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만칼럼]문화비판의식은 돋보였으나 디테일이 떨어진다.
[옴부즈만칼럼]문화비판의식은 돋보였으나 디테일이 떨어진다.
  • 이원재/(사)국어고전문화원 학술원장(전 경기대교수)
  • 승인 2011.04.0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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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에서 눈에 띄는 기사 두 개가 있다. 하나는 3월 27일 메인 기사인 <난무하는 서울시 가판대 표창장> 다른 하나는 경남섹션에 나온 <통영 풍광. 어린이와 젊은 관객을 통해 동서양 잇는‘전환’>이다. 

먼저 ‘난무하는 서울시 가판대 표창장’을 살펴보면, 시내를 지나면서 어디서 본 듯한 사진과 글 속에 반전이 숨어있다. 환경미화원의 노고를 치하 하는건 좋지만 길거리 가판대에 광고판을 붙이는 건 졸속행정이라는 이야기다. 기자가 칼럼형식으로 쓰지 않고 길거리 인터뷰를 통해 거리 민심의 반응을 보여줬다. 

지난 몇 년간 물가상승 등으로 국민들 살림살이가 팍팍한데 서울시가 홍보물로 환경미화원을 이용한 반면 급여 인상조차 외면한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전 정권에 대해 선동정권이라고 비아냥거리던 그들이 오히려 시정을 홍보물로 메운 것이다.

둘째 ‘통영 풍광 어린이와 젊은 관객을 통해 동서양 잇는 전환’은 제목이 길어 단번에 내용을 알기 어려웠지만 모던클래식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업적을 기리며 통영국제음악제를 소개했다. 그렇지만 윤이상 선생을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그분의 업적과 일대기가 간략히 소개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 모던클래식계를 이끌던 작곡가였고, 1967년 동백림사건으로 인권탄압을 받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가 아무래도 기사를 이끌어가는 주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좀 더 많이 다뤘으면 하는 기사가 하나 있다.‘스페인 집시피버를 아시나요?’(3월 30일자)가 그렇다.‘세계화’라는 단어가 어느 순간 재벌독점사회 혹은 경제, 금융과 같은 상징으로 축약된 시대다. 문화만큼은 다르다. 미국의 팝 음악과 정체모를 글로벌 댄스가 유행이지만 각 국에는 그 나라 특유의 민족성을 지닌 춤과 음악이 있다.

우리가 흥얼거리며 서민정서가 가득한 탈춤과 마당극에 열광하듯이 외국인들도 그들 나름의 서민문화가 존재한다. 집시문화는 한반도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문화다. 본고장이라는 스페인 뿐 아니라, 인근 포르투갈, 심지어 영국, 아일랜드를 비롯해 슬라브 민족이 사는 북유럽 폴란드부터 남부 지중해에 위치한 크로아티아에도 이들이 존재한다. 이렇게 방대한 영토에 걸쳐 특정한 거주지 없이 이동하며 사는 집시들은 곳곳에 머물며 현지 문화와 섞이면서 다양한 집시문화가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포함된 한맺힌 노래들은 물론 율동으로 마을과 마을을 떠돌며 길거리 공연으로 연명하는 사람들이다. 이를 두고 스페인에 정착한 집시들의 플라맹고 전통댄스를 단순히 볼거리로 생각하지 말고, 그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동시에 제대로 된 교류를 제공 할 수 있는 기사들이 더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