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장경 전산화로 불교선진화 주도...종림 스님
고려대장경 전산화로 불교선진화 주도...종림 스님
  • 권대섭기자
  • 승인 2011.06.2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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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발전’ ‘문화선진국’이끌 불교적 비전 축적

일반 대중 쉽게 접근할 ‘불경(佛經)의 세계’로 시대변화 주도할 터

▲종림스님

2011년 6월 19일, 고려대장경 천년 문화축전 100일을 앞둔 ‘팔만대장경 이운행사’가 서울 인사동 도심과 경남 합천 일대에서 열리고 있었다. 이때 스포트라이트 화려한 이벤트의 이면에서 조용히 자기 할 일을 찾아 몰두하고 있는 이가 있었다. 고려대장경 연구소 이사장 종림 스님이었다. 종림스님은 이날도 일부 직원들과 함께 자신의 사무실을 지켰다. 고려대장경 전산화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다음 작업을 구상해야 하는 노스님. 국력을 기울여 제작하고 보존해 온 고려대장경의 위상을 생각하면, 그 전산화작업도 역시 국가적 과제일 터이다. 그런데 그 막중한 과업을 민간연구소(사, 장경도량 고려대장경 연구소)를 설립해 수행해 온 종림스님은 어떤 분일까? 궁금해 하며 일요일 오후 안암동 연구소를 찾아갔다.    

먼저 서울에서 또 경남에서 고려대장경 1천년을 기념하는 세계문화축전 100일을 앞둔 ‘대장경 이운’재연행사가 열렸습니다. 대장경 전산화 작업을 주도해 오신 스님 같으신 분이 보시기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대장경은 바로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판각한 지 올해로 천년 째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요. 특히 이런 행사를 통해 고려대장경의 존재와 의미를 전국민들이 함께 되새겨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스님께서 주도하신 고려대장경 전산화 사업이란 어떤 것인지, 또 왜 필요한 지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정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문자 그대로 전산화란 정보화 사업입니다. 우리국민이면 누구나 고려대장경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쯤은 들어서 존재를 알고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대장경이 어떤 내용인지, 어떤 의미인지는 일반 국민들은 사실 알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대장경 판각은 물론, 그 내용을 접근조차 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희들의 대장경 전산화 작업은 궁극적으로 우리나라와 세계의 대표 문화유산으로서 손색이 없는 고려대장경의 존재와 내용을 일반대중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한문으로 된 대장경을 전산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글로도 번역된 대장경을 인터넷 검색에서 찾아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지요.

대단한 작업입니다. 현재 작업공정은 어디까지 된 것인지요?    

-현재 저희들이 하는 작업은 한문 대장경의 전산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한글화 작업은 동국대학교에서 별도로 진행 중입니다. 한문본의 전산화를 본다면,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거의 정리가 다 됐습니다. 초조 대장경도 마무리 단계입니다. 중국 돈황문헌도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밖에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 고려문종의 넷째 왕자로 출가, 불교에 귀의 후 천태종을 창시)스님의 교장총록(敎藏總錄)을 전산화하고자 문화관광부에 예산을 지원 요청해 놓은 상태입니다.

고려대장경은 초조대장경 교장총록 팔만대장경을 아우른 개념
국난극복 과제는 현재진행형...경전 디지털화로 국민 자부심 담보

초조대장경이니 해인사 팔만대장경이니 돈황문헌, 교장총록 등은 다 무엇입니까? 쉽게 설명해 주십시오.    

-우선 대장경은 삼장(三藏)이라고도 하는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45년간 설한 내용을 기록한 경장(經藏), 계율 및 그것을 해설한 율장(律藏), 경(經)의 주서문헌인 논장(論藏)을 집대성한 불교 최대의 경전입니다. 후대에는 부처님의 제자를 비롯한 인도 중국 등지 고승(高僧)들의 문헌까지 포함됩니다. 언어별로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한문, 티베트 대장경 외에 한문 장경과 티베트 장경을 번역한 몽골과 만주 대장경 등도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고려 대장경은 고려시대에 제일 먼저 제작한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 1011~1087년, 제작기간 76년 소요)과 몽골 침입으로 초조대장경이 불탄 뒤에 다시 제작한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 1236~1251년, 제작기간 16년 소요), 그리고 초조대장경과 재조대장경 사이에 대각국사 의천스님이 만든 교장총록(敎藏總錄), 이 세 개를 합쳐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 재조대장경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팔만대장경인 것입니다. 그리고 돈황문헌이란 것은 저 유명한 중국 돈황석굴에서 발견된 불교경전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돈황문헌을 포함한 해외 불교경전 문헌까지도 체계적으로 전산화 해 색인을 다 만들 작정입니다.

