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코너]사위질빵 꽃
[에세이코너]사위질빵 꽃
  • 조 헌 / 수필가·중동고등학교 교사
  • 승인 2011.05.0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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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사위와 씨아는 먹어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다.
목화씨를 뽑는 씨아는 잘 먹어도 도대체 안 먹는다고 하듯, 대접하는 사위가 음식을 충분히 잘 먹고 있어도 왜 그리 안 먹느냐고 조바심을 내며 자꾸 권한다는 뜻인데 사위에 대한 장모의 애정이 듬뿍 담긴 말이다. 또‘사위 반찬은 장모 눈썹 밑에 있다’는 말도 있다.

어떻게든지 융숭한 대접을 하고 싶은 장모가 눈에 띄는 것은 모두 찾아 밥상에 올려줌을 비유해 이르는 말로 극진한 장모 사랑이 한껏 느껴지는 말이다. 과연‘사위사랑은 장모’라는 말을 왜 예부터 쓰고 있는지 알 것 같은 말들이다.

시골에 가면‘사위질빵’이라는 야생 풀꽃이 있다. 미나리아재빗과에 딸린 여러해살이 덩굴식물로 물기 있는 산기슭이나 양지바른 들판에선 두어 발씩이나 크게 자란다.
꽃은 이른 여름부터 시작해 더위가 가실 때까지 집 부근이나 냇가 그리고 야산 입구를 하얗게 물들이며 번지듯 피는데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풀꽃 중 하나다.

주변의 나무나 키 큰 풀을 감고 올라가 피는 하얀 꽃은 멀리서 보면 마치 눈이 쌓인 것처럼 보이고 꽃송이 하나하나가 눈송이를 닮고 있어 나름대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야생화이기도 하다. 그런데 덩굴식물이라곤 하지만 칡덩굴처럼 질기지 못하고 손으로 툭 건들면 끊어질 정도로 연약해‘백근초’라는 버젓한 이름을 두고도‘사위질빵’이란 별명을 갖게 됐다. 그전부터 우리나라에선 사위를 귀히 여겨왔지만, 가을걷이를 하는 추수 때만큼은 사위도 불러서 일을 돕게 했던 풍습이 있었다. 하지만 백년손님인 사위를 다른 일꾼들과 똑같이 힘들게 일을 시키다보니 장모가 그만 미안하고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위의 지게에 얹은 짐을 슬쩍슬쩍 자꾸 덜어내다 보니 다른 일꾼들이 그것을 눈치 채고 사위질빵 덩굴로 멜빵끈을 엮어서 져도 끊어지지 않을 거라며 부러움에 놀려댔다 해서 붙여진 정겨운 이름이다.
흔한 잡초마저도 그냥 이름 짓지 않고 사랑과 정을 고스란히 담은 선인들의 지혜가 마냥 도탑기만 하다. 그러나 어쩌란 말인가.

어떤 이의 장모가 필시 또 다른 사람의 시어머니도 될 터인데, 사위질빵 근처엔 가시가 사납게 돋은‘며느리밑씻개’나 밥알 두 개가 꽃잎에 매달려 애처로‘며느리밥풀꽃’도 지천으로 피는 것을. 속 다른 인정의 야박함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여하튼 이번 주말엔 항상 사위걱정에 자애로운 눈길을 감추지 못하는 장모님을 위해 잘 익은 홍시 한 바구니를 준비해 처갓집엘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