 말길 바란다. 그래놓고 인간문화재 운운, 창피하지도 않은가. 받는 사람이 초라하다 못해 참혹하다.” 며 안타까운 심정의 토로를 보도했었다.

물론 지금도 전수조교, 이수자 등 수많은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부와 명예를 누리며 국가로부터 전승지원금을 받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보유자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문하생 한명 없이 전통의 승계조차 위태로운 종목이 있고, 인간문화재가 생계를 걱정하는 취약 종목도 상당하다.

지난 1월 문화재청은 중요무형문화재 신규지정을 비롯해 보유자 인정 및 전수교육조교 선정 조사계획을 발표했다. 32종목이 조사 대상이 되는데 그 중 보유자 부재종목 인정조사 대상에서 6개 종목이 결정됐다.
그 중 예능분야는 <거문고산조>와 <통영오광대>가 있고 기능분야로는 <명주짜기>, <곡성의 돌실나이>, <소반장>, <바디장> 이 있다.

전승이 끊어져버린 종목들

중요무형문화재 제88호 ‘바디장’은 ‘바디’를 만드는 기술을 가진 장인을 뜻한다. 바디는 베를 짜는 베틀의 한 부분으로 바디는 대나무로 만드는데 제작과정을 보면 바디살 만드는 과정, 기둥살(일명 날대) 만드는 과정, 마구리를 끼우는 과정, 그리고 갓 붙이는 과정 등으로 구분된다. 대나무 껍질을 섬세하게 가공하는 작업으로 이는 많은 기술과 경험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물을 통해 밝혀진 바로 우리나라는 신석기시대부터 베를 짰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오래된 전통이 바디장 故구진갑 선생의 작고로 인해 끊어졌다.
 故구진갑 선생은 한명의 제자를 두고 있었는데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故 구진갑 선생의 유일한 제자였던 김모씨는 생계를 위해 건설사 직원이 됐다. 그는 ‘지금 당장 생계가 중요한데, 부양하는 가족도 있는데 나만 좋다고 수입이 창출되지도 않는 길에 매진할 수도 없다었다’며 전승단절에 대한 깊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명주짜기’ 또한 보유자가 없다. 예전에는 전국 각지의 가정에서 베틀로 명주를 짜 자급자족했는데, 조선 후기이후 개량식 직기로 대량 제직함에 따라 재래식 명주짜기는 급격히 쇠퇴했다. 오늘날 견직물에 밀려 명주의 수요가 줄어듦에 간신히 명맥만을 이어오다가. 제작기술에 대한 전통을 잇기 위해 성주 명주짜기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했으나, 기능보유자 조옥이 선생의 사망 이후 보유자가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취약종목보유자의 한숨

▲ 위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계없음

취약종목 보유자가 한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무형문화재의 빈인빈 부익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는 “작품만 만들어서는 도저히 이 시대를 헤쳐 나갈 수가 없는 입장이 됐고, 또 작품을 만들어도 고가이기 때문에 판매해도 굉장히 저조하다” 라고 실상을 공개했다. 게다가 3분의 1에 가까운 취약종목 보유자들은 “내 대에서 명맥이 끊길 위기를 느낀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또 도중에 포기한 제자들에게 이유를 묻자 생계곤란, ‘돈이 안 돼서’ 라는 게 대부분이었다.무엇보다 가슴 아픈 건 “50이 넘은 아들이 이 가난한 일을 이어 가는 게 후회 된다” 는 대답이었다.

또 다른 보유자는 많은 수상 경력의 이면에 자리한 깊은 생활의 그늘을 토로했다. “남들은 수상 경력 때문에 잘 사는 줄 알지만 경·조사금이 없어 친척들 보기가 민망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생활고에 제자들이 인테리어 공사장으로 떠나는 것을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진다” 며 말을 잇지 못했다.

수차례 언론에서 보도됐듯, 황실공예품을 만들던 손으로 담배케이스를 만들어 생활비를 충당하고, 생계마저 잇지 못해 전승을 포기하고 건설현장에서 질통을 메는 전수조교가 있다..

이와 같이 경제적 이유로 보유자의 맥이 끊겨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계승이 단절되는 일이 실재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재청은 재선정을 위한 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재선정보다 시급한 일은 우리 전통을 익히고 보존해 나갈 차세대 전승자에 대한 보호와 관리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취약종목 보유자들이 바라는 것은 전수교육장 건립지원 확대,공예단지와 같은 상품판매 인프라 구축, 전통문화상품 관광 자원화 등이다.


무형문화재기능보존협회, 문화재청은 지금

 ‘기능’ 분야 보유자 전원이 소속된 사단법인 ‘한국중요무형문화재기능보존협회’ 관계자는 기능분야 일부 보유자의 경제적 어려움을 일부 인정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몇몇 보유자 및 무형문화재 공예품 판매 활성화를 위해 협회 차원의 전략적인 마케팅을 계획하고 올해 4월부터 3개의 판매장을 증, 개설하는 준비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문화재청은 전승, 또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종목의 보유자를 위해 작품을 국비로 구매해주는 등의 지원을 펼치고 있다. 3년 전 2억 원 이던 예산이 2011년 현재 6억 원으로 증액돼, 문화재청 역시 기능분야 일부종목의 취약함을 부분 인정하고 있다.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도 철저한 계획과 예산 집행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종목에 따른 차등 관리와 지원이 필요하다. 다수의 제자들을 거느리며 TV에 출현하고, 값비싼 공예품으로 경제력을 지닌 보유자가 있는 반면, 빈곤의 늪에 빠져 자신의 생계는 물론 전통 맥마저 끊기게되는 보유자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임재해 교수는 “보유자간의 경제적 격차는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수요의 문제’ 다. 많은 사람이 원하는 종목이 인적, 경제적으로 부유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라고 언급했다. 그는 또 “전승이 힘든 종목과 그렇지 않은 종목에 차등 없이 일률적인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생계비를 지원해 주는 것보다 더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한데 전수교육에서 사용된 실제경비를 지원하는 등의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 고 밝혔다. 서울대 문화인류학과 강정원 교수와 안동대 민속학과 배영동 교수도 전승지원금의 ‘실질적 전수교육’ 경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한번 잃어버리면, 다신 찾을 수 없는 중요무형문화재

▲ 위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계없음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였던 ‘시나위’는 전승자의 해외이민으로 인해 결국 지정해제 되는 신세가 됐다. 현재, 시나위가 중요무형문화재였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민과 사망 같은 부득이한 상황에서 전통 계승이 끊어지는 것도 큰 안타까움을 불러 일으킨다.하물며 끼니를 잇지 못해 전수를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유사한 예로 중국은 문화대혁명 이후 수많은 전통문화들을 파괴했다. 공산주의 이념과 대립하는 유교서적과 문화유적지가 소실, 훼손되며 현대판 분서갱유를 자행한 중국이 최근에  다시 공자와 그의 사상을 되살리는 등의 정책적인 전통문화 부활에 적극매진하고 있다. 매년 수십 퍼센트의 예산을 증액해 전통문화의 복원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사라진 전통을 되찾는 일은, 새로운 전통을 만드는 일보다 어려운 것이다. 중국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문화를 지켜나가려는 의지와 실행이 필요할 때다.

외규장각 도서가 145년 만에 돌아온다. 실체가 있음에도 그것을 찾아오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물며 ‘무형’의 문화를 잃으면 그것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