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서흠 묘역,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
목서흠 묘역,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
  • 편보경 기자
  • 승인 2009.04.2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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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때 한성부 좌ㆍ우윤 지낸 성인

▲ 목서흠 묘역
인조 때 한성부 좌ㆍ우윤(오늘날 서울시 부시장에 해당)을 지낸 목서흠의 묘역이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된다.

목서흠(1572년-선조5~1652년-효종3))은 조선 인조 때 한성부 좌ㆍ우윤(漢城府 左․右尹), 예조참판 등을 지내고 양양부사, 개성부유수 등 지방관을 역임하면서 가난한 백성을 위한 시정을 펼친 청렴 강직했던 신하였다.

또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를 지낼 때에는 학교를 새로이 정비하고 학름(장학금의 일종)을 증가시켰으며 선죽교(善竹橋)에 정문(旌門)을 세우고, 화담서원(서경덕을 모신 서원)을 수리했다. 충신ㆍ효자ㆍ열부의 정려(旌閭)로서 무너진 것이 있으면 모두 다 잘 고쳐놓았고 붕당(朋黨)의 해로움을 인조에게 상소하기도 했다.

중앙에서는 좌ㆍ우승지(오늘날 대통령 비서관에 해당), 한성부 좌ㆍ우윤, 예조참판 등을 지내다 1652년(효종3)세상을 떠났다. 1675년(숙종 1)에는 그의 공을 기려 나라에서 충정(忠貞)이라는 시호(왕이나 재상, 저명한 학자 등이 세상을 떠난 뒤에 그들의 공덕을 기려 나라에서 내려주는 이름)가 내려졌고, 1689년(숙종 15)에는 다섯째 아들인 목내선(睦來善)이 좌의정에 오르게 되자 영의정으로 추증(죽은 후 벼슬이 더해지는 것을 말함)되었다.

현재 목서흠의 묘역은 사적 362호 '연산군묘'와 서울시 유형문화재 50호 '정의공주(세종대왕의 차녀) 묘역' 인근 방학동 시루봉 자락에 위치한 사천 목씨 묘역 내에 있다.

묘역에는 묘표와 신도비(神道碑)ㆍ혼유석(魂遊石)ㆍ향로석(香爐石)ㆍ동자석(童子石)ㆍ망주석(望柱石) 등 석물들이 원래의 모습대로 잘 남아 있어서 조선 후기 묘제와 석물 제작방식을 잘 알수 있게 한다.

특히 묘역 입구에 있는 목서흠의 가계(家系)와 후손 역임한 주요 관직들과 활동, 성품, 그의 덕망을 기리는 3m 높이의 신도비(1671년-현종 12)는 정사(正史)인 실록 등을 보완하는 사료로 가치가 크다.

이 비에는 전서(한자 글씨체 가운데 가장 먼저 등장한 서체로 획이 가장 복잡하고 곡선이 많음)를 잘 쓰는 것으로 이름났던 이정영(李正英)과 명문장가이자 명필로 알려진 조위명(趙威明)의 글씨, 그리고 조경(趙絅)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한편 서울시는 오늘날 공복(公僕)으로서의 자세를 다시 한 번 뒤돌아보게 하는 조선 후기 관료 목서흠의 묘역과 신도비에 대한 문화재 지정계획을 오는 23일부터 30일 동안 예고, 각계 의견을 수렴한 후 금년 6월쯤 서울시 기념물로 최종 지정 고시할 예정이다.

서울문화투데이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