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바다가 그림 그리는 '통영토박이' 서형일 화백
[인터뷰] 바다가 그림 그리는 '통영토박이' 서형일 화백
  • 홍경찬 기자
  • 승인 2011.04.30 21:09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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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바다...골목골목은 서울과도 바꿀 수 없는 세계적 브랜드

[서울문화투데이 경남본부=인터뷰 김충남 본부장, 사진/정리 홍경찬 기자]4월 벚꽃이 봄눈되어 흩날리는 날, 세포고개를 넘어 산양읍 삼거리와 야솟골을 지나 통영 산양읍 신전리를 찾았다.

 초록이 곧 연두에 물들 박경리 기념관 바로 옆 양지농원 '통영, 바다의 화가' 서형일 화백을 만나기 위해서다. 잔잔한 호수가 때론 성난 파도로 돌변하는 통영바다. 하지만 그 쪽빛 바다는 통영 문화예술인들의 원천이자 자랑이다.

 1943년 3월 6일(음)생인 통영 토박이 서형일 화백은 바다의 화가다. 바다색을 건져 올리기 위해 아예 매물도서 십이 년 한 여름을 살았다.  십이 년 겨울 설악산과 오 년 지리산 작품 활동도 주요한 시기였다. 파도와 바람색을 잡은 요트(통영시 요트협회 전 회장)도 몰 줄 아는 선장이다. 한려수도 구비 구비 흐르는 바다를 작업실 삼아 배 위에서 천혜의 비경을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화가다.

통영 고기잡이 어선과 여객선은 눈 감아도 그려 내는 통영의 대가이다. 해저문 노을이 황금빛으로 변하는 모습이나, 밀물의 움직임과 제각기 다른 파도 높낮이, 수면 아래 물속 높낮이까지 꿰뚫은 화가다. 바다가 그림을 그리는 그 찰나의 순간과 통통배 엔진소리 잡음을 없앤 바다, 그 고유의 소리를 화폭에 담아낸다.

고희의 나이인 서화백은 오로지 그림만 그리면 편하단다. 비우면 채울 수 있는 그 자리에 부귀영화를 다 비우고 통영 바다로 화필을 힘껏 쥐었다.

차분하면서도 지적인 그는 원래 경북대서 철학을 전공한 학구파다. 로마 국립미술대학교를 수료한 학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흔 평생 통영 고기잡이 배를 화폭에 담아내고 승화시켰다. 서형일 화백의 '통영, 바다의 소리' 여정을 대화를 통해 들여다 봤다. 

 김충남 본부장(이하 김): 어릴 때부터 뵙던 형이라 그런지 편하고 인자하셔서 늦게 방문했습니다. 고향 통영에 머문 이유는 무엇인지?

 서형일 화백(이하 서): 괜찮다. 지금 얼굴 보면 된 거지. 통영 브랜드 대단한 거다. 故 전혁림 화성 장례식 내내 통영을 그려낸 대가의 면면을 봐왔지 않은가? 통영 골목골목 하나는 서울 전체와도 바꿀 수 없는 세계적인 브랜드다. 이를 잘 연결해야 한다.

 머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고향 땅과 바다가 주는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 선생 예술 혼이 있다는 거. 사람이 살아 가면서 자연이 주는 좋은 공기와 물이 기본이다. 통영은 그것들을 다 갖춘 곳이 아니던가? 두말하면 잔소리지(웃음).

 복잡한 도시 속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또 통영은 한 바퀴 도는데 시간이 적게 걸린다. 250여개 통영 섬 탐방은 바다를 감상해 통영 빛깔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버티니 일흔 나이에 나를 보네. 세월도 잘 흘러 간다. 외국으로 로마, 그리스, 베니스, 프라하, 스페인 등지를 돌아 다닐 때도 통영은 향토적인 것이 국제적인 것이기 때문에 늘 그리웠다.

▲ 서형일 화백이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1970년대 초기 작품을 선보이며 함박 웃음을 보이고 있다.
  다른 하나는, 공부는 객지서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작품 활동을 했다. 지역에 보탬이 돼야 하고 통영문화예술을 알릴려고 부단한 노력을 해 왔다.

