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국을 사랑해 한국의 풍경 찍는 일본인 사진작가, 후지모토 타쿠미
-인터뷰/한국을 사랑해 한국의 풍경 찍는 일본인 사진작가, 후지모토 타쿠미
  • 이은영 편집국장,이희라 통역
  • 승인 2011.06.16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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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카와 타쿠미의 환생인가? 한국에 오면 뭔지 모를 에너지 느껴져

-“풍경은 달라졌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심은 달라지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시대 조선에 한 일본인이 있었다.
그의 묘비명에는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 속에 살다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되다’라고 적혀 있다. 묘비의 주인은 ‘아사카와 타쿠미’(1891~1931). 그는문화와 언어까지 빼앗은 비도덕적인 식민지정책아래 지극히 조선을 사랑해 조선사람과 같은 복장과 언어를 사용하고 죽어서도 한국에 묻히길 원해 서울 망우리에 잠들어 있다.

 그의 영향을 받아 한국의 풍광을 40년전부터 사진으로 기록하는 또 다른 일본인 타쿠미(후지모토 타쿠미,61세)씨가 있다. 그의 선친께서 아사카와에 대한 존경심으로 아들의 이름까지 똑같이 지었다. 그 이름에 부응하듯 후지모토 타쿠미씨도 한국을 무한히 사랑한다. 무려 100번 이상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미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까지도 똑같다. 지난해 한국에서 첫 사진전을 열고 그간 자신이 찍어서 소장해온 한국의 60~70년대 풍광작품을 우리 국립민속박물관에 흔쾌히 기증하기도 했다.

 한국에 오면 어느나라에서 느낄 수 없는 에너지와 힘을 얻는다는 그는 마흔 살로 짧은 생을 마감한 아사카와 타쿠미가 환생을 한 것일까? 최근 방한한 그를 최진용 의정부예술의전당 사장과 함께 인사동과 청계천을 동행하며 인터뷰 했다. 그는 개발논리에 밀려 역사와 문화가 사라져가는 한국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국 사랑’의 진정성이 가득담긴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울림으로 다가왔다.  타쿠미씨와의 인터뷰는 일본어 동시통역사 이희라씨가 기꺼이 맡아주었다.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동안 한국을 수없이 오신 것으로 아는데 이번 방문 목적이 궁금합니다. 

▲ 후지모토 타쿠미 사진작가는 개발논리에 밀려 역사와 문화가 사라져가는 한국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드러냈다.

 100년 전에 1913년에 아사카와 타쿠미와 야나기 무네요시(아사카와 타쿠미 형제에게 한국을 소개받고 이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을 사랑한 일본의 종교 철학자이자 민속공예 운동가)같은 선생님들이 걸었던 한국 땅을 40년 전에 따라 걸었었는데, 그 길을 40년 만에 다시 걸으며 사진 기록 작업을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또 피맛골과 인사동의 모습을 찍는 작업이 있어요.

 -40년 만에 다시 만난 길에서 변화된 것들 중 이전과 특별히 비교할 만한 것이 있었는지요?
 야나기 무네요시가 100년 전에 걸었던 길을 제가 5,60년 후에 걸었고 그 때는 야나기가 남긴 기록 풍경과 흡사하고 별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새마을 운동 등으로 인해 많이 달라졌어요. 변화됐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별로 놀랍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에 통도사, 고령 수원 등을 돌았습니다. 경치나 풍경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느낌과 인심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무척 감동적이었어요. 특히 이번 방문에서 40년 전에 찍으러 갔을 때 만났던 사람을 이번에 또 만날 수 있었던 것이 특이한 경험이었지요. 같은 곳을 찍으러 가서 옛날에 만났던 사람을 또 만났다는 것에 서로 감격을 했습니다.

