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재혼, 이별 후의 선택
[산문]재혼, 이별 후의 선택
  • 유시연 / 소설가
  • 승인 2011.05.3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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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여성 작가가 있다. 그녀의 근황은 화제를 뿌렸고 연예신문에 도배되었다. 세인들은 호기심을 드러냈고 반면에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여성이 참 당당하다는 생각을 했다. 떳떳하고 당당하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남의 시선에 민감한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늘 느끼는 터였다. 세상이 모르게 몰래 동거하고 몰래 헤어지고 그러기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부분은 주위 시선 때문이다.

이혼이 늘어가고 재혼이 늘어가는 시대이다. 재혼은 첫 결혼보다 어렵다고들 말한다. 우선 복잡한 가족관계이다. 양쪽에 자식이 있을 경우 조금만 틈을 보이면 갈등의 소지가 된다.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한 가족이 된 경우 오해가 싹틀 소지가 크다.

중년 여성들에게 재혼에 대해 물어보면 이 나이에 영감 뒤치다꺼리나 하려고 또 결혼하느냐며 손을 내젓는다. 그런데 왜 여성들은 남성 뒤치다꺼리를 한다고 생각할까. 외로워서 혹은 혼자 살기 힘들어서 의지할 인생의 도반을 찾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밥 해주고 빨래해주고 큰아들을 하나 키운다고 생각하는 풍토는 참 기이하다.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행복하려고 만나는 게 아닌가.

여기에 아직도 근대적인 우리 사회의 구습이 남아 있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면 왜 재혼이 어려운 지 그 이유를 생각해본다.
첫째, 조건을 걸기 때문이다.
둘째, 재산상속과 관련이 있다.
셋째, 자식들(양쪽 혹은 어느 한쪽)과의 갈등 때문이다.
넷째, 친척이나 가족, 주위의 냉대가 있다.
다섯째, 상대방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바라는 경우이다.
지인 중에 재혼을 원하지만 십년이 넘도록 아직 혼자 사는 남자가 있다. 그는 강남에 빌딩을 소유하고 작은 회사를 운영한다. 기본적인 재산이 있고 임대 수입도 꽤 많다. 한 마디로 재산이 많아서 만나는 여성마다 의심을 하고 마음을 열지 못한다.

하루는 그가 러시아 처녀와 결혼하겠다고 러시아로 갔다. 이십대 러시아 처녀와 지천명을 훌쩍 넘긴 중년 남자. 언어도 통하지 않는데 무엇으로 인연을 이어갈 지 의문이 들었지만 재산을 지킬 수 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그는 러시아행을 감행했다.

결론은 아직도 그가 혼자라는 사실이다. 데이트 하던 러시아 백인여성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행태로는 어느 누구와도 인연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막말로 재혼하는 여성에게 재산을 뚝 떼어주고 나누어가며 살 수는 없는 것일까. 그 정도도 못해주고 인생을 함께하겠다는 건 자기중심적인 사고다.

재혼한 내 이모는 이웃사람들의 달콤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꼿꼿하게 자신을 지켜냈고 가정을 지켜낸 분이다. 이모는 전실 자식들과 사이가 좋다. 이웃 여자들은 틈만 나면 영감에게 재산상속을 미리 해달라고 하라는 둥 바람을 넣었다.

영감님 살아있을 때 집 등기 이전과 땅뙈기도 물려받으라고 꼬였지만 이모는 그 집 죽어서 갖고 갈 것도 아니고 내가 지금 굶는 것도 아닌데 그런 소리 하지들 말라고 냅다 소리쳤다. 영감님이 먼저 죽고 전실 자식들과 더불어 십 년 넘게 함께 사는 이모는 말년을 평화롭게 보내고 있다.

재혼한 커플이 모두 다 불행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도하차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돈과 자식 때문이다. 가까운 이웃아파트에 사는 여자는 재혼 8년만에 이혼하고 이혼한 남자와는 여행도 같이 가고 외식도 같이 하며 친구처럼 잘 지낸다.

자식들과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함께 살다가 헤어지고 그럼에도 여전히 잘 지내는 두 사람이 의아스러웠다. 내용을 알아보니 이혼하면서 남자는 재산을 똑같이 나누어서 여자에게 위자료를 주었다. 두 채였던 아파트를 이혼하는 부인에게 주고 그도 한 채를 갖고 그리고…….

남자는 여자를 사랑했다. 여자는 재혼한 후 남자 집안의 가풍이나 제사 등을 모시며 열심히 노력했고 자식들과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친척들이나 가족들의 여자에 대한 요구는 과했다. 책임은 많은데 여자에 대해 존중해주지 않았다. 나중에 온 부인이라는 위치, 즉 정체성이 문제였다. 친척들은 이간질과 비판을 했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남자는 고민 끝에 가족으로부터 그녀를 지켜주고자 여자와 이혼하고 자유롭게 만나고 있다. 종이 한 장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토록 집요하게 괴롭히던 가족과 친척들이 이혼한 후에는 그녀에게 요구할 명분이 없었고 그녀는 집안 대소사로부터 자유로웠으며 남자와는 편안한 관계로 연애하듯 만나고 있다.

재혼한 뒤 어린 동서로부터 모욕을 당한 선배가 있다. 나보다 두 살 연상인 그 선배는 열여섯 살이나 어린 동서가 사소한 문제로 명절날 집안 어른들이 모인 자리에서 큰 소리를 지르며 불만을 표현해서 두 다리에 힘이 빠지고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 말을 못했다고 한다. 간신히 남편이 나서서 어린 동서를 꾸짖었고 그 일로 작은 집과는 냉담하게 지낸다고 했다.

재혼 후 맏며느리가 된 선배는 생전 해보지 못한 제사 음식을 차리며 사람은 죽기전에 다 해보고 가나보다 생각했다고.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데도 어린 동서는 코빼기도 안보이더니 나중에야 아이들과 시동생과 함께 우르르 몰려와서 쳐다도 안 보더라고, 생각같아서는 자존심 상해서 이 꼴 보려고 재혼 했나 싶어 후회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더 괘씸한 것은 어린 동서가 다른 시누이들이나 친척들, 전실 자식들에게는 선물을 사서 돌린다거나 잘하면서 유독 그 선배에게만 못됐게 구는데 아마도 정통성(?)이 취약해서 무시하는 것 같고 동서가 집안에서 터잡고 살다가 침범당한 자기 영역을 빼앗긴 데 대한 불만을 그런 식으로 표출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은 그저 무조건 자기만 믿고 참으라고 한다고 한숨을 쉬는 것을 보며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당사자가 아닌 가족과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확실히 재혼은 첫 결혼보다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가장 민감한 게 역시 자식 문제다. 이것만 보더라도 성숙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 개인주의 성향인 서양문화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일어난다. 개인의 권리나 행복보다는 가족이 우선이고 여기에 친척들이 간여하는 문화는 언제쯤 없어지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첫 결혼에 실패했으면서 재혼하는 걸까. 그것은 환상이거나 행복하고 싶은 욕구와 바람 때문이리라. 인생에 속고 세월에 속고 또 속으면서도 저 멀리 낙원이 기다리고 있다는 환상이 깨어지기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 유시연은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2003년 <동서문학>에 단편소설 '당신의 장미'가 신인상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는 <알래스카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가 있으며, 이번에 펴낸 <부용꽃 여름>은 첫 장편소설이다. 한국작가회의, 한국소설가협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인터넷문예일간지 <문학in>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2008 인천문화재단 창작지원금'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