 재미있지만 사실인 이야기 하나 해줄까? 화가 진의장 (전 통영시장)이 그러대 "형님 안 죽고 통영서 살아 있는 게 기적이다"며 "통영서 교우 관계는 답답한 게 많다. 문화 마니아가 적으니 어려움도 있다"라고 틀린 말이 아니지. 통영은 인간관계 시달려서 오래 못산다(웃음). 통영 자체가 인간관계가 복잡해 명대로 사는 사람 있나?(웃음).

 화실에 적어 놓은 글 봐봐. '나에게 늙어 가는 것도 없다. 그리고 젊음도 없다. 다만 나의 인간적인 삶에 충실 하는 것 뿐이다.(2011.3.5일 오전') '예술가에는 승리가 없다. 고독과 고통의 그것이 승리인 것이다.(3.5일 오후)

 바다가 없으면 나는 못 산다. 바다를 옆에 두고 늙었다. 통영시 자체가 미술관이 됐으면 좋겠고 집집마다 그림이 걸려 있는 걸 생각만 해도 좋네(웃음).

▲ '통영, 바다의 화가 서형일 화백'. 붓은 화백이 쥐고 있지만 바다가 그림을 그려 주는 통영 바다의 화가.

 자유롭게 살고 싶다. 자고 일어나고 먹고 움직이고, 이동 시간이 적으니 시간 여유도 많다. 통영 요트협회장, 테니스 코치, 통영시수석회연합회장 등 친목단체 활동도 했는데 이유는 문화와 연결을 위해서였다. 정말 쉽지 않다.

 김 : 박경리 선생 기념관 바로옆에 작업실이 있어서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문인과 화백의 만남이랄까? 박경리 선생을 만나신 적이 있으시죠? 

 박경리 선생을 십 년 전에 원주서 만났다. 보름간 전시회가 있어서 찾아 갔더랬지. 통영서 온 화가라고 하니 삼십 분을 허락해 주데. 근데 두 시간이 지나도록 통영 이야기에 흠뻑 젖어 내 손을 부여잡고 안보내는 기라(웃음).

 당신이 통영으로 오시면 제일 가 보고 싶은 곳이 세포고개(현 미수동인 미우지와 산양읍 경계)라 전했다. 박경리 선생이 상념에 잠기다 집으로 돌아 오던 그 곳이라고. 죽어서지만 당신 원대로 묘소(산양읍 신전리, 박경리 기념관)가 세포고개를 넘어오지 않았나?.(세포고개를 넘으면 전혁림 화성 묘소도 있다.)

 박경리 선생이 늦게라도 오셨으니 다행이다. 통영 오셨으면 몸도 안 아프고 하셨을 건데. 항남동 뒷골목우동집에서 함께 먹은 게 마지막이었다. 한 달 후 작고 했네. 박경리 선생의 창의성과 작품성을 후세대는 명심해야 한다.

▲ 바다의 화가 서형일 화백과 서울문화투데이 김충남 경남 본부장이 양지농원내 화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 서울과 통영의 문화 차이를 말씀해 주신다면?  

 서: 난해한 현대미술도 금방 고전이 되버린다. 인사동이 그러하다. 정체성과 사고성이 서울과 달리 약하고 아집과 매너리즘에 빠진다. 창작 활동하는 범위가 좁고 문화교류가 약한 것은 문화공간과 문화를 사랑하는 수가 적기 때문이다. 인구가 적어서 그런가? 암튼 부족하다. 깊게 분석하고 관심을 가지자. 사고의 창의성을 길러야 한다.

 김: 통영 타래망 어선(큰 돛을 이용 풍력으로 고기잡이 하는 어선, 통영서 우다시라 칭함)의 대가 라고도 불리 운다. 이는 어선을 타보고 만져보고 그물 당겨보고 그래서  향토색이 짙게 담긴 작품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서: 맞다. '선과 색채'의 전시회에서 작품을 본 관람객이 연락이 왔는데 스페인 배냐고 물어 보더라. 통영 어선인데(웃음). 배를 보면 낭만적, 자연 친화적이다. 태어난 곳이 동호동 252번지였다. 동호동 남망산 위로 올라 바라 본 강구안 야경도 일품이다. 낮과 밤에 입출항하는 배는 너무나 아름답다. 부산과 여수를 잇는 여객선이 들어 올때는 가슴이 두근 두근 거렸다. 그때 한여름 밤 12~1시사이에 강구안에서 수영을 하면서 별을 보고 자랐다. 지금은 수영을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김: 작업실에 주로 혼자 계시는데 외롭지 않으신가?