고려대장경을 포함한 불교경전 전산화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뒤쳐져 따라가는 불교가 되지 말고, 앞서 주도하는 불교가 돼야 한다는 소명의식에서 비롯됐다고 하겠습니다. 고려대장경연구소가 설립되던 1993년 무렵은 한국불교가 약간의 혼돈상태를 겪던 때였습니다.

아시다시피 70~80년대의 민주화 요구시대를 보내면서 불교계에서도 ‘민중불교’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일제 강점기 만해 스님이 주창하셨던 불교유신운동처럼 불교계의 제도개혁과 혁신 등을 통한 사회참여 운동이었지요. 하지만 그런 개혁적 성향의 움직임은 90년대 중반으로 치달으면서도 별 성과없이 엉거주춤한 상태로 빠집니다.

그때 생각한 게 불교 경전의 전산화 작업입니다. 물론 그전부터 논의와 준비과정이 있었습니다만 사회변화에 뒤쳐져 가는 불교계 현실을 보면서, 이념운동이나 제도개혁 등과 별개로 정보화시대를 빨리 준비하고, 앞서가야 겠다는 생각이 절실했습니다.

궁극적으론 불교경전을 쉽게 찾아 접근하고, 공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함으로써 불교대중화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대중화라는 저변확대가 이루어질 때 깊이와 변화의 역동성이 확보되는 것이라 봤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사회변화와 발전을 추동하는 ‘불교적 저력’도 표출되는 것으로 봤습니다. 물론 그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고, 도도한 역사발전 속도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경전의 전산화 작업은 장기적으로 불교 대중화와 사회변화, 역사발전에 역할하려는 ‘불교적 비전’을 품고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어려운 경전을 전산화하는 작업과 관련한 다른 나라 특히 일본이나 중국의 움직임은 어떻습니까?

-적어도 경전 전산화작업은 현재 우리가 가장 앞장서 있습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불교 경전 간행이나 연구 등과 관련한 동양 삼국의 흐름은 몇 차례 역전극이 펼쳐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엔 당연히 중국이 앞장섰던 것이고, 우리가 발전시켜 팔만대장경을 목판으로 간행했는데, 일본에선 그것을 여러 차례 시도했음에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맨 날 우리한테 와서 강짜를 부려 책을 얻어가곤 했지요.

그러던 일본이 불과 백 년 전에 와선 이른바 ‘활자본 대장경’을 대량으로 만드는데 성공하고, 색인까지 잘 만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불교연구를 위해선 일본의 자료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일본이 불교연구의 선두주자가 된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경전의 전산화, 즉 디지털화를 앞서 시작함으로써 이제는 일본과 중국의 학자들이 우리 자료를 검색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한국이 동아시아 불교연구의 선두주자가 된 겁니다.

고려시대 때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의 제작은 국난극복을 위한 전국민적 이슈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를 포함한 고려대장경 전체의 전산화 작업은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이 많은데요.

-그렇습니다. 고려시대 때 국민적 공력을 들여 대장경을 만들고, 또 그것을 600년 전 조선시대 때 역시 국민적 역량을 동원해 합천 해인사로 옮겨 지금껏 보존해 온 정성을 생각하면 현재의 전산화작업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후속작업입니다.

다만 지금의 정부와 심지어 조계사에서마저 전산화 작업자체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 건 이 작업이 눈에 보이는 생색이 별로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씁쓸하지요. 요즘 사람들은 크게 쇼(보여지는)가 되는 일들만 너무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게지요.

우리나라와 국민의 문화적 자부심을 상징했던 대장경 디지털화는 당연히 국가가 앞장서 주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고려대장경 연구소’라는 민간기관이 수행하도록 놔두면서 엉뚱한 데 예산을 쏟아 붓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고도 우리가 ‘문화의 세기’니 ‘문화선진국’을 논할 수 있단 말입니까? 재정문제는 어떻게 해결해 오셨나요?

-좋은 지적입니다. 역시 보이지 않는 작업이기 때문에 별 관심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처음엔 대기업 삼성에서 많이 도와줬고, 정부에서도 차츰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잘 될 것으로 봅니다. 초조대장경 전산화를 2004년에 시작해서 지난해 마무리 하고 나니 마침 대장경 간행 1천년의 해가 됐습니다. 고무적인 일이지요.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데 스님께서 방문 앞까지 나와 “잘가~!”하셨다. 무척 소탈하고 편안한 시골 할배 이미지였다. 세계적 문화유산인 고려대장경 전산화라는 어마어마한 일을 추진해 온 공력은 저분의 어디에 숨겨놓고 있는가?

‘고려대장경과 한국 불교 역시 언젠가는 저토록 편안하고 소탈한 면모로 대중 속으로, 세계 속으로 스며들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