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화를 사랑하는 CEO] 가나안 제1 농군학교 김평일 교장
인터뷰 /[문화를 사랑하는 CEO] 가나안 제1 농군학교 김평일 교장
  • 이은영 편집국장
  • 승인 2011.05.2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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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젊은이들...나눔의 정신으로 세계 향해 나갈 때

부모가 모범 보일 때, 자식들은 절로 바로 돼... 효도도 거기서 출발
어린시절 꿈은 영화감독이나 사진작가... 맨손으로 일군 가나안정신 길이 이어져야.
북한사람들이 남한사회 따뜻함 느낄 수 있게 해야 진정한 화해·통일준비 되는 것.

최근‘정일형·이태영 박사 기념사업회’로부터‘제15회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수상자로 선정된 가나안 농군학교를 찾았다. 가나안 제1농군학교 김평일 교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1935년 일가 김용기 박사(장로)의 봉안촌 설립에 뿌리를 둔 이 농군학교는 그러나 최근 정부의 보금자리 정책에 의해 이전을 해야 되는 상황이라 학교로 들어가는 동네 입구의 '개발반대' 등의 구호 현수막이 정책의 어지러움만큼이나 어수선해 보였다. 그러나 형제들과 함께 선친 김용기 박사가 일으킨 농군학교의 대를 잇고 있는 김 교장은 이전과 관련한 복잡한 상황전개에도 꿋꿋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는 정부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농군학교의 정신과 교육사업, 탈북자들과 함께 하는 통일준비 사업, 그가 평소 벌여왔던‘효사상 강의’에 대한 얘기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구수하게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엔 강인한 의지와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함께 스며 숙연하면서도 맛난 음식을 오래도록 씹는 여운을 준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부친인 일가 김용기 장로의 가르침에 기반한 가나안 정신인 근검 절약과 부지런함으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개척종. 가나안 정신을 상징하는 '개척종'이 영원히 울려 퍼지길 기원하는 김평일 교장.

운명인 것 같습니다. 아버님이 이뤄 놓으신 이 터전에서 좀 편안하게 가실 수 도 있는데, 일복이 터지신 건가요? 다시 자리를  양평으로 옮긴다는 말이 들립니다.
원래는 우리가 하남시에 있어야 되는데, 하남시가 조그맣기에 갈 만한 데가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양평 군수님이 꼭 그리로 오라고 장소를 우리에게 제안 해왔습니다.

예전엔 농업기술까지 우리가 다 가르쳤지만 지금은 기술부분은 전문기관이 있으므로 우리는 인성과 정신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이나 단체 등에서 오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너무 깊숙한 산골로 들어가기는 어렵습니다.무엇보다 문제는 보상을 제대로 안 해 줄려고 해서 대토부지 마련이 여의치 않다는 점이 있습니다.

보상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뉴타운이니 재개발이니 하는 곳에서 많이 듣던 말이다. 가나안 농군학교뿐만 아니라 이 일대 마을 주민들이 다 그 문제 앞에 분노하고 있었다. 서민을 위한다는 보금자리 정책이 오히려 서민들의 보금자리를 부당하게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보금자리 정책 관련 보상문제는 진전이 없는가요.
보금자리, 뜻은 좋습니다. 불쌍한 사람들 값을 싸게 해서 준다고 하면 그것은 나라에서 돈을 들여서 해야지...그런데 여기 사는 사람들, 도시로 나가지 않고 부모 물려준 땅에 농사짓고 사는데....어느 날 갑자기 덮쳐서 말이죠. 바로 요 앞에 같은 동네였는데 천만원 가죠, 조금 앞 상일동 같은 곳도 5천~6천만원씩 가는데 여기는 몇 십만원부터 백 몇만원까지 정도입니다. 그걸 가지고 보상 받아서 어디 가서 뭘 할 수 있을까요?

그린벨트 묶은 것도 좋고 보금자리도 다 좋습니다. 그러나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이 죄인도 아니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너무 불공평하지 않나 싶습니다. 정부 측은 막무가내입니다.  LH공사가 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정부에서 하는 것 아닙니까. 가난한 사람들 땅 뺏어서...이건 뺏은 거죠.

가난한 사람들 땅 뺏고 내 쫓고...라는 김 교장의 말이 가슴을 찌른다. 보금자리 사업도 결국 돈버는 사람은 따로 있단 말인가...어떤 좋은 사업도 억울한 사람이 생겨서는 안되지 않느냐는 말이다.