 서: 외로운건 당연하다. 작품에 몰두하다 보면 대화가 단절되잖아. 그래서 배낭여행을 많이 다녔지. 일본,동유럽,프랑스,독일 등 미술관 방문 목적으로 여행했다. 라면봉지 몇 개 배낭에 집어 넣고 기차에서 많이 잤다. 그러니 스트레스가 풀리데, 외로움이 풀리고 침묵으로 조용히 그림만 그릴 수 있었다. 복고적인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가 철학을 전공했다. 내가 좋아 하니 내 그리고 싶은거 마음대로 그린다. 

▲ 서형일 화백 아뜨리에 내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김: 대학 전공을 철학과로 하셨는데 동기는 무엇인가요?  

 서: 원래 문예창작과를 갈려고 했는데 형이 문학을 하려니 철학을 모르고서는 안되겠더라 일러 주데.
그래서 철학과를 갔지. 고2 때부터 철학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근데 대학입시 원서를 고교 담임이 안써주더라(웃음). 그때 죄 지은거 같기도 하고 가슴에 못이 박히데.

 입학 시험을 같이 치룬 죽마고우 국문학 조운복 박사(명예퇴직 부산대 국문학과)를 그때 만났는데, 철학과 시험 본다는거 숨기고 국문과 시험 본다고 거짓말하고 나왔는데 보고 있었던기라. 불러 세우더니 "국문과 시험장소가 여긴데 어디로 시험보러 가냐"며 붙잡더라 그때 인연이 됐다(웃음).

 미학이 미술의 근본인 것도 배우고 거기서 많이 배웠제. 하지만 건강이 여의치 않아서 평생을 병원에서 보냈다. 통영서 휴양차 틈만 나면 도시락 싸들고 용화사 올라 가서 그림을 그렸제. 매물도는 바다를 더 가까이 알려고 오래 머물렸다. 거기서 기분도 좋고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통영고교에서 70~1년 1년여간 미술교사도 했지만 그림 그리는 시간이 부족해 그만뒀다. 그길로 오로지 그림에만 전념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간도 컸다'(웃음). 

▲ 통영 다래망 어선(통영에선 우다시라 지칭)의 대가 서형일 화백.

 김: 당시 통영 상황을 더 자세히 알려 달라.

 서: 70년대에는 수레에 작품을 실어서 다방을 전전하며 전시회도 많이 했지. 한려 다방, 호심 다방, 아시아 다방(당시 항남동)서 전시회를 했는데 손님 맞이에 하루 커피만 수십 잔을 마셔 댔다(웃음).

 아버지가 남긴 유언이 기억나는데 "그림 그리지 마라 고생한다"며 "다방서 그 돈 20만원(당시 공무원 월급이 8~9천원) 벌거라고 고생했나?"라며 전시회때 작품 판 금액이 20만원이었는데 엄하게 꾸짖더라.

 부친이 주물공장, 권현망 어선, 제망회사, 그물공장 등을 했다. 당시는 큰 부자였지. 아들 화가로 고생 안 시킬려고 했다. 집안에 둔 돈을 은행에 맡기라고 심부름을 자주 시켰다. 돈가방이 얼마나 무겁던지(웃음). 그림 그리지 말라는 우회적 표현이었지. 그땐 팔린 그림보다 액자가격이 좋고 비쌌지(웃음).

 그거 아나? 내가 4호짜리 작품을 완성하는데 옆에서 건축업자는 건물 4채를 짓더라. 내 4호 작품이랑 건물 4채랑 같은 거 아이가?(웃음).

▲ 요트를 소재로 왕성한 작품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바다의 창 서형일 08년작 오일 캔버스

 김: 통영예술지(통영예총 발행) 2011년 제11호에 '바다의 창' 작품도 실렸는데 통영 바다를 그린 이유는?

