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조선 일류 가객, 박춘재 (9)
[연재소설]조선 일류 가객, 박춘재 (9)
  • 박춘재 일대기
  • 승인 2011.06.1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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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 박춘경의 제자가 되다

새끼나 백발은 쓸 곳이 많아도 인간의 백발은 쓸 곳이 없다.
 정든 님 얼굴에는 보석이 박혔는지 캄캄한 밤에도 보름달같이 밝다.
 밥을 하려고 보니까 바가지 한 짝이 없구요
 도망질을 하려니 가자는 놈이 없구나
 오르며 내리며 얼마나 울었는지 새로 난 길 복판에 나막신이 떴다.
 오이밭의 웬수는 고슴도치가 웬수구
 이 내 놈의 웬수는 호미자루가 웬수로다
 이 집 저 집 하여도 기집이 제일이구
 안방 건넌방 해봐도 서방이 제일이라

춘재는 차츰 흥이 나는지 허리를 펴고는 또 엉뚱하게 변한다.
에이, 장고가 춤 따라와야지 춤이 장고 따라간단 말이오, 하더니 갑자기 아이고, 아이가, 배야, 아이가, 아이고, 허리야, 하면서 애를 낳기 직전이다.

아이고, 어쩔 거나 앞 못보는 심봉사는
겁이 나서 방안에서 허둥지둥하며
마누라, 배가 아퍼서 그랬습니까?
아이가, 아이가, 배야, 혼미 중에 덜컥 낳아
뒷집의 귀덕어미 와 삼을 갈라 눕힌 연후에
국밥을 끓이러 나간 뒤에 곽씨부인 정신 차려
여보시오, 가부님, 신공드려 낳은 자식 무엇인지 좀 만져 보시오.
심봉사 크으 웃더니마는 더듬더듬하더니
어린애를 치만져서 올라갔다 내리 만져서 내려오더니
손이 거침없이 싹 내려 가는지라
심봉사 대희하야
묵은 조개도 햇조개를 낳았네

선소리꾼들이 와아, 하고 웃어댔다.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좋아했다. 허, 하고는 감탄만 하는 사람도 있었다.
 “너 누구냐?”
 한 사내가 그렇게 물으며 얼굴을 갖다 댔다.
 “몇 살이야?”
 “어디 살어?”
 춘재는 그날 선소리꾼들과 흐드러지게 놀면서 목이 쉬어 버렸다. 선소리 산타령을 보지 못한 건 아니지만 그날 본 것은 다른 데서 본 것과 틀이 달랐다. 오강 소리꾼이라더니 과연 달라도 뭔가 달랐다. 박춘경은 주로 앉아서 불렀는데 오강의 사나이들은 서서 불렀다. 유식한 사람들은 그걸 좌창이다 입창이다, 하고 말했다. 씩씩하고 기상이 있었다. 마음이 맞아야 하는 게 바로 선소리라는 걸 처음 알고 매력을 느꼈다. 저녁에 가면서 말했다.

 “저한테도 가르쳐 주셔야 합니다.”
 “니 선생이 더 잘해. 우리도 거기서 배웠어.”
 주머니에 용돈을 두둑하게 채워 주면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떨어져 있다고 생각지 말라 했다.
 춘재는 그곳만이 아니라 양평 굿판에도 갔고, 봉산 탈춤판에도 갔다. 모두 스승이 가라 해서 간 것이었다.
 “여기서 하던 대로만 하거라. 배우면 써먹어야 한다. 청풍명월 속에서 읆조리는 시대는 이제 지났어. 그런 시대는 나의 시대로 족해. 너는 세상에 얼굴을 보여주고, 소리를 들려주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가거라. 가서 맘껏 부르고 와. 그것이 곧 배우는 것이야.”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하기도 했다. 그 말뜻을 새겨보기도 전에 춘재는 가는 곳마다 귀여움을 독차지햇다. 쟁쟁한 소리꾼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에 가서도 두려운 게 아무것도 없었다. 목청이 아직 세련된 경지는 아니었지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기색을 역력하게 보여주었다.

청한 노래가 끝나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던 청중들은 흥이 나는 것보다 놀라는 눈치였다. 어떤 사람은 노련하다 했고, 어떤 사람은 신동이라 했다. 어떤 사람은 신기하다고도 했다. 어떤 기생은 다짜고짜 치마폭으로 감싸더니 우리 살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