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열전]나는 연극에서 정직을 배웠다 - 백 성 희(1)
[배우열전]나는 연극에서 정직을 배웠다 - 백 성 희(1)
  • 김은균 / 공연전문기자
  • 승인 2011.05.0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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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봤던 연극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백장극장에서 올려진 <삼월의 눈>이었다. 그 작품에서 “연기가 난지 내가 연기인지?” 모를 정도로 장민호 선생과 백성희 선생의 연기는 자연스러웠다. 언제 이런 작품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프레스 콜을 비롯하여 세 번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분장실에서 찾아본 백성희 선생님은 겨울에 편찮으셨다는 데 상기된 혈색이며 건강해 보이셨다. 선생의 건강법은 아마도 매일 하는 스트레칭에서 연유한다. “젊었을 적부터 무용을 했던 덕분에 지금도 몸이 늘 그 체중을 유지해요. 배우는 몸이 연기의 도구 아닙니까. 그렇지만 무슨 헬스니 이런 데 가지 않아요. 20대부터 꾸준히 해온 운동이 있어요. 내가 그냥 자리 운동이라고 얘기하는데 스트레칭 같은 거죠.

20대부터 늘 했던 거예요.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보통 30~40분하고 시간에 쫓길 때는 20분도 해요. 가끔 새벽 집합 때문에 못 하고 쫓아 나가는 날은, 어쩌다가 운동하는 사람은 운동하고 나면 몸이 여기 저기 찌뿌듯하다고 그러는데 나는 못 한 날이 그래요. 둔하고 머리도 잘 안 돌아가고. 습관이라는 것이 참 무서운 거네요. 그게 제 건강관리 비결이에요.”

선생이 무대예술에 입문한 것은 무용에서부터이다. “연극하기 전에 ‘빅타 무용 연구소’에 들어가서 무용 기초를 배웠어요. 그때가 18살, 고등학교 때였어요.  춤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작은 외삼촌이 그때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계셨는데, 어느 해 나오시면서‘다카라즈카 소녀가무단’의 팜플랫을 들고 나오셨어요. 그 팜플랫이 워낙 두껍고 큰 책 같은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총 천연색 화보가 없을 때니까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슬쩍 봤더니 웬 미남들이 도열을 해서 다리를 칼로 벤 것처럼 쫙 뻗치고 서 있는데, 실크 모자에 연미복을 입고 서 있는 모습과, 뒤 조명, 그리고 흑백의 조화가 너무 아름다워요.

그런데 거기 한 가운데에 미끈한 남자 하나가 실크 모자를 살짝 벗어 들고 한쪽 손에 단장을 들고 서 있는데, 그때가 국민학교 5학년 때였는데, 너무 멋있어서 나도  모르게 “이 남자, 정말 잘 생겼다~!”는 말이 나왔어요.   그런 소리를 했다는 것도 나중에 들어서 알았어요. 그러니까 삼촌이 “야, 임마! 그거 남자 아니야, 여자야!” 그런 거 보는 거 아니라고 책을 뺏겼지만 여자라는 말에, 나도 이걸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충격 같은 걸 받고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랬다가 고등학교 가서 어느 날 신문을 보니까 ‘빅타 무용연구소 연구생 모집’ 그걸 보고 쫓아가서 오디션을 본 거예요. 그 광고를 보는 순간 학교고 집안이고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고 옛날 팜플랫에서 봤던 사진하고 외삼촌이 여자라고 했던 생각만 가득 차서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신문 들고 벌벌벌 떨기만 했어요. 그래서 그 이튿날 학교를 안 가고 학교 가는 길에 신문에 난 주소를 보고 찾아가서 시험을 쳐서 합격이 됐어요.

나중에 보니까 빅타 가극단 전속 무용단이에요. 거기에서는 무용의 기초를 배웠어요. 우리 무용도 배우고 발레도 배우고, 무용을 배우니까 음악은 저절로 배우고, 그런데다가 성악과 목소리도 훈련을 시켜요. 곁눈질 할 사이 없이 그거 쫓아가는 것만 해도 바빴어요.

서항석 선생님이 거기 전속 작가로 되어 있으셔서 뭘 주로 했느냐 하면 우리나라 고전, <춘향전>, <심청전>, <장화홍련전> 이런 소설들을 가극화했어요. 내가 거기 가서 제일 처음 한 것이 심청전인데 ‘뺑덕엄마 역을 했었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 에밀레종을 했는데 혜공왕 어머니인 섭정왕후 역을 했어요.

그런데 서항석 선생님이 함세덕 선생님과 아주 친하세요. 서항석 선생님이 각본하신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면 함세덕 선생님이 와서 보시고, 또 함세덕 선생님 작품이면 서항석 선생님이 가서 보시고, 그렇게 오고 가고 하시는 동안에 내가 맡은 역인 뺑덕엄마와 섭정마마 역할을 함세덕 선생님이 다 보신 거예요.  그러더니 어느 날 서항석 선생님한테 저 아가씨 연극에 소질 있다고, 연극하도록 권해보라고 그러셨대요.

그래서 서항석 선생님이 나한테 오셔서 “연극 안 할래?” 하시길래 연극하고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웃으시면서 문학으로 치면 연극은 순수문학인 거고 이건 대중문학이라고 쉽게 알려주셔서 연극이라는 두 글자를 알게 되었지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