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 속에 앉아 - 박지우
[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 속에 앉아 - 박지우
  • 이소리 / 시인, 본지 논설위원
  • 승인 2011.05.0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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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 속에 앉아

                                                                       박지우

산들바람이 때때로 먹물 같은 어둠을 흔들고 갑니다
별이 쏟아지는 산의 겨드랑이에 안겨 흑염소는 꿈을 꿉니다
바람이 지나갑니다
미닫이문을 열고 반쯤 내민 은둔자 하나
별들이 맛있게 익길 기다립니다
새콤 달콤 사과밭에 뜨는 별
다닥다닥 토마토 밭에도 별이 뜹니다
흑염소의 짭조름한 물그릇으로 별들이 뛰어내립니다
오가피주처럼 붉게 익어가는 장수의 밤하늘
흑염소의 눈이 반짝 빛났습니다
노인들은 흑염소를 몰고 하나 둘 떠났습니다
오래 살지 못한 장수의 흑염소
수없이 별을 토해냅니다


*‘산들바람이 때때로 먹물 같은 어둠을 흔들고’가는 그 자리, 별이 쏟아진다.
그 자리에 있는 흑염소는 그 별을 맛있게 먹는다. 별은 사과밭에도 뜨고, 토마토 밭에도 뜨고, 물그릇에도 뜬다. 흑염소는 그 별을 몽땅 다 먹으며 오래 사는 꿈을 꾸다가 마침내 별이 되어 또다시 별을 토해낸다. 마침내 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