공청회나 공고 공람은 없었습니까?
공청회는 아예 없었죠. 이미 다 결정해 놓은 상태에서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끝냈습니다. 그러자 주민들이 대책위를 구성하고 들고 일어난거죠. 그러다 보니 맨날 싸움만 일어나는 거예요.  LH공사가 법적으로 자기 쪽에 다 유리하게 만들어 놨더군요. 더군다나 보금자리라는 것은 특별법이라 이의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공산주의도 아니고 무조건 사는 사람 내보내는 것은 말이 안되는 거지요.

▲'근로 봉사 희생'이라는 가나안의 이념이 적힌 현수막이 학교 운동장 한 켠에 걸려있다.

그럼 가나안의 향후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글쎄요. 우리는 아직 돈을 안 잡았으니까(보상비를 안 받았으니)... 땅도 사야하고 집도 지어야 하고 이사도 해야 하고 대충 머리로 계산해도 굉장히 어려울 것 같아요. 기본 허가내고 설계하는데 10억 이상은 들 것 같아요. 돈이란 건 벌려면 힘들지만 쓸려고 하니 참 별것 없어요. 양평도 아직 계약을 해야 평가를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예전 에덴촌 분쟁이 나서 떠나왔던 것과는 다르겠지만 착잡하시겠습니다.
사실 그래요. 인간적인 면에서 농군학교 그만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너무 힘들었거든요. 지금까지 제대로 된 집에서 살아보질 못했어요, 외양간 소 기르던 데를 수리해서 살고 있거든요.난 사실 그 집이 좋아요. 그러나 우리 아이들도 아버지께서도 연세 드셨고 조그만 아파트라도 마련해 따뜻한 곳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해요. 저도 편안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솔직히 없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내일 일은 난 몰라요'(찬송가 제목) 아니 지금일도 모릅니다. 순간순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입니다.

내가 강의를 좀 많이 하는 편인데, 항상 강의하러 올라가는 순간이 마지막이다, 하다 쓰러질 수 있고, 오다가 쓰러질 수 있고, 수 십 년 이렇게 살아왔는데 나도 따뜻한 곳에서 눕고 싶고, 바람 쐬러 외국여행도 다니고 싶고...가끔 이런 얘기를 합니다, 아버지 아들로 태어나서 죽을 고생을 한다고.

아버지 아들로 태어나서 죽을 고생을 한다는 말에 대뜸 물었다. 만약 그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대답이 궁금했다.

사실 그게 궁금하군요. 김용기 장로님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어떤 꿈을 꾸며 살았을지.
남들이 사진에 소질있다 합니다. 사실 8미리 무비카메라 가지고 장난을 많이 했습니다. 오래 전에 일본사람이 8미리 카메라를 메고 우리 학교에 왔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에는 그게 없었습니다. 너무나 갖고 싶어서 팔라고 했더니 세관에 신고된 것이라 나갈 때 꼭 갖고 나가야하기에 안된다는 것입니다.

▲김평일 교장은 선친인 김용기 장로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영화감독이나 사진작가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기록하기를 좋아했던 김 교장이 60년대부터 사용하던 카메라들이 기념품 전시장 한 쪽에 전시돼 있다. 김 교장은 지금도 영화감독을 꿈 꾸고 있다.

그래서 세관에 쫓아가서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뭔가 알아봤더니 기증은 된다해서 학교니까 홍보용으로 사용한다 해서 어렵게 기증받았습니다. 말도 못 넣고... 테잎 하나가 3분30초였는데 이게 우리나라에선 현상이 안됐습니다. 일본에 보내서 현상하고 내가 편집하고 그랬습니다.

우리학교 기록영화도 만들었죠. 문화공보부에서 우리 학교 영화 만들 때 같이 협력도 했지요. 제가 그런 것에 취미가 있습니다. 아마 농군학교를 안했다면 영화감독이나 사진작가가 되려 했지 않나 싶습니다. 앞으로 우리 '가나안'을 소재로한 영화 한 편 만드는 것도 꿈입니다. 누군가가 가나안을 소재로 만들면 '대박' 날텐데요.(웃음)

‘내리사랑 올리효도’라는 효 운동을 할발히 펼치고 계신데요.
젊은 애들이 변화를 받아야 하는데, 그 애들을 어떻게 다 불러서 하겠습니까. 저는 부모들이 먼저 변화돼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가령 효강의를 하면서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자주 얘기합니다. 부모가 제대로 역할을 하면서 모범을 보이라는 거죠.

김 교장은 부모의 역할에 대해 세 가지를 얘기했다.

첫째는 낳았으니까. 진짜 엄마 아버지 부모의 역할, 두 번째는 선생님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는...나부터도 그래요. 남의 자식이 잘 못하면 교육 못 받았다고 야단치면서 내 자식이 잘못하면 애들 때 그럴 수 있다고 옹호하게됩니다. 그게 잘못 된 거죠. 잘 잘못을 냉철하게 구분하질 못해요. 부모는 가장 가까이 있는 선생님이예요. 선생님이란 옳고 그른 것을 가르치고 잘하면 칭찬, 잘못하면 야단치고 ,그게 선생님 아니겠어요.