서: 그래. 일년에 한 번 나오는 통영예술지인데 앞 표지에 실렸다. 내 마음의 영역이 없으면 국적이 없지 않나? 바다를 택하니 이젠 바다가 그림을 그려 준다. 통영 바다는 예술의 고향이기도 하다.

 바다가 광범위 하다. 심해도 있고 파도의 높낮이도 있고 섬 지역마다 바다 색도 다르고 엄청난 거다. 난 그저 바다에 몸을 던졌다. 바다 속에서 답을 찾아야겠다. 이걸 수백 번 수천 번 되뇌었지. 지금은 이제는 내일 죽더라도 하고 싶은걸 해야겠다는 고집이었지.

 그림을 그리니 내 영혼도 평안해지고 두려움도 없어졌다.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 개념도 줄어들고 오늘과 내일도 모르고 전념하다 보니 얽매이는것도 싫어하고 자유로운 걸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세월이 이만큼 왔네.

 통영에 머물러도 한국 화단의 누가 누구인지는 다 안다. 멀리 갈 필요 없었고, 다들 내 화실에 들렸지. 만날 때 마다 내 가슴속에서는 통영이 가지고 있는 그 본질을 그려야겠다는 일념이 생기더라. 하루 13시간 이상 작품에 몰두했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이제 느낀다. 예전엔 3일 잠을 안자도 거뜬했는데 이젠 2일 잠을 안자면 피곤해지네.

 이젠 붓은 내가 쥐고 있지만 바다가 그림을 그려준다. 바다색뿐만 아니라 꽃들도 얼마나 색이 많노? 동백꽃, 호박꽃, 비파꽃 등. 영혼의 깊은 한이 담겨 있는 황금빛. 그 황금빛 말이다. 황금빛을 보고 영혼의 편안함을 느낀다. 통영 해질녘 황금빛도 좋고.

▲ 통영시요트협회장도 역임한 서형일 화백은 요트를 타고 나가 한려수도 비경을 화폭에 담을 수 있는 유일한 화가이다.

 김: 통영요트협회 회장도 하셨다.

 서: 요트 그림도 많다. 요트로 이태리 바다의 도시도 돌아 보고 프랑스 마르세유도 가봤다. 한국은 농업문화지만 통영은 독특한 해양문화가 있다. 이게 발달하면 좋겠다. 곧 될 거라 확신한다.

 해양 살롱문화 말이다. 마음이 통하는 분들과 요트에 몸을 실고 바다로 나가서 바람 따라 맡기는 거다. 와인도 마시고 맛있는 생선회와 음식도 먹고 정보 교환도 하는 요트문화를 접목시킬려고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요트 그림 전시회도 하고 싶다.

 배와 산위에서 보면 바다 색이 수시로 변하고 배도 파도를 따라 움직이니 그림이 정말 어렵다. 흔들리는 배 위니 오죽 했겠노.

 통영 바다에는 어릴 적에 수많은 어선과 부산과 여수를 오가는 여객선이 전부였다. 지금은 주변 조선소와 도남동 요트계류장에는 각종 요트가 수두룩하다. 요트를 타고 강구안을 지나 한려수도를 항해하면 통영 바다색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

 50ft (길이 17m) 요트를 타고 강구안과 경유해 세계 바다의 항구를 돌아보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 요트에서 먹고 자고 그림만 그린다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이지. 강구안 곁에서 삶을 마감하고도 싶고...
통영 강구안을 보면은 여황산 북포루, 세병관, 동피랑 동네를 내 마음속 작품에 담아 그리제.

 인터뷰를 마치고 화실에 전시된 작품 감상 하노라면 서형일 화백을 닮은 거짓 없는 솔직함이 전해져 왔다. 서 화백의 붓 터치를 따라 가 보면 화가의 몸도 함께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전해져 온다. 바다를 터득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그림이다. 서 화백의 성품마냥 솔직함이 붓에 실렸으며, 경험에서 풍기는 색의 화려함은 꾸미지 않고 절제된 그의 바다 소리를 들려준다. 쏴르르륵 통영 바다 말이다.

