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발레부문 테크닉은 세계최고...창조성은 약해, ‘무모한 도전’ 필요 [인터뷰 이은영 편집국장 사진/정리 홍경찬 기자]‘이 시대의 우리춤’은 어떤 색깔일까? |
한국 현대 무용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본다. 국가대표급 무용계 인사들이 대거 무대에 선다. ‘시대가 변하면 언어도 변하기 나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대별(50대~20대)로 제각기 다른 환경과 가치관에서 형성된 춤언어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17일 개막공연은 최승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작품으로 주목할 만하다. 최승희 선생을 포함한 신무용과 이후의 창작무용으로 나뉘는데, 당시대 세계5대 무용가로 활동했으며 창작무용의 개념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공연이라 하겠다.
이번 공연을 통해 우리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통의 재현이나 변용이 아닌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발맞춰 우리 춤의 미학적 특질과 정서를 현재적 어법으로 발전시킨 창의적인 작품을 선정했다. 현재와 미래 한국춤을 조망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으로 자신한다.
-예술감독으로서 이번 출연진 선정은 어떻게 했나?
-무용은 다른 예술작품과 달리 소모적이고 극명한 한계성을 지닌다. 작품을 소장할 수도 없고 장기공연도 힘든 현장예술이며 이익을 창출하기도 힘든 구조이다. 그래서 고심 끝에 자기 어법을 가진 안무가와 작품을 선택했다. 시대 조류에 발맞춰 어법을 유지하고 유행은 따라가되, 무용이 모든 예술의 기본에서 출발함을 보여주려 했다. 마케팅이나 문화컨텐츠로의 연계 활성화도 도모했다.
관객은 늘 옳다. 아무리 강한 메시지(충격)를 전달해도 웬만해선 꿈쩍하지 않는다. 사건과 사고, 환경, 기아, 전쟁 등 극한 상황들이 우리 주변에 만연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정확한 메시지 전달과 흥미와 재미가 내재돼야 무용계가 도태되지 않고 관객들에게 외면받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외국 신표현주의 춤은 파격적인 알몸 공연, 15m 높이서 자유낙하 하는 무용수, 단테의 신곡에서 보여준 ‘물바다, 불바다 무대’를 주저 하지 않고 관객에게 선사하고 있다. 무대 공학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품 선정은 이런 복합적인 면을 깔고 있다.
-주요출연진의 특징을 간략히 소개해 준다면?
20일(월) 백현순의 '구지가' 작품에선 무용수들이 직접 제를 지내고 구지가를 부르는 소리를 가미했다. 이해준의 '파르티잔-새벽출정'은 그가 문학박사이기도 한 무용가이기에 철학적, 심미적인 부분이 강조됐다. 김동규 LDP 무용단은 주요한 동작개발을 통해 외국과의 활발한 교류로 탁월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처럼 뛰어난 무용수와 출연진이 총 출동한다. 좋은 무용수가 있으면 관객은 꼭 모인다. 관객들의 호응을 기대한다.
-현 상황의 우리 무용계를 어떻게 보는지? 침체기인지, 중흥기인지...?
침체기이다, 중흥기이다 라는 식으로 말하기는 애매하다. 다만 발레 부문에서 우리나라 테크닉은 단연 세계 최고다. 중고교, 대학교에서 유난히 테크닉만을 강조해서다. 반면 창조성은 약하다.
그래서 나는 무용가 최승희, 포스트모던 댄스의 홍신자 선생 등이 지니셨던 창조성을 우리무용계에 화두로 던지고 싶다. 엘빈 에일리 아메리칸 댄스 시어터, 마사그라함 댄스컴퍼니가 한때 세계를 장악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작고 후에는 사실상 유명무실 해졌다. 테크닉에 치중한 반면 창조성이 약해서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연은 파격적이다. 영상에다 생생한 연주 등으로 관객에게 흥미와 재미를 유발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자신만의 안무 철학이 있다면?