-이전의 작품을 우리나라 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고 들었습니다
 작년 이맘 때 인사동 ‘북스’라는 전시 공간에서 작품 전시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최진용 사장(의정부예술의전당)님과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최 사장님으로부터 ‘작품을 한국 민속박물관에 기증을 해 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고, 민속박물관과 연결을 해주셨어요. 저로서도 영광스러운 일이었고 ‘이 나라를 찍은 것이니까 이나라에 남겨 두는게 맞겠다’ 싶어서 작품 기증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특별히 한국에 관심을 갖고 사진을 찍게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에서 오히려 더 에너지를 느낍니다. 내 이름이 후지모토 타쿠미인데 아사카와 타쿠미라고 하는 분의 이름에서 연유됐습니다. 아버님께서 야나기 무네요시와 함께 ‘한국의 미’를 알린 아사카와 타쿠미라는 분의 책을 읽고 그 분을 존경한 나머지 제 이름을 그 분의 이름을 따서 지은거죠. 타쿠미를 닮으라고 이름도 그렇게 지어주셔서 그런지 한국에 오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에너지와 힘을 느낍니다. 다른 나라에도 많이 가봤지만 한국같은(특별하게 다가오는)나라는 없었습니다. 이유없이 ‘나와 참 맞는 나라’라는 느낌이 들어서 사진도 찍게된 것 같습니다.

▲ 후지모토 타쿠미 한국에서 첫 사진전을 열만큼 한국의 미를 발견하고 있다. 또 60~70년대 풍광작품을 국립민속박물관에 흔쾌히 기증하기도 했다.

 -아버님이 타쿠미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아버님이 결혼 전에 헌 책방에서 야나기 무네요시의 저서 한 권을 발견해서 읽게됐는데 ‘나의 염원’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그 책의 일부분에 아사카와 타쿠미의 얘기가 실려있었는데 그 분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기본자세에 감동 받아서 아들을 낳으면 타쿠미라는 이름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한국에 있는 아사카와 선생의 묘소에는 가 본 적이 있는지요?
 작년 겨울에 갔고 90년대, 70년대 총 세 번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방문했는지요
 100번 가까이 왔습니다. 사실  2000년대 이후로 한일 왕래가 잦아지면서 지금이야 매주 오는 사람도 있고 한 달에 몇 번씩 오는 사람도 있지요. 그런 사람에 비하면 횟수로는 어떨지(적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전에 한국에 오는 것이 일년에 4번씩 제한돼서 쉽지 않았던 시기에 한국을 자주 찾았다는 것이 그 의미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 후지모토 타쿠미가 자신의 스케치와 닮은 책을 찾아 기뻐했다. 청계천 문화관에서 (경성 100년 사진집,오른쪽)과 왼쪽 피맛골 그림지도(왼쪽).

 -좀 전에 청계천문화관에서 근대 서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고 오셨는데요.
저와 같은 기법을 써서 전시를 해 놓은 것을 보고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는 것에 무척 기뻤습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시간을 들여서 서울의 파노라마 사진을 쭉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지금껏 40년 해왔고 10년 더 하면 반세기가 되므로. 서울 뿐 아니라 부산이나 다른 지방 등도 같이 해보고 싶어요.

-요사이 한국의 변화상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옛날에는 인공적으로 손대지 않아서 아름다운 풍경과 장면들이 많아서 정말 순수한 기분으로 무조건 찍고 싶은 마음이 많았었지요. 그런데 자꾸 변화를 하다보니 찍을 것이 별로 없다는 느낌을 받아서 한동안 주춤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작년에 서울에서 전시회를 계기로 다시 한번 찍자하고  찍었고, 다시 찍어야할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러기 위해 객관적인 눈으로...예전같으면 수동적으로 거기에 부여받은 피조물을 찍었다면 이제는 새로 생긴 조형물에 마음과 자신의 철학을 넣어 찍는다는 것, 환경의 변화와 함께 사진가로서의 자세의 변화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역으로 한국에 대해 질문할 것은 없는지요?
 부산 고령 양산 이런 곳을 돌아다니면서 피사체로서, 사진모델이 되어준 분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면 관광명소로서 유명해졌을텐데 모든 것들을 개발하고 없애버려 사라진 것이 아쉽다”라고 합니다. 실제로 절 같은 곳에서도 핵심적인 뿌리가 되는 것들을 다 뽑아버리고 전혀 다른걸 만들어 놓은 것들을 봅니다.

