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나쁜 언론’ 기획한 이유는?
대한항공이 ‘나쁜 언론’ 기획한 이유는?
  • 김지완 기자
  • 승인 2011.05.24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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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비판기사 통제 불발되자 광고주협회 통해 ‘언론탄압’

“편집간섭 받느니 광고 안받겠다” 했더니 “법적조치 취할 것”

한국광고주협회(회장 정병철, 이하 광고주협회)로부터 ‘나쁜 언론’으로 선정된 프라임경제가 광고주협회와 ‘나쁜 언론’ 선정을 요구한 대한항공과 전면전에 돌입했다.

프라임경제는 이들을 상대로 법적 조치 등 강력 대응키로 했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특히 프라임경제는 이번 ‘나쁜 언론’ 사건을 기획 진행한 장본인을 대한항공으로 지목, 대한항공이 그간 각 언론사들을 상대로 보여온 과도한 언론간섭과 통제 등의 행태를 사례별로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5월17일 광고주협회는 ‘광고주가 뽑은 나쁜 언론 5개사’를 선정하고, 보도자료를 작성 배포해 적잖은 파장이 일었다.

기사를 무기로 광고 및 협찬을 요구하는 온라인 미디어로 인해 기업의 정상적인 홍보 업무가 불가능하다는 게 광고주협회가 낸 보도자료의 핵심. 국내 약 200개 광고주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광고주협회는 이익단체인 동시에, 언론사 입장에서 볼 때 광고 매출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핵심 주체여서 이번 ‘나쁜 언론’ 사건에 언론 업계 안팎의 관심이 쏠렸다.

광고주협회가 주장한 ‘나쁜 언론’의 명단에 첫 번째로 이름이 오른 프라임경제는 이번 사건의 본질에 대해 대한항공이 광고주협회를 움직여 벌어진 ‘보복 및 언론 옥죄기’이라고 주장했다. 프라임경제는 "광고주협회로부터 공문을 받은 한 회원사는 '고주협회가 대한항공의 요청에 따라 대한항공을 지원하기 위해 이 같은 설문조사를 실시하게 됐고 (회원사에게) 협조를 당부한다’는 내용을 전달 받았고, 이 같은 내용을 회원사 내부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 지원하기 위해’ 설문조사

프라임경제 측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지난해 말부터 프라임경제가 보도해온 비판적 대한항공 기사에 대한 삭제 요청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지만 프라임경제가 이를 거부하자 대한항공은 ‘자꾸 이러면 홍보실 손을 떠나게 되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하지만 프라임경제가 ‘앞으로 대한항공으로부터 광고 받을 생각 없으니 감 놔라 팥 놔라 그만 간섭하고 알아서들 하자’고 했고 프라임경제와 대한항공은 이후부터 신경전을 벌였다.

프라임경제가 다룬 대한항공 관련 기사는 △A380 기종의 ‘회황 공항’ 마련 △A380 기내면세점 구상에 대한 대대적 홍보와 철회 △단기간 동안 연이어 터진 기체결함 및 정비 불량 △직원 연쇄 자살 △조종사 불법 파견 논란 △승무원 기내 면세품 강매 의혹 등이다. 이 같은 문제점은 비단 프라임경제 뿐 아니라 다수의 언론매체가 다양하게 다뤘던 기사 주제다. 특히 지난 5월11일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이 포함된 항공연대도 프라임경제와 다수 언론이 익히 지적했던 △대한항공의 불법파견 △연이은 직원 4명 자살 △승무원에 대한 강압적인 면세품 강매 의혹 등에 대한 불법성을 강조하면서 노동부의 특별 점검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프라임경제의 다수 기사들이 자신들의 기업 이미지를 실추했다는 등의 이유로 지난 3월 언론중재위원회에 기사 정정보도 및 3억원 손해배상 청구신청을 했다.

하지만 3월15일 1차 조정 심리에서 중재위는 반론보도만 게재하는 것을 주문했고, 프라임경제는 이를 받아들여 대한항공이 지적한 22건의 기사에 대해 건별로 반론을 붙이기로 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사전 조정 내용에는 없었던 ‘포털에서 22건의 기사 링크가 해제되지 않는 한 조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며 중재를 거부했다.

이어 22일 열린 2차 조정 심리에서 프라임경제와 대한항공은 쌍방 조정합의서(22건 기사에 대한 반론·정정보도는 하지 않고 본지 홈페이지에서 기사는 그대로 두는 대신 22개 기사에 대한 포털 링크만 해제한다는 내용)에 서명한 후 3억원 손해배상은 자동 취하되는 것으로 결론 낸 바 있다.

프라임경제 측은 "하지만 이 같은 중재 과정 중에 대한항공의 ‘나쁜 언론 선정 작업’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대한항공과 프라임경제의 중재위 1차 심리 다음 날인 3월16일부터 광고주협회는 이번 ‘나쁜 언론’ 선정 작업에 돌입했다. 실제 보도자료에도 3월16일부터 설문을 실시한 것으로 나와 있다.

◆비판기사 안 써야 좋은 언론?

프라임경제 박광선 편집국장은 “이번 협회의 선정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며 “발표 이후 구체적인 내용도 공개하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기업의 일방적 주장을 받아들여서 짜맞추기식 설문을 진행해놓고 마치 회원사 전체의 이야기로 몰고 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국장은 이어 “이미 협회는 이번 발표를 통해 상당 부분 신뢰성을 잃어버렸는데 그 이유는, 4월 중순 협회가 이번 설문은 회원사들에게 대한항공이 프라임경제와 소송 중에 있으니 이를 지원하기 위하는 목적으로 진행된 것이었기 때문”이라며 “본사는 협회를 상대로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동사(同社)의 김동현 부국장은 “이번 사건의 핵심은 대한항공이 본지를 직접 겨냥한 것이 분명하다”며 “대한항공은 자신들에 대한 어떠한 비판 기사라도 막으려 애를 썼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지만 대한항공의 경우 그 정도가 너무 심했고, 그래서 ‘더 이상 대한항공으로부터 광고를 받지 않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홍보할 것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홍보하겠다’는 원칙적인 보도 입장을 밝히자 대한항공은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고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됐다”고 밝혔다.

김 부국장은 이어 “올초 대한항공 간부가 본사를 찾아와서 ‘앞으로 악의적인 기사를 쓰지 말고 젠틀하게 정상적인 관계를 맺자’고 제의했는데 이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써야할 때는 비판적으로 써야 하고, 좋은 기사를 써야 할 때는 좋은 기사를 쓰는 게 정상적인 관계지 광고·협찬 줄테니까 비판적인 기사 쓰지 말라는 제의를 받아들이는 것은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다. 우리는 앞으로 대한항공으로부터 광고·협찬을 받지 않겠다’고 돌려보낸 뒤부터 양사의 사이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전했다.

이종엽 자본시장부장은 “대한항공이 달아준 ‘나쁜 언론’이라는 타이틀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려 한다”며 “문제점이 많은 나쁜 기업은 나쁜 언론이 상대해 줘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부장은 이어 “막대한 자본을 무기로 언론 길들이기에 나서는 대한항공에 대해서는 진실을 외면할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돌아올지 지켜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사건의 진상을 조사 중인 한 법조인은 “설문 결과를 회원사끼리 공유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만일 협회가 특정 회원사의 요청을 받아 구색 맞추기 희생양을 만들기 위한 프레스 릴리스 했다면 이는 명백한 범죄행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