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알면 세상이 보인다-2]룩소르에서 생긴 부끄러운 의심
[여행을 알면 세상이 보인다-2]룩소르에서 생긴 부끄러운 의심
  • 정희섭 / 글로벌문화 전문가
  • 승인 2011.06.2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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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신전의 도시 이집트 룩소르. 카이로에서 열차로 10시간 이상 걸리는 먼 곳. 아침 일찍 출발해도 나일강에 석양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즈음에 도착하게 된다. 열차 안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일강에 서서히 내려 앉는 해를 보는 것만으로도 찬란한 고대 문명의 진수를 맛보는 것 같다.

룩소르에 있는 멤논의 거상, 왕가의 계곡, 카르낙 신전, 핫셉슈트 신전 등을 보다 보면 왜 많은 사람들이 약 500년간 이집트의 수도였던 룩소르를 보지 않고서는 이집트를 논할 수 없고, 룩소르가 이집트의 정신적 버팀목이라 말하는 지를 금방 알게 된다.

그런데 감동을 한 순간에 가시게 하는 것이 이집트인들의‘바쿠시시’라는 말이다. 룩소르역에 내리자마자 몰려드는 아이들의 덜 익은 듯한 바쿠시시 소리. 바쿠시시는 어떤 서비스를 받았을 때 지불하는 일종의 팁과 같은 것이다.

서비스의 종류를 불문하고 어떤 도움을 받았을 때, 도움을 준 사람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지불하는 수고비 같은 개념이다. 원래 바쿠시시는 이슬람 교리에 따르면 많이 가진 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도움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갑작스럽게 다가와 신발을 닦거나, 원하지도 않은 길안내를 하고 나서, 바쿠시시를 달라는 소리를 들으면 위대한 조상들이 이룩해 놓은 문화유적을 팔아 먹고 사는 게으른 거지근성이라는 나쁜 마음만 생긴다.

저녁 일곱 시가 다 되어 룩소르 역에 도착한 나는 숙소를 찾아야 했다. 많은 호객꾼들이 숙소를 찾는 나에게 다가와 흥정을 시작했다. 그 중 15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하싼이라는 이름의 소년이었는데 어투나 행동거지가 불량해 보이지도 않아서 흥정을 시작했다.

하싼에게 약간의 바쿠시시를 내어 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그가 소개해 준 호텔에 투숙하기로 했다. 바쿠시시를 하싼에게 주고 헤어지려는 순간 나에게 던지는 하싼의 한마디. “괜찮다면 내일 우리 집으로 초대하고 싶어요”

어린 소년의 제안을 무시하는 것도 그렇고 해서 얼떨결에 동의는 했지만 한 편으로 괜한 약속을 한 것은 아니었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 나를 이상한 곳으로 데려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이 생겨났다.

다음날 아침 약속 시간보다 20분 먼저 호텔 로비에 나가서 하싼을 기다렸다. 외국 여행을 하며 몸에 밴 나의 습관이기도 했지만 어제 처음 만난 이집트인의 집으로 초대 받아 간다는 사실에 난 조금 더 긴장했다. 어제 그냥 바쿠시시를 손에 쥐어 주고 끝내었으면 이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작은 후회의 물결이 머리 속에 일기 시작했다.

하싼은 나를 데리고 가기 위해 차를 가지고 왔으며 자신의 친구가 이 차를 운전할 것이라고 했다. 호텔 정문을 나가니 차 한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운전석에는 하싼보다 다섯 살은 더 먹었음직한 청년이 타고 있었다. 차가 호텔을 출발한 지 20분 정도가 지났다.

차 안에는 적막 만이 감돌았다. 사탕수수밭을 지나 굽이굽이 안으로만 계속 들어 가는 자동차. 난 순간 불안해졌다. 이 두 사람이 설마 나를 해코지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차창 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에게서 돈을 강탈하고 죽인 후에 땅에 매장해 버린다고 해도 아무도 모를 것처럼 말이다.

십분 정도 더 가서 하싼의 집에 도착했다. 다 쓰러질 것 같아 보이는 토담집이 눈에 들어 왔다. 이방인을 보고 개가 짖어댔다. 개 짖는 소리가 마치 오기 싫은데 왜 우리 집에 굳이 왔어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차에서 내리는데 나의 다리에서 이미 힘이 빠져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난 정말 긴장하고 있었다.

내가 약간은 어리둥절해 있을 때, 하싼은 나에게 가족들을 한 명씩 소개했다. 약 삼십 분 정도가 지났을 까 하싼의 누나가 커다란 양은쟁반에 빵과 치즈 같아 보이는 것을 들고 방으로 들어 왔다. 난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먹으면 왠지 잘못 될 것 같은 생각도 들었고 빵과 치즈가 정갈해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내온 음식을 거부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빵의 한 조각을 잘라 치즈를 발랐다. 그리고는 용기를 내어 입에 넣었다. 순간 자연의 맛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맛이 너무 좋았다. 난 큰 빵 한 개와 종지에 가득 차 있었던 치즈를 순식간에 비웠다. 나의 먹는 모습에 하싼의 가족들은 미소를 지었다.

난 순간 부끄러워졌다. 그들의 미소를 더 이상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큰 부끄러움이 마음 속에 밀려왔다. 내가 저들의 순수한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죄책감. 한편으로는 바쿠시시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나의 가벼운 생각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하싼의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떠날 때 하산의 가족들은 내가 탄 차가 안보일 때까지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방인인 나에게 이렇게 호의를 보여준 하싼과 그의 가족들에게 무어라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 지를 몰랐다. 룩소르를 떠나 이집트의 다른 도시를 여행하는 나머지 일정 동안 바쿠시시는 더 이상 나쁜 소리로 들리지 않았고 마음 속의 의심들도 서서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