-시대정신을 담아내려고 한다. 또 한국 무용 특유의 무대 기법 흡수를 통해 우리만의 정서를 가지고 현재화 시키려 한다. 내가 '전통 무예(택견)의 춤언어 환치 가능성 연구'나 '한국전통춤에 내재된 易의 순환구조' 등으로 석박사 과정을 공부한 것도 그런 이유이다.
나의 관점은 한국 전통성의 기반에 현대인에 맞는 춤언어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동양사상인 주역을 통한 전통춤의 구조와 원리가 기반한 것이기도 하다. 시대의 사상과 철학이 내포된, 우리네 가치관이나 통치철학으로서의 주역사상에 그 귀착점이라고 보았다. 예컨대, 그런 관점에서 만들어진 '꼭두의 눈물'에선 비보이 춤을 단순 삽입이 아닌 안무의 도구로 사용해 호평을 받았던 것이다.
-원래 국문학도였으나 무용으로 전향했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중고교 때 글짓기 상도 꽤 받았는데, 그걸 생각하면 좀 아쉬운 생각도 든다(웃음)
국문학과를 들어가서 희곡 수업 때문에 자연스레 연극을 하게 됐다. 그때 연극을 좀 더 잘해보기 위해 무용을 했는데, 몸짓과 발짓, 시선처리 등의 연기의 기본이 무용이었다. 춤은 딱딱한 규격화된 언어가 아니었다. 어렵고 난해했지만 내가 개발하는 어휘(몸짓)가 바로 문장이 됐고, 춤이 됐다. 신기했다. 문학이 규격화된 언어의 재편성 과정이라 한다면 춤은 새로운 ‘몸짓’ ‘몸 언어’의 재편성이라 할 수 있다. 직접 독특한 춤 언어를 개발하면 매력적인 춤 어휘가 됐다. 그런 흥미와 열정, 내 것을 만들 수 있는 창의적인 갈구가 무용과 맞아 떨어졌다.
-국문학도로서의 꿈도 놓지 못하는 것 같다. 공연에 시도 넣고 대본도 직접 쓰기도 하는데.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이 대본과 주제를 직접 쓰게도 만든다. '아빠의 청춘' 공연에서 자작시 '아버지'란 시를 내레이션과 동시에 춤으로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성옥 시인의 시를 무대에 자주 올리기도 했다. ‘면죄부’, ‘새’, 그리움의 가속도‘, '아우라지 강은 두 갈래로 흐른다' ,등이다. 지난 2003년엔 동아콩쿨에서 김성옥님의 시 '백비'로 2011년 올해는 이해인님의 ‘능소화'를 안무하여 일반부 창작부문에서 금상을 차지했다.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꼭두의 눈물'은 김 감독에게 특별한 작품이라고 들었다.
2008년에 '꼭두의 눈물'을 무대에 올렸다. 꼭두란 상여 맨 앞에 서는 나무목각을 칭하는 것이다. 지난 2008년엔 공연 이틀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공연 당일이라 출상에도 못 갔다. 무용수로서 공연에 빠지면 안 되니 가슴에 한이 맺혔다. 아버지를 보내 드리지 못한 불효자가 돼 버렸다. 오랜 시간이 지나 아버님의 장례식을 치른 셈이다.
김 감독은 이 대목에서 잠시 답변을 멈추고 허공을 응시했다. 선친에 대한 불효가 떠올랐던 것이리라. 다시 시선을 마주친 김 감독의 눈시울이 어느덧 붉어져 있었다.
그해 '꼭두의 눈물'은 작품 지원금 2차 심사 면접에서 떨어졌다. 기대했던 공연 지원금이 없어진 거다. 오히려 탈락이 약으로 작용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원없이 열정을 쏟아 공연했다. 그랬더니 혹자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다. 통상 지원이 안 되면 공연도 접는 풍토에서 빚을 지면서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렇다 보니 ‘꼭두의 눈물’은 내겐 의미가 컸다. '현대인, 현대인에 맞는 춤언어', '무모한 도전', '오랜만에 만난 작가 정신', '한국 춤계의 또 다른 삼촌의 탄생' 등 평론가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고인이 된 아버지가 준 선물이라 여겼다.
