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쉬임없이- 서이숙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쉬임없이- 서이숙
  • 김은균 / 공연전문기자
  • 승인 2011.04.21 14: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즈음 부쩍 주가를 올리고 있는 1986년 미추 극단에 입단을 해서 20년을 한결같이 무대를 지켜온 배우이다. TV 채널을 돌리면 겹치기 출연을 하는 배우처럼 그녀 역시 이 작품 끝이 나면 다른 작품에 계속 출연하고 있다.

 “아휴, 살다 보니 이럴 때도 있네요. 앙상블에서 한 장면이라도 더 나오려고 애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너무 자주 공연해서 관객이 싫증내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요. 작년에는 <리어왕> <피카소의 여인들> <고곤의 선물> <갈매기> 지금 <엄마를 부탁해>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달려오고 있지요.
오래 굶었는데 못할 게 뭐가 있겠어요. (웃음) 내가 무대에 조금 더 많이 얼굴을 드러내며 재미있는 걸 보여주게 생겼는데 말이에요. 앙상블 시절, 한 장면에라도 더 나오게 되면 얼마나 좋아했던가를 떠올리면 신이 나요. 예쁘게 보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그녀는 원래 배드민턴 선수 출신이었다.“수원시 농촌진흥청 배드민턴 코치로 일하던 1986년‘반공무원’생활이 답답해 스무 살 나이에 입단한 곳이 극단 수원예술극장이었어요. 1988년 전국연극제에서 노인 연기로 여자연기상을 받은 뒤 극단 미추에 들어갔지요. 연극사관학교 같은 커리큘럼이 맘에 들어서 입단하고 여기가지 오게 되었습니다. 1989년 극단 미추에 입단하면서 지금까지 어느덧 배우 경력 20년째 접어들고 있네요.
김성녀, 윤문식, 김종엽 등 대선배 밑에서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치며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 왔지요. 저는 같은 꿈을 가진 배우들끼리의 부대낌이 좋았고 서로에 대한 연민으로 많이 의지했지요. 전 지금도 동료, 후배들이 연습실 마루를 쓸고 닦는 모습만 봐도 가슴이 떨려요. 배우들에겐 신전과 같은 곳이지요. 몸 풀고 뒹굴며 집중하는 연습공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내 연습 장면이 없다고 자리를 비우면 금방 티가 나요.
이상하게도 연기에 이물질이 묻어나죠. 난로 앞에서 졸고 있더라도 연습실에서 함께 호흡한 공기가 그대로 무대 위 에너지로 승화되는 걸 느낍니다.”

그녀를 세상에 알린 것은 동숭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연극열전 <허삼관 매혈기>에서 그녀의 진가가 나타나기 시작했었다.
“이 작품을 할 때에는 공연 보름 전 어깨골절로 전치 6주의 진단을 받고서도 끝까지 무대에 서겠다고 고집을 부릴 만큼 제게는 애착이 가는 연극이에요. 깁스한 채로 아직 뼈가 완전히 붙지 않아 공연 때만 잠깐 붕대를 풀고 연기를 했었지요. 수술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정말 울고 싶었어요. 평소 배우는 몸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강조하시던 김성녀 선생님께도 면목이 없었고요. 그래도 공연을 못한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붕대를 감고서라도 무대에 섰지요. 다행히 공연결과가 좋아서 다행이었지만 지금도 그때만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해요.” 

그런 만큼 그녀에게 김성녀 선생님은 절대적인 존재이다.
“21살 때 수원에서 상경해 미추 단원이 된 뒤 줄곧 한우물만 팠어요. 함께 입단한 여자 동기들이 오랜 훈련기간을 견디지 못한 채 하나둘씩 떠날 때에도‘언젠가 기회가 오겠지.’하며 끈기 있게 기다렸지요.
김성녀 선생님은 아파 누워 있는 제게‘진통제 먹고 공연해.’라고 말할 정도로 연기에 있어서는 엄한 스승이시죠. 하지만 배우로나 인간적으로나 제가 가장 닮고 싶은 모습이에요.”

이제는 고생한 것에 대한 영예를 누릴법한데도 그녀의 대답은 의외였다.
“연극은 평생의 업이고, 삶은 40이 되어야 무르익는다고 생각해요. 저는 길고 얕은 연기 인생을 꿈꾸고 있기에 15년이라는 긴 무명생활도 제게는 큰 고민거리가 되지도 않았어요. 이제부터는 꾸준히 한결같은 배우가 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