세 번째는 지도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대통령이 되겠다. 선생님이 되겠다. 장군 되겠다 이런 생각들 하죠. 어렸을 때 아들놈들은 엄마를 참 좋아하잖아요. 결혼이란걸 잘 모르면서도 엄마하고 결혼한다하고 딸들도 아빠하고 결혼한다 합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최고로 좋거든. 존경을 떠나서 부모니까 무조건 좋지. 그런 것이 어느 때 허물어지잖아요. 그 허물어진다는 것이 뭐냐 하면 자기가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따랐는데 자기 기대에 어긋나거든. 그건 부모의 책임이지요.

정말로 내 자식들이 나를 보고 끝까지 따라올 수 있는 지도자가 돼야한다 이겁니다. 사랑하는 부모, 엄한 선생님, 높이 바라볼 수 있는 지도자, 그러면 아이들이 삐뚤어질래야 삐뚤어질 수 없습니다. 저절로 효도도 하게 되는 거죠.

▲선친인 일가 김용기 장로의 유품과 사진, 책과 기록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책장 앞에서.

 오늘날 젊은 사람들은 효도를 한다는게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효 해야지?' 하면, '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없어요. 근데 '왜 못해?' 하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요.

제가 종종 예화를 하나 드는게 있는데, 우리 지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초등2학년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와서 눈감고 손내놔보라더니 손자가 손 바닥에 뭔가를 쥐어주고 도망갔어요. 멀리 가서 '이제 눈 뜨도 돼'해서 눈 떠 보니 손 바닥에 퍼런 색깔의 수염난 할아버지와 이황퇴계 글씨가 보이는 거예요. 천원짜리 한 장을 드리고 간거예요.그걸 본 할아버지가  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핑돌더랍니다. 아이가 왜 돈을 건네놓고 도망갔겠어요? 어린 자기 한테는 그 돈이 큰 돈이지만 할아버지에게는 너무나 보잘 것 없는 돈이란 걸 알기 때문에 그런거지요. 드리고는 싶은데 너무 미안한거라... 그렇지만 그 것을 주고 싶은 그 마음이 가륵한 거죠. 바로 이런겁니다.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효입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저는 핸드폰을 효도폰이라 합니다.
하나님이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만든거라고, 자식들이 부모에게 효하는데 필요한 문명의 이기지요.부모님은 자식들에 대한 걱정이 끊임없습니다. 전화 한 통 해 드리면 부모님이 안심하고, 일상을 살펴드리는 전화를 드리면 그게 윤활유가돼서 더 움직이게 되고 더 건강해지시는 겁니다.

지금도 가나안 학교 하면‘개척’이란 구호로 아프리카까지도 수출되고 있는데, 설립정신과 오늘날에 접목되는 얘기를 좀 해 주십시오.
설립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근검하고, 절약해야 합니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 같습니다. 그 때는 못살았으니 일찍 일어나고 지금은 잘사니까 늦게 일어나도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제는 전 세계를 향해 열심히 해야 합니다. 전 세계를 향해 물자도 더 아끼고, 절약하고 열심히 해야 합니다. 우리의 설립정신은 근로 봉사 희생 세 가지인데, 오늘날에는 나눔의 정신을 우리만이 아닌 세계로 가져가야 합니다.

▲그동안 국가와 사회단체 곳곳에서 받은 감사패와 표창장, 훈장들과 기념물들이 전시돼 있는 별관 전시관. 이 곳에는 북한 관련 물품들도 많이 진열돼 있다.

 담담하고 차분하게 자기 속에 있는 예술가의 끼를 감추고...애써 일군 건물이 없어져야 하고 사라져야 하는 상황에서 그만두고 싶다라고 까지 말하는 김 교장. 그 상심이 꽤 커 보인다. 그러나 그는 농군학교 있던 자리에 기념관 하나라도 남는다면 감사하겠단다. 그렇게라도 흔적 남아서 다음 세대에게 남겨지면 감사하다고 했다. 김 교장은 한편 통일을 대비해 탈북자들을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탈북자예술단도 만들어 활동 중이다. 탈북자들이 통일의 개척자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영화감독을 꿈꿨고 지금도 그 꿈을 간직한 그는 요사이 사진 찍기에 심취, 아마추어 작가 수준이란 평을 듣기도 한다.