덧붙인다면, 미술과 음악은 천재라는 칭호가 무용보다 많이 부여된다. 그 이유는 총체성을 지닌 무용은 주제선정이나 극의 전개를 위한 스토리텔링을 위한 문학적인 기본 소양과 공간에 대한 개념, 연출과 연기, 동작계발, 음악, 미술, 무대의상, 분장 등 기초지식을 위해 끊임없는 공부를 통해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기본적인 소양을 아우를 수 있는 무용가가 천재라는 칭호를 부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모한 도전’을 많이 해야 한다.
끝으로 공연기획자이자 안무가로서 하고싶은 말은.
아쉬움을 토로해도 될지 모르겠다(웃음).
사실 기획부터 공연까지 준비 기간이 짧아 보다 세심한 준비가 부족하였다.
축제나 기획공연이 단지 무사히 끝나는 것에 만족하면 절대 안된다. 노력은 안하고 결과만 잘 나오기를 바란다면 그야말로 욕심일 것이다. 죽을 각오로 안무가와 출연자, 스탭, 행정가 모두가 전력투구해야한다.
또 하나, 문화예술계에 홍보 마케팅 부분이 작품의 질보다 우선할 때가 많다. 한 예로 유럽에 진출한 일본 기업은 자국의 문화예술 띄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대사관 또한 여기에 단단히 한 몫을 한다. 이러니 일본인이 세계적인 예술가가 많이 배출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 예로 도요타는 수년 전에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2년에 걸쳐 무려 200억원의 스폰서십을 맺었다. 일본 지휘자를 상임지휘자로 앉히는 게 요구 조건이었다. 일본 측에서는 패전에 대한 이미지 전환, 그들이 판매하고 있는 렉서스 차량의 고급이미지화를 위해 일본 예술가를 전면에 내세웠다. 국익과 기업이미지 혁신, 예술가를 후원하는 등 일석삼조 효과였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또 동등한 자격을 갖춘 한.중.일 무용수가 유럽에서 오디션을 보면, 공연관계자가 세 명중 누구를 선택할 것 같은가. 가장 먼저 일본인을 택한다. 국가나 기업 후원 때문이다. 다음은 중국인을 택한다. 민족성이 강해 객석이 단체 중국 관람객으로 메워진다. 하지만 한국 무용수는 홀로 고군분투한다. 이것이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만의 어법, 국가 브랜드가 필요하다. 일본 부토(죽음의 춤: 독일의 표현주의 위에 일본의 노부나 가부기로 색체한 일본의 현대무용)를 떠올리면 된다. 일본의 부토는 세계 축제에 연일 초청되고 있다. 우리만의 독특한 브랜드를 가진 춤이 필요하다.
김종덕 프로필 전) 서울시립무용단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실기과, 한양대학교, 중앙대학교 및 국립국악고등학교 출강 [논문] (택견의 ‘제기차기’를 통해서 본 한국전통춤의 하체 움직임의 효율성 연구), (전통무예의 춤언어 환치 가능성 연구) -안무자 김종덕의 춤 화두는 ‘현대인, 현대인에 맞는 춤언어’이다.(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평론가 김채현) 1991-1993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장학생 2001. 제8회 민족춤제전 [그리움의 가속도] 안무.출연(문예회관 대극장) 2006. 제1회 댄스 비엔날레 서울 [ile] 안무.출연(서대문문화회관 대극장) 2008. 5.18 기념문화재단 초청공연 [작은 위로] 안무.출연 2010년 3월 대학예술극장 <창의와 실험프로젝트 I> 김종덕 창작춤집단 木-issue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