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위에 저 소나무 & 벚나무
남산위에 저 소나무 & 벚나무
  • 권대섭
  • 승인 2011.04.08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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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들...역사의식 갖고 일해야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알고 있을 ‘애국가’ 2절의 구절이다. 어릴 적부터 불렀던 이 노래로 인해 ‘남산’하면 ‘소나무’가 연상됐다. 서울 구경이나, 남산 구경을 못한 사람들도 이 노래 하나로 ‘남산 소나무’는 우리들의 꿋꿋한 기상을 상징하는 명물로 인식됐다. 남산 소나무는 그만큼 유명했다. 옛날부터 내려 온 역사적 뿌리가 있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어린 임금님이 광화문에서 신하들과 어전회의를 하고 있었다. 회의 중 장난 끼가 발동한 임금님이 갑자기 물었다.
“경들은 저 남산 위에 소나무가 몇 그루가 있는지 아는가?”
“........................................”
임금님의 갑작스런 물음에 신하들이 일순간 어리둥절했다.
잠시 후 한 신하가 대답했다.
“남산에는 소나무 2백 그루가 있습니다.”
“어째서 2백 그루란 말인가?”
“소나무가 빽빽하게 있으니 2백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하! 경의 말이 옳소”

남산 소나무는 조선시대, 아니 그 이전부터 유명했음을 짐작케 하는 넌센스 이야기다. 사실 남산 소나무는 조선시대 때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관리돼 왔다. 옛날엔 풍수적으로 남산에 소나무가 무성해야 왕조의 정기가 흥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태종 11년(1411년)에 장정 3000여명을 동원해 20일간 남산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세조 때는 남산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따로 관료와 산지기를 뒀다는 기록도 있다. 이토록 유명한 소나무였으니 저 유명한 겸재(謙齋) 정선(鄭?, 1676~1759 )선생도 그가 남긴 진경산수 여러 그림 속에 남산 소나무를 유독 강조해 그리고 있다. 겸재의 그림 <장안연우(長安烟雨)>나 <필운상화(弼雲賞花)>에 보면 안개 뿌연 한양풍경 너머, 혹은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는 봄날의 풍취너머 우뚝 솟은 남산 꼭대기에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가 의젓하다. 아마도 지금의 남산타워가 있는 자리, 타워를 대신해 서 있었을 그 소나무, 애국가 ‘남산 위에 저 소나무~’할 때 바로 그 소나무일 것이다. 시인 오탁번은 그의 시 ‘남산 소나무’에서 ‘개화기 선비들의 정열과 외국인들의 야욕도 다 굽어 보았을 남산 소나무들...’이라고 적고 있다.
 이처럼 남산 소나무는 역사가 있고, 뿌리 깊은 소나무다. 지금도 남산 사면 계곡 곳곳엔 무성한 소나무로 빽빽하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남산에서 자생하는 소나무는 약 3만여 그루로 추정된다. 수령 100년이 넘는 고목 노송들도 6그루가 있어 보호수로 관리 받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에 1990년대 남산 제모습찾기 사업을 벌여 다른 곳에 있던 소나무 1만 8000여 그루를 남산에 옮겨 심기도 했다.
 남산 소나무는 외세 침략과 함께 훼손된 적도 있다.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예장동 일대에서 일본군이 주둔하며 소나무 벌목이 심했고, 구한말에도 남산 소나무를 베어 낸 자리에 신궁과 신사를 지었음은 다 아는 사실 그대로이다. 일본인들은 소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반드시 그들의 상징인 벚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남산 소나무는 나라의 흥망과 함께 그 애환도 함께 해 왔음이다. 그러니 애국가에서 마저도 ‘남산 위에 저 소나무~’라고 불렀지 않았을까.
  최근 남산 정상 팔각정 인근에 심어진 벚나무 한 그루가 논란이 됐다. ‘니콘 이미징 코리아’라는 일본계 회사가 창립 5주년을 기념해 지난 1월 11일 벚나무 한 그루를 그곳에 심었던 것이다. 서울시는 한 달여간의 심사 끝에 식수허가를 내렸고, 니코 측과 공동관리 책임을 맡았다고 하다. 이에 본지는 남산의 역사성과 그곳 정상을 풍미했던 ‘남산위에 저 소나무’의 상징성 등을 감안, 그곳의 벚나무 식재가 적절치 못함을 지적했다. 이에는 ‘남사모(남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람들과 서울시민들도 뜻을 같이 했다. 물론 생각해보면 벚나무라 해서 우리나라 어디에나 심지 말라는 법은 없다. 벚꽃의 아름다움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 화사함을 좋아해 곳곳에서 벚꽃 축제를 열고 있지 않은가. 굳이 나무가 무슨 죄가 있겠으며, 꽃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다만 하필이면 식민지 기억과 민족의 수난을 떠올리게 하는 그 자리에, 우리들의 상징인 ‘남산위에 저 소나무’가 철갑을 두른 듯 굳건히 서야 할 그곳 정상 팔각정 인근에 그 나무를 심었으니 말썽이 됐던 것이다.
 다행히 서울시는 본지의 지적을 수용, 지난 3월 25일 문제의 벚나무 한 그루를 서울 숲에 옮겨 심었다고 알려 왔다. 일본계 회사 니콘 관계자도 이날 참석해 나무 이식을 지원했다고 한다. 크든 작든 신속히 실수를 바로 잡은 서울시와 니콘 측의 조치는 매우 합당한 일이다. 다만 실무 공무원들이 역사의식을 갖고, 조금만 더 깊게 생각했더라면 이런 번거로운 일은 없었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