'평양통일예술단'이라는 탈북자들로 구성된 예술단을 만드셨는데, 탈북자와 통일문제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활동하시는지요.
통일되면 이산가족 만나서 얼싸안고 눈물콧물 흘릴 것으로 착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돈만 싸들고 북한 몰려올라간다고 박수치며 반기지 않습니다. 탈북자 잘 도와줘서 정말 우리 편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들이 부모 이웃 동창들을 만나서 남한 사람 따뜻하고 사랑이 많더라, 열심히 일하더라, 우리도 배워야한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다른 나라 가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교도소 가있는 사람도 많거든요. 그거 누구책임입니까. 우리 남한사람 책임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소원을 통일이라고 눈물만 흘리면 되겠습니까. 나는 그런 것들을 가지고 통일이 잘되면 북한에 우리학교를 세우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평양통일예술단'을 만들었습니다. 주일날에는 교회를 상대로 돕니다. 노래와 연극, 춤 등으로 북한의 문화를 알려주고 영상을 통해 탈북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면 대부분 공감하고 감동합니다. 교회들은 통일이 되면 북한 어디에 교회를 세운다하는데, 그게 쉬운 일 아닙니다.교회부터 탈북자들을 도와라 이겁니다.

예술단은 또 평일에는 일반사회인들을 대상으로 공연하는데 공연이 굉장히 인기입니다. 하여튼 우리가 어렵고 힘들어도 북한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줘서 통일하는데 이들이 역할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사랑을 통해서 말입니다.

▲남한과 북한의 문화적 가교 역할을 위해 창단한 '평양(탈북인)통일예술단(선교단)' 공연 모습.

 앞으로 예술단과 함께 문화예술 사업을 더 펼쳐나갈 생각이 있으신지요?
사실 제가 힘이 너무 벅차요. 교도소 사역도 하고 강의도 하고 외국인 근로자 교육도하고 있지만 그래도 또 하고 싶은 것도 많아요. 그 중 하나가 저는 기독교인이니까 해외에다가 선교센터 같은 것을 만들고 싶어요. . 전세계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 엄청 많찮아요? 목회자를 포함해 우리나라도 6만 명 정도 됩니다. 고생도 많이 하고 좋은 사람들 많은 데 몇 몇 잘못된 사람들 때문에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것이 가슴 아파요. 이들을 위한 센타를 하나 만들어 안식년 맞은 사람과 꼭 쉬어야할 입장에 있는 사람 쉬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다시 재충전과 재무장도 시키고 반성도 하고 우리(가나안농군학교)가 하고 싶은 얘기도 해주고 싶어요. 꼭 우리나라 사람만이 아니라 같은 뜻을 가진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도 열린 공간으로 말이죠.

끝으로 특별히 이 말씀만은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저는 별사람 아닌데 이런저런 일을 하다보니 드는 생각이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갔으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다른 생각을 갖기 때문에 문제예요.
농사짓는 사람은 '우리 온국민 먹는 거니 깨끗하게 지어야 겠다', 장사하는 사람도 '묵은 것은 묵은 것 새 것은 새것'으로 이렇게 제대로 팔아야 합니다. 정치는 개인의 야욕채우는 자리 아니지 않습니까. 부모도 부모의 자리 제대로 찾아야 합니다. 이런 자리찾기의 기본은 양심에서 옵니다. 양심과 효심은 똑같다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양심이 큰 사람이 효심도 큰사람'이라고 저는 결론 짓습니다.

가나안 농군학교에는 지금까지 7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 다녀갔다고 한다. 일반 가족, 기업체, 공무원, 군인들까지 이곳에서 교육받고 변화된 삶을 꾸려 나갔다는 것. 이는 역사가 오랜 일반 대학보다 훨씬 많은 교육인원이다.김 교장은 앞으로 귀농자들을 위한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생각이다. 농촌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며, 가나안 농군학교의 설립 정신과 뿌리가 거기 있다는 것이다. 현재 가나안 학교는 예전처럼 공동경작을 하지는 않는다. 농사는 직원들이 짓고, 주로 교육생들이 실습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정신의 발원지이기도 한 가나안 농군학교의 정체성을 지키며 세계를 향하겠다는 각오다.

김평일 교장
<학력>
▲단국대학교 졸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수료 ▲성산효도대학 명예효학박사
<주요경력>
▲가나안 세계효운동본부 총재 ▲성산효도대학교대학원 겸임교수 ▲한국효운동단체총연합회 공동대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효실천운동본부 본부장 ▲기아대책하남지역회 명예이사장 ▲평화통일 탈북인연합회 이사장 ▲하남시 YMCA 고문 ▲기독교연합신문 논설위원 ▲경기도 명예감사 ▲교도소 정신교육 강사 ▲하남시 문화예술회관 이사 ▲제1가나안농군학교 교장(現)
<상훈>
▲대통령표창, ▲국민훈장 목련장
<저서>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마라, 내리사랑 올리효도, 마음이 가난해야 행복합니다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