 한 예로 이번에 강화도 옆에 있는 섬에 1911년 경에 지어진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는 고풍스런 교회가 떠올려지네요. 40년 전에 찍었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 가봤습니다. 교회는 교회인데 핑크색으로 옆에 있는 러브호텔같은 분위기로 변해버렸습니다. 교회에게 실례되는 얘기겠지만,고풍스런 모습을 버리고 케익처럼 예쁘게만 만든것은 귀엽긴 귀엽지만 경박스럽게 느껴졌어요.

 김해에 있는 절에 가봤더니 절 본당이 아래쪽은 화려하고 위쪽은 소박하게 돼 있어서 왜 그런가 하고 물었습니다. 주지스님 말씀이 자기들도 다 예쁘게 칠하고 싶었는데 기부금이 모자라서 못했다고 하더군요. 결론은 위쪽까지 단청을 화려하게 하고 싶었던 거였습니다. 제가 느낀 것은 한국의 취향이 뭔가를 하면 갈 데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음식 같은 경우 매운 것도 극도로 맵게 그러나 커피 같은 것은 매우 달게 마시는 경우지요. 하나 하면 끝까지 해야한다는 것이 중간을 취하는 일본의 경우와 많이 다릅니다.

▲ 최진용 의정부예술의전당 사장, 후지모토 타쿠미, 이은영 발행인(왼쪽부터)

 -소박하게 전체를 하면되는데 그 부분에 대한 지적일 수도 있겠습니다.
옛날 한국 백성들은 검정과 흰색 기조로 심플한 색상을 즐겨입었는데 언제부터 화려한 색상으로 변하게 됐는지 의외라는 생각이 들어 궁금하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절대 군주제라서 임금님이 돌아가시면 국상으로 온나라가 장례를 치러야하고 그런 전통이 조선 몇 백년동안 내려와서 온 백성들이 흰옷을 입었는데 어느날 무척 화려해진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에 고분 같은 것에 후세사람들이 덧칠을 한다면 그것이 좋은 지 안좋은지 모르겠지만 다른 모습으로 변용이 되는 것이잖아요. 일본에서는 절이든 옛날 건축물이든 절이든 문화재로서 미술품으로 보기 때문에 원래대로 보전 시켜야 가치가 있다고 해서 손도 대지 않고 보존합니다. 한국에서는 절이나 종교시설 등이 사람들이 항상 찾는 생활공간이자 부처님께 실례가 된다고 생각해 지저분해지면 다시 칠해야지 생각하는 감각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미술품으로 보는 일본의 시선과 생활 공간으로서 예술품을 보는 시선의 차이가 아닌가 싶어요.

-사진철학을 말씀해 주신다면.
사진같은 경우 제일 중요한 것은 감정을 집어넣지 않고 담담하게 그 기록들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이 일반적인 영화와 다른 것은 영화는 화면이 흘러가기 때문에 장면마다 시선이 한곳에 멈추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사진은  한 장면 한 장면 사람의 시선이 정확히 멈추고 거기서 읽어내려고 하기 때문에  후세에 남길 것은 사진 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진 작업을 앞으로도 계속 주력해 나갈려고 합니다.

▲ 사진을 찍을때 감정을 집어 넣지 않고 담담하게 기록하는 그는 일반적인 영화와 달리 사람의 시선이 정확히 멈추고 거기서 읽어 내려고 하기 때문에 사진만큼 좋은 것이 없다라고 전했다.

  인터뷰 이은영 편집국장/ 동시통역 이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