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래경 큐레이터협회장
[인터뷰] 박래경 큐레이터협회장
  • 이은영 편집국장
  • 승인 2011.05.27 13: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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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세계 충실히 나타내려고 하는 작가가 좋다”

 

후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큐레이터 대모라 불리는 박래경 한국 큐레이터협회장.(76·국립현대미술관 전 학예연구실장) 서울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뒤 독일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대학 강단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다 선친의 권유로 미술에 대한 꿈을 접지못해 미술계와 본격적인 인연을 시작했다.
큐레이터 1세대이자 화단에 큐레이팅을 제대로 도입해서 작가의 작품이 빛나고 조명받을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고 배움에도 게을리하지 않는 그는 우리나라 현대 미술계의 산증인이자 역사다.
큐레이터는 직업윤리를 갖추는 것은 기본이고 역사의식과 자신의 일에 대한 근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미술계가 가야할 길에 대해서는 단호히 힘주어 자신의 주장을 펴고 젊은 후배들에 대해서는 한 없는 애정으로 감싸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큰 어른이자, 언니이다. 최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큐레이터의 세계와 미술계 전반에 걸친 얘기를 가감없이 나눴다. 

2007년 큐레이터협회 출범당시"미술관의 장(長)과 큐레이터의 책임과 의무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쓸데없는 갈등과 잡음이 불거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큐레이터의 위상과 정체성을 재정립하겠다 라고 하셨는데 현재는 어느 정도 해결돼 가고 있는지요?
큐레이터협회는 큐레이터의 현실문제를 전반적으로 성찰하고 정리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단체가 되고자 창립됐어요.현재 미술관과 박물관의 전문성 확보 및 운영 쇄신을 위한 연구기반을 구축하고 연수 등 큐레이터에 대한 재교육과 소식지 발간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쳐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술관장과 큐레이터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부분은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중이고 그와 관련해 오는 6월에 세미나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2007년 협회 출범 후‘신정아 사건’이 터졌고 최근에는 또‘신정아 책’출판과 관련해 사회적 파장이 컸습니다. 하실 말씀이 많으실 듯 합니다.
그 얘기 중 꼭 하나 할 것이 있어요. 협회가 8월 중순에 창립됐지만 내가 회장 수락한 것은 6월 30일이예요.그 중간에 신정아 사건이 터진거죠. 당시 인터뷰 요청이 물밀 듯이 밀려왔어요.

문제는 우리 사회가 모든 큐레이터가 신정아처럼 그런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을 거라고 인식되는 겁니다. 신정아 사건의 전개 과정을 보면, 근본적으로 윤리 의식 부재에서 온 것입니다. (책에)이름 오르내리지 않았다고 해서 책임 없는 것 아닙니다.

우리 사회 건전하려면 아직 멀었다. 공사가 분명해야 한다. 박회장은 큐레이터가 되는 데는 학교교육과 현장훈련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키워지는데 신정아의 경우 도덕성과 윤리성을 미처 갖추지 못해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그가 잘못된 길로 갈 때 주변 주변 어른들이 잘못된 판단을 잡아 주지 못해 미술계의 인재를 잃었다는 것은 곧 우리 사회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큐레이터는 상당히 화려한 직업으로 비춰지는데요.
영화나 연극 등에서 큐레이터가 너무 화려한 모습만 보여 고정관념, 선입견 가지게 되는 것이 무서운 거죠. 실제와는 달리 격무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꼭 이 일을 해야 할 이유를 가져야 하는데 그런 것들을 갖춰지는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
과거를 재해석해야하고, 과거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거기서 새로운 생명을 연결하고 그러니까 지금은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가치추구가 있단 말이죠.따라서 과거 큐레이터들 보다 훨씬더 해야할 일과 알아야할 일이 많다는 거죠, 우리나라는 미술사가 일본을 통해 들어와서 미술사보다는 미학적인 부분이 더 우선시되고 있어요. 미학도 중요하지만 미술사, 史적인 부분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시간과 체력과 최소한도의 경제적인 밑받침이되는 여건을 가져야합니다.특히 독립큐레이터는 더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죠. 여건을 자기가 만들어가면서 해야 하니까 더 힘들죠.그러니까 잘되는 경우보다 잘못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좌절하고 쫓겨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여건을 갖추고 단단한 각오가 없으면 다른 길을 빨리 찾는 것이 낫습니다.

큐레이터가 가장 받기 쉬운 유혹은 뭘까요?
그림입니다. 그림을 자신이 사서 돌리면 큰 이익을 보는데 그런 유혹에 빠질 수 있는거죠. 그래서 직업윤리가 필요합니다.

박 회장은 큐레이터는 투철한 직업윤리와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작가와 작품 컬렉터와 현장에서 가장 가깝게 만나는 이들이다보니 특히 물질적인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은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가치추구가 있기 때문에 과거를 재해석해야 하고, 과거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이 큐레이터가 할 책무로서 반드시 깊은 역사인식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좋은 예술가란 어떤 걸까요?
남 돌아보지 않고 자기 세계를 충실히 나타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고전이 바로 답이 될 수 있겠지요.시대가 지나가도 다시 찾는 것,좋은 것은 물리지 않는다. 싫증이 나지 않잖아요?. 늘 봐도 좋다는 것이지요.

