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얄패밀리 대한항공...직원들 자살 줄줄
로얄패밀리 대한항공...직원들 자살 줄줄
  • 서울문화투데이 특별취재팀
  • 승인 2011.04.1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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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기 회항사태 내더니 광고마저 ‘재앙’앞에 속수무책

제왕적 운영 부작용,자녀들 주요보직 장악, 비판 목소리 들어갈 틈 없어

카이스트 학생들의 잇단 자살사건으로 사회가 떠들썩한 가운데 국내 굴지의 항공사인 대한항공(사장, 지창훈)이 연이은 직원들의 자살 사건 등 창업 이래 최대 위기에 빠졌다. 대한항공은 최근 예상치 못한 악재가 연이어 겹치면서 이중 삼중의 이미지 타격과 함께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대한항공은 지난 달 12일 대통령 전용기 회항이란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청와대와 불편한 관계에 빠진 데 이어, 일본 대지진이란 세계적 재앙이 하필이면 이 회사가 최근 집행한 일본관광 캠페인이 시작되고 난 뒤 발생해 곤혹스런 입장에 빠졌다. 여기에다 대한항공은 지난 2월과 3월 불과 한 달 사이에 소속 직원 3명이 연이어 자살하는 일이 발생, 사내 업무 패턴과 인력관리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항공기 정비도 못하나...따가운 눈초리

우선 대한항공을 향한 청와대의 눈초리가 심상찮다. 대한항공은 지난 달 12일 UAE를 방문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 일행을 태운 전용기가 서울공항 이륙 후 기체이상으로 회항하는사태를 겪으면서 회사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 사태는 외교일정 차질은 둘째 치고 대통령의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했다. 회항소동은 공기 흡입구 덮개의 나사가 풀리면서 소음과 진동이 발생한 탓으로 밝혀졌지만, 하늘을 나는 항공기의 특성상 작은 고장이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사건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이 사건은 대한항공이 지난해 하반기 이래 겪은 크고 작은 여러 사건과도 오버랩 되면서 이 회사의 항공기 정비체계 자체를 의심케 하고 있다. 비행기 사고는 났다 하면 대형사고인 점을 감안하면, 항공기 정비도 못하는 회사라는 낙인이 찍힐 경우 승객의 외면을 받을 것은 자명하다.

청와대는 이번 사건으로 관련자 문책에 이어 대통령 전용기 운용 시 항공회사 사장이나 회장이 직접 동승토록 하는 문제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용기의 안전운행보장 차원에서 대통령이 탑승할 경우 항공회사의 오너가 직접 동승해 운행안전을 진두지휘 했었다. 이 같은 관례는 지난 해 4월 청와대와 대한항공 간의 5년 간 장기임차계약이 성사되면서 없애기로 했는데, 이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대지진... 광고 직격탄

대한항공의 두 번 째 악재는 최근 집행한 일본 대상 관광안내 광고 캠페인이 하필이면 대지진을 앞두고 진행된 점이다. 엄청난 돈을 들여 야심차게 집행한 광고 캠패인도 아랑곳없이 일본이 대지진 재난에 휩싸이면서 회사 당사자들을 당혹케 하고 있는 것. 대한항공은 올들어 지난 1월초부터 일본관광 승객유치를 위해 ‘일본에게 일본을 묻다’라는 제목의 광고 캠페인을 제작, 일본노선 강화에 힘을 쏟았다. 일본 특유의 풍경과 자연, 건축미 등 여러 가지 테마와 소설가 무라카미 류 등 유명 인사를 동원한 대형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광고가 나간 지 불과 얼마 후 일본 동북부를 휩쓴 대지진이 일어나자 비싸게 제작한 광고를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이는 광고에 등장한 배경 풍경과 문구가 재앙을 예언한 듯한 인상을 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광고의 핵심 영상을 이룬 에도시대 다색 목판화와 집채 만한 파도는 해안을 덮친 쓰나미를 연상케 했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이 전에도 이른바 ‘헛다리 광고’로 큰 손실을 입은 바 있다고 한다. 중국과 호주여행을 대상으로 한 광고가 그것이다. 2009년 7월 ‘중국, 중원에서 답을 얻다’라는 광고는 그 해 발생한 사천성 대지진, 호남성, 중경시를 포함한 중원지역의 홍수와 산사태 등으로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지난 해 2월에 내보낸 ‘나는 지금 호주에 있다’라는 제목의 광고 역시 그 해 12월 퀸즐랜드 대홍수와 올 2월의 사이클론으로 타격을 입고 말았다. 이런 일련의 사태와 관련, 최근엔 ‘KAL의 저주’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라고 한다.

