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판옥선' 통제영 420여 년 만의 회항
통영, '판옥선' 통제영 420여 년 만의 회항
  • 김종수 기자
  • 승인 2011.06.18 14: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통제영 삼도수군통제사의 지휘선 '판옥선'

충남 서천에서 건조된 판옥선이 예정보다 하루 빠른 지난 6월 17일 통영시 강구안에 도착했다. 경상남도 이순신프로젝트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1592년 거북선 등 군선원형복원사업'으로 건조된 판옥선은 전장 41.8m, 폭12m, 높이 7m(돛대 포함 총 높이 20m), 총톤수 284톤의 무동력선으로 승선인원 164명 정도의 순수목재로 건조된 대형전선이다.

▲420여 년 만에 통제영에 돌아온 판옥선

거북선은 이충무공과 조선수군 승전신화에 상징적인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수군이 왜군에 승리한 것은 뛰어난 전술과, 왜군의 전술을 철저히 분석해 대응한 전략적 승리이지, 소수의 거북선의 활약으로 이루어진 업적으로 치부하면 대업을 깎아내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조선수군 함대는 판옥선과 협선을 주축으로 거북선, 포작선 등 여러 종류의 함선들로 구성됐고, 각각의 역할이 있었다. 거북선은 실전에 운용된 선수가 3척에서 최대 5척으로 임진왜란 당시 운용된 건 모두 8대 이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판옥선은 최대 60척 이상이 함께 출장한 기록이 전해진다. 해전사에 길이 남을 이충무공과 조선수군의 승리에서 거북선이 어떤 역할을 했든 그 상징성은 무시할 수 없지만, 판옥선은 가장 큰 공을 세웠음에도 거북선의 특이한 외형과 추측으로 만들어진 신화에 가려 그저 군선 혹은 이충무공의 지휘선으로 전락해 그 우수성을 평가절하 받았다.

▲통영시 향토역사관에 전시된 '조선삼도수군조련전진도'

거북선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판옥선

거북선은 전후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조선 수군 함대 내에서의 역할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외형이 등껍질이 단단한 거북 같은데 착안해 적함의 측면을 선체로 충돌해 침몰시키는 돌격선이었다는 의견이 있다.

거북선은 본디 판옥선에 지붕을 덧씌워 만들었는데 판옥선 최대의 단점이 기동성이 느리다는 것이다. 그런 판옥선에 지붕까지 얹은 거북선이 적진을 휘젓고 다닐 만큼의 기동력이 있었을지 의문이다.

또 조선수군이 화포를 주력으로 한 원거리 공격 위주의 전술을 펼쳤는데, 지붕이 있어 화공에 약한 거북선이 정확도가 떨어지는 아군의 화포가 머리위로 떨어질지 모를 적진으로 들어가 진영을 교란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일부 해전에서 적의 진영 측면을 기습하는 양동작전을 펼친 기록은 있으나, 국지적으로 활용했을 뿐 주력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거북선의 특이한 외형이 적에게 위압감을 주는 목적이 없진 않았겠지만, 외형과 상관없이 판옥선과 함께 화포 위주의 원거리 공격을 했다는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조 대에 작성된 '각선도본'의 '판옥선'

선체 충돌과 계류는 왜군 전술, 이에 대응할 전술은 화포

거북선과 판옥선의 역할을 이해하려면 당시 해전의 양상을 알 필요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주력선인 안택선은 빠른 기동력을 가졌고, 승조인원의 수도 판옥선의 배 이상이었다.

왜군은 안택선의 기동력을 이용, 조선수군의 전선에 계류(배와 배를 붙이는 것)해 단병접전(짧은 병기로 맞붙어 싸우는 것)으로 선체를 점령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반면 선체가 얇은 판자와 쇠못으로 연결돼 화포의 반발력을 견딜 수 없어 화포의 운용이 어려웠다. 또한 침저형의 선체로 속력은 빠르지만, 회전반경이 컸다.

판옥선은 높은 선체와 평평한 바닥으로 기동력이 떨어졌지만, 1층의 격수(노꾼)와 2층 상판의 전투원을 분리된 공간에 배치해 전투상황에서 혼란을 피했고, 화포를 다루기 수월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공간 분리로 높아진 선체는 왜군의 계류를 막는 역할도 했다.

또 평평한 바닥으로 안정적으로 떠있을 수 있고, 작은 회전반경으로 빠른 선회가 가능해 화포를 주력으로 한 전술을 펼치기 용이했다. 전투원의 대다수가 포수와 활을 쏘던 사부들로 구성되었다.

조선수군은 선회가 느리고 화포 운용이 어렵던 안택선과, 근접계류 후 단병접전을 위주로 한 왜군의 전술을 역이용, 좁은 해협에서 에워싼 후 판옥선을 중심으로 화포를 쏟아 붓는 전술을 펼쳤다.

이렇듯 판옥선은 조선수군의 활동 지형과 왜군의 전술을 철저히 파악해 제작된 맞춤형 전선이었다.

▲왜군의 주력선인 안택선(아타케부네, 중앙)과 세키부네

삼도수군통제사의 지휘선 '판옥선' 420여 년 만의 회항

이제껏 찬밥 아닌 찬밥 신세를 받던 판옥선이 420여 년 만에 복원돼 통제영의 바다에 다시 뜬다. 마침 통제영지의 복원이 한창인 이때 시기적절하다.

여수와 남해를 비롯해 거북선을 복원해 전시하는 지역이 늘고 있다. 거제시도 판옥선과 함께 건조된 3층으로 복원된 거북선이 정박하게 된다.

통영시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시장 재임시절 기증한 거북선이 있었지만, 통제영은 삼도수군통제사의 임지였고 조선수군의 주둔항이었던 걸 볼 때 판옥선이야말로 통제영지로서의 위엄을 갖게 해 준다. 타 지역과의 경쟁에서도 차별화로 인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판옥선과 거북선을 강구안에 띄워놓고, 통제영지를 복원한다 해도 관람객들의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얼마나 호응을 얻을지는 미지수다. 통제영지와 연계해 판옥선과 거북선에 대한 이해를 도울 콘텐츠의 개발이 시급하다.

판옥선을 그저 이충무공의 지휘선으로만 홍보했다간 통제영지와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이미 선점해 있던 이점마저 격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세트의 재현으로 전락하느냐, 통제영지의 새로운 상징으로 자리 잡느냐는 거북선과 통제영지와 더불어 하나의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달려 있다.

막대한 국비를 투입해 건조한 판옥선이 꿔다 논 보릿자루로 전락하지 않게 조선수군의 주력선이며, 통제영 삼도수군통제사의 지휘선에 걸 맞는 콘텐츠를 마련해 타 지역과 차별된 통제영지의 새로운 상징으로 자리 잡길 기대한다.

판옥선은 강구안에 정박 중이며, 오는 8월 한산대첩 기념제전 행사 기간에 맞춰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현재 관람객을 맞이하기 위한 안전시설과 조명설비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강구안에 정박중인 거북선과 판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