▲ 타래망 어선(큰 돛을 이용 풍력으로 고기잡이 하는 어선. 일명 우다시)의 대가 서형일 화백 88년 작 오일 캔버스.

 

<서형일 화백 약력> 

한국미술협회 통영지부장 역임

 한국미술협회 경남지회 부지회장

 경상남도 미술대전 부운영위원장

 국제교우회 회장

 한국전업미술가협회 경남지회 운영위원

 경남 국제조각 심포지엄 조직위원회 자문위원

 제21,22,23회 경상남도 미술대전 운영위원

 경상남도 미술협회 간사

 연명 예술촌 촌장

 (현)경상남도 원로 작가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통영지부 고문

 화실: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1429-2 T:055-646-9088
 E-mail: maemulss@yahoo.co.kr

 1950 통영 초중고등학교 졸업

 1965 국립 경북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 졸업

 1983~84 로마 국립미술대학교 수료
         로마 시립 장식 미술학교 수료

 1971~2003 개인전 13회 (통영,부산,대구)

 1985 삼인전 (마산 한성다방)

 1968~88 선과 색전(서울 표화랑,동덕미술관,프레스 센터, 광주 가든미술관 남봉미술관)

 1986~94 한일 미술관합동전 (KBS 창원전시관)
          일본 협산미술관전(일본)

 1991~94 91~94 회화제(서울시립미술관,부산문화회관,세종문화회관)
        한국의 자연전(서울 정도전 600년 기념전,청학미술관)

 1994   경남전업자창립전 (마산 동서화랑)
       한국전업작가창립전(서울 시립미술관)
       경남미술대전(진주문화회관)

 1998~2000 제1회 서울 시민의 날 기념 구성작가 96인 회화제

 1999  동서미술현재전 (목포)
      전업작가 가을대작전 (창원 성산아트홀)

 2000  새천년지평전 (전남 순천문화회관)
       연명예술촌 개관기념전 (연명 갤러리)

 2001  한국전업작가 경남지회 정기전 (진해시민회관)
       동서미술현대전 (창원 성산아트홀)

 2002 선과 색 창립 20주년 기념전 초대작가 (서울 공평아트센터)
     소품 초대전 (통영,미소가 있는 치과)

 2004 경남도립미술관 개관초대전(경남도립미술관)
     부산녹향회전 (부산시립미술관)
     원주미술관 개관전 초대작가 (원주미술관)

 2005 한국구상표현전 (마산 삼진미술관)
     경남 원로작가전 (마산 삼진미술관)
     경남전업미술관협회 ART FAIR 1회 부스전 (창원 성산아트홀)

 2006 경남 원로작가 3회전 (마산 대우 갤러리)
     한일 친선 미술교류전 (통영시민문화회관 대전시실)

 2007 경남 전업미술가협회 ART FAIR 2회 부스전 (창원 성산아트홀)
     통영미술인 옻칠그림이색전 (통영옻칠미술관)

 2008 제5회 경남 원로작가전 (통영시민문화회관)
     (국립현대미술관, 찾아가는 미술관) '통영, 꿈엔들 잊으리랴' 전 (연명예술촌)

 2009 20세기 경남 미술 i,ii 회화전 (경남도립미술관)
     GREEN & BLUE 2009 도산예술촌 창립 10주년 기념교류전 (도산 예술촌)
     제9회 통영 여수 미술교류전 (진남문예회관)
     통영화우회 (통영시민문화회관 대전시실)
     경상남도 지회전 (마산 3.15 아트센터 전시실)
     통영시 제2청사 개청 기념 통영미술협회 특별전
     Inspiration (원로 중진작가 21 초대전)(부산,경남,전남,제주
     그룹전 100회 이상 초대출품

 2010 '통영, 바다의 소리' 개인전 통영시청 해미당 갤러리    

 

▲ 서형일 화백의 화실 내 풍경. 바다와 관련된 대작들이 전시돼 있다.
▲ 서형일 화백이 공개하지 않았던 70년대 초기 작품을 선보였다.
▲ 소매물도 등대섬. 서형일 화백은 매물도에서 칠 년간 거주하며 바다의 비경을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화가이다.
▲ 바다의 소리 오일 캔버스 2010 서형일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