무한경쟁 직원관리만 능사인가

대한항공을 괴롭히는 또 하나의 사태는 최근 한 두 달 사이에 발생한 직원들의 잇따른 자살사건이다. 한 매체에 따르면 지난 3월 7일 늦은 밤, 대한항공 객실 승무본부 권모씨(남, 52 · 사무장)가 숙소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권씨는 청주행 야간 비행근무를 마치고 호텔에서 휴식 중 베란다서 투신했다고 한다. 이보다 단 하루 앞선 6일에도 대한항공 기체 정비팀 박모씨(남, 39)가 자신의 부산시내 자택 아파트서 추락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살사건은 또 있었다. 지난 2월 14일 새벽 이 회사 직원 임모씨(남, 41)가 경기도 용인시 기흥동의 대한항공 신갈 연수원 옥상에서 떨어졌다.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지만 자살사건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꺼림칙하면서도 아픈 사연들을 전해준다.

권모씨의 자살과 관련, 익명의 대한항공 직원들은 대부분 그가 직원들끼리 서로 감시 감독해 고발케 하고, 점수를 매기는 이른바 ‘X맨 제도’의 희생양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권모씨는 2009년까지 국제선 팀장으로 기내 서비스를 이끌었으나 직원을 대상으로 한 근무평가제 도입에 따라 지난 해 8월 하위 5%에 드는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이는 더 이상의 진급 인사 조치 제외와 사실상의 퇴사종용이라는 것이다. 뚜렷한 잘못도 없이 애매한 대우를 받아야 했던 당사자의 스트레스를 짐작할 만하다.

임모씨는 변호사 지원업무를 수행하던 중 정신적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변호사 지원업무란 객실 승무원 징계를 정당화하는 과정의 변호사 업무 보조를 말한다는 것인데, 임씨는 동료의 징계를 정당화해야 하는 자신의 업무 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다고 전한다.

대한항공 직원의 자살사건이 문제시 된 건 수년 전에도 있었다. 2007년 7월 기체 정비팀 최모 과장이 10여 년 간 몸담았던 김해공장에서 그곳 격납고 지붕을 이용, 투신한 사건이 그것이다. 당시 유가족들은 최 과장이 매일 새벽 3~4시에 출근한 뒤, 자정너머서야 퇴근하던 생활 속에 과도한 업무에 시달렸다며 산업재해인정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이 최근 지진 참사를 겪은 일본에 생수를 기부했다. "힘내라 일본"이라고 쓴 격려 구호가 눈에 띈다.(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개인자살...회사와는 아무 관련없다

문제는 이런 일련의 자살사건 가운데도 동료직원들의 권익을 옹호해야 할 노조에서 조차 제대로 된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노조 측 관계자는 이런 사안에 대해 아무도 함부로 말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사실만을 전했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삶의 조건과 한 번 잘리면 다시 취직할 수 없는 사회구조 때문에 동료 직원들이 애매하게 또는 과도한 업무로 죽어가는 데도 자기 목구멍만 쳐다봐야 하는 현실이 원망스럽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간부출신으로 해외 지사장까지 지낸 J모씨는 이와 관련, 자신도 퇴사 때 열흘 간 잠을 잘 수 없는 일을 겪었다며 “동료 간 경쟁과 감시를 부추기는가 하면, 이익을 내는 수치상 능력에만 초점을 맞춰 사람을 평가하는 분위기가 사회전체에 팽배해 가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항공의 이런 상황과 관련, 최근 두각을 나타낸 이른바 한진그룹 3세들의 존재와 연관짓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대한항공 전무와 조원태 전무, 조현민 상무보 등 3세들의 회사 장악으로 혹여 제왕적 운영이 진행되면서 직원들의 업무스트레스가 표출된 건 아닌가라는 우려다. 특히 그룹회장의 장녀인 조현아씨는 최근 계열사인 칼호텔 네트워크의 단독 대표이사를 맡을 정도로 약진했다.

반면 대한항공 관계자는 직원들의 자살 사건은 알려진 바와는 전혀 다른 얘기라고 일축하고 “자살한 직원들이 우울증을 앓거나 하는 등 개인들의 문제로 자살한 것으로 회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이는 유족들이 회사를 상대로 아무런 불만을 표하고 있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는일아니냐”며 직원들의 자살과 회사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어떤 조치를 취하거나, 할 일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자살자들이 대한항공이란 조직에 속해 있었지만 개 개인의 문제로 일어난 자살 사건이기 때문에 회사측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한항공 직원들의 잇단 자살사건이 이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무한경쟁과 이익만 따지는 신자유주의적 풍조 속에 나타난 사회병리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속에 더 이상의 동료애나 공동체적 애사심 따위보다 오직 개인 이기주의와 남을 밟고 이겨야 하는 경쟁관계만 강화, 오히려 회사와 사회 공동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카이스트 자살 사건과 관련 카이스트 89학번 졸업생들의 동문회 모임이 현수막을 통해 내는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있다. “...저급하고 비인간적인 신자유주의식 무한경쟁시스템을 교육현장에 도입한 대학 총장의 잘못된 정책이, 자부심으로 가득찼던 카이스트의 긍지와 명예에 자살공화국이란 수치스런 꼬리를 달아 놓았다...”

대한항공이 최근 겪은 크고 작은 사고와 곡절은 직원들을 자살로 몰고 간 ‘대한항공 판 신자유주의적 무한 경쟁’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과도한 업무, 비 인간적 분위기가 만들어 낸 ‘미스테이크’의 결과물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