국립현대미술관이 박물관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는데요
행정관청인 문화부에서 박물관과 도서관은 정책과에서 미술관은 예술진흥과에서 관장하고 있습니다. 예술진흥이 뭔가요? 예술가들을 지원해서 예술을 활성화시키자는 것이잖아요.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박물관의 기능을 하는 곳인데 예술진흥차원으로 가서는 안되지요.국가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가져가야 하는데 국립미술관이 박물관 정책으로 가지 않고 단순히 예술진흥으로 가져가고 있다는 것은 정책의 실종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작품을 박물관 수집정책에 맞게 소장해야하는 것이 박물관입니다 .박물관의 수집정책과 관계없이 예술진흥차원에서 수집하니까 사료적 가치로 가지 않고 단순히 아트적으로만 간다는 것이 큰 문제지요.

요사이 우리나라에 앞다투어 대형기획전시들이 많이 들어오는데요
대형 작품을 한자리에 본다는 것, 보고 싶은 작가 작품 본다는 차원에서는 좋은 서비스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보고 싶은 것, 전문적인 영역에서 좋은 작품을 전체적으로 보여주고 싶다면 우리 큐레이터가 그쪽에 직접 가서 (작품을)선별해 와야합니다.

그리고 우리 예술가들도 외국에 꿀릴 것 없습니다. 정정당당하게 권리주장하고 받아들일 것 받아들이고 우리 것도 주고 받자는 대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서양에서도 전시장이나 수장고를 고친다거나 해서 작품을 쉬게 하거나 수장고를 어디 옮겨야 하는데 이럴 때 좀 더 쉽게, 더 싸게 가져올 있습니다. 이런 정보를 재빨리 입수해서 우리에게 최대한 이익이 되는 전시를 유치해야지요.

박 회장은 외국 대형작가들의 기획전시에 있어 무조건 외국 것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우리의 훌륭한 작가들의 작품을 그 쪽 당사국에 소개할 전시를 함께 꾸리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외국 미술관의 정보를 네크워킹을 통해 빨리 입수해서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유리한 전시를 유치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큐레이터 협회 회원간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해나가야한다고 역설했다.

소장하는 작품도 많으실 것 같은데요
소장하지 않고 있어요. 우리 어머니가 작품 간수하기 얼마나 힘든지 진절머리가 난다며 그림 모으지 말라고 했거든.(웃음)

 

솔직히 선생님께 잘 보이기 위해 개인적으로 선물하는 작가들도 있지않나요?
그런 쪽에 욕심이 없어 보이는지 가져오는 사람이 없어요. 사람들이 자기 것도 못 찾아 먹는다 합니다(웃음). 그러니 괜한 번민 안 해도 되고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어 좋아요. 속을 비웠으니 맘 편하지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학예사로 시작하셔서 학예실장 등을 거쳤습니다. 우리 현대미술계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는데 현재 미술계의 당면한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두가지 인데요. 우선 우리 문화 전반이 어떤 패턴이 있으면 그대로 따라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외국 사람들이 지적하기를 우리 미술계는‘끼리끼리’한다고 합니다.
어떤 일을 처리함에 있어 객관성이 결여됐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아이들 미술 교육이 중요합니다. 일본이 독도문제를 초등학교에서 가르친다고 하는데 나는 그 얘기 듣고 소름끼쳤어요. 의도적인 세뇌교육을 시킨다는 겁니다.
그런 차원에서  요즘은 교육체계가 잘 돼 있는 것 같지만 좀 더 아동연구가 필요합니다. 아이들에게 성급하게 자꾸 강요하거나 유일한 해답을 바라지 말고 아이들이 다양한 재능과 자질을 펴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지요.

올해 기획하는 전시가 있는지요?
내년에 기획하고 있는데 제가 총괄하고 기획자는 따로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성있는 작가 작품입니다.결정되면 말씀드릴께요.

후배 큐레이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작가를 만나보지 않고 작품을 보지 않고 작가 아틀리에도 안 가보고 그 작가에 대해 얘기해선 안 된다는 얘길 꼭 해주고 싶어요.작품이 텍스트라 하면 작가에 대한 확실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가짜를 가지고 진짜라고 하면 안되지 않겠어요? 한 예로 이경성 관장 시절‘천경자 사건’이 났을 때입니다.

나는 그때 놀란 것이 그 당시 어떤 기자도 현물을  확인해보자고 요구하는 사람이 없어서 정말 실망하고 놀랐습니다.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또 확인해라는 것입니다. 긴가민가할 때 누구를 데려가더라도 자기 눈으로 확인하라는 것이죠. 좋은 작가는 좋은 작가로서 재평가를 해서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일부 몇 사람만 가지고 이윤차원에서 띄워주는 것을 경계해야합니다.

박회장은 스스로‘노파’라고 몸을 낮추며 자신이 관련을 맺고 있는 미술계와 큐레이터 후배들을 위해 조그마한 힘이라도 되어 주고 싶다는 것이 앞으로의 꿈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 바쁘게 기여할 일을 찾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울대 사학과와 독일 뮌헨대 미술사학과를 나온 박 회장은 세종대학교의 전신인 수도여자사범대 미술학과 부교수를 거쳐 1986년부터 1996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학예연구관, 학예연구실장을 지냈다. 저서는 '세계의 명화' '렘브란트' 등 다수와‘해학과 우리’를 기획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