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언론인’, 내 자질 극장 운영에 최대 활용 할 터
‘어쩔 수 없는 언론인’, 내 자질 극장 운영에 최대 활용 할 터
  • 편보경 기자
  • 승인 2009.04.24 16: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연철 국립극장장 , 현재와 연장선 있는 공연, 홍보와 마케팅 주력


올 2월 국립극장장으로 취임한 임연철 극장장은 자신을 ‘어쩔 수 없는 언론인’이라고 소개했다. 현장에서 가장 가슴이 뛰었던 그는 현재 기자들에게 ‘취재를 당하는’ 입장이 되어 기자들을 만나는 것이 너무 좋단다.
그는 또 ‘인생은 60 부터’라는 말을 몸소 실천했다. 57세의 나이에 대학원에서 문화예술경영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중앙대 교수를 역임한 바 있어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 특보로 활동한 후광을 입은 코드 인사가 아니냐는 비판 어린 시선을 무마시키고 있다.
 현재 국립극장의 ‘살림살이’에 몰입하고 있는 그는 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국민들과 더 가까운 국립극장이 되게 하기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다. 취임 한지 3개월이 되어가는 지난 4월 초 봄 꽃이 활짝 핀 국립극장.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예전에는 극장에 와서 단지 공연을 구경하고 공연이 잘됐는지 못됐는지를 따졌는데 막상 극장장이 되고 보니까 출연하는 사람 입장, 연출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네요. 국민의 세금을 알뜰하게 써서 살림살이를 잘 하는 한편 좋은 공연을 만들어야하는 것을 생각을 하다 보니 공연 보는 것이 별 재미가 없네요.”(웃음)

그가 국립극장장으로 취임한지도 어느덧 3개월이 되었다.

관객으로 국립극장을 찾았을 때와 국립극장장으로 직접 운영을 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다른 점이 많다는 그는 최근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뛰다 튀다 타다’라는 퍼포먼스적 국악공연을 펼친 것에 관해 국립극장의 미션인 전통에 바탕을 둔 현대적 재창조와 맞아 떨어지는 공연이라고 극찬했다.

▲ 임연철 극립극장장

“국립극장의 미션은 전통에 기반을 둔 현대적 재창조입니다.

문화부 산하의 예술의 전당 같은 경우에는 서양공연을 중심으로, 아르코예술극장은 연극과 현대무용을 중심으로 하는 것 처럼 국립극장은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지요.

흥행을 중심으로 하다보면 문화가 단일화되고 다양성이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에는 직접적인 작품 제작에는 거의 관여를 안 하려고 합니다.

현재 국립극장에는 장르별로 예술 감독이 계시고 작품을 만들 때 각 감독님이 심사숙고 할 뿐만 아니라 단원들과도 충분한 논의를 거쳐 프로그램을 정하는 것일 텐데 제가 모든 분야의 전문가는 아닌 만큼 그것을 왜 하느냐 마느냐 말하기는 어렵지요. 저는 살림살이하는 것만으로도 복잡하기도 하구요. (웃음)

 ‘뛰튀타’ 반응이 너무 좋아서 지금 직원들에게 급작스럽긴 하지만 전국순회공연을 타진을 해보라고 했어요. 공연 리뷰도 좋게 나오고 하니까 DVD를 보내서 세일즈를 좀 하자 그랬지요. 하반기에는 전국순회 공연을 해 보려고 합니다.“

그는 현재 국립극장 내 박물관 설립을 야심차게 추진 중이다. 오는 10월 부분 개관을 할 박물관은 인터렉티브(interactive) 시스템을 갖춘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장품이 현재 10만점이 넘지요. 그동안 공연했던 중요한 작품들을 총망라해 놓으려고 하는데 너무 나열식으로 걸어 놓아서는 의미가 없고 선택과 집중을 하려고 해요.

요즘 젊은이들은 무엇인가 궁금하면 당장에 알아봐야 하는 것만큼 전시물과 함께 인터넷에 의한 인터렉티브(interactive-상호작용) 시스템을 갖추려고 해요. 가령 연극 ‘원술랑’에 나오는 대사를 듣고 싶을 경우 자판만 클릭하면 바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거지요.

최근 제가 대학원생에게 강의했던 책 ‘리스판시우 뮤지엄’ 이라는 책의 번역을 끝냈습니다. 국립극장장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작년 여름 방학 때 쯤 다시 읽어보니까 우리나라도 영국의 사례를 적용해 궁금한 것을 그 자리에서 바로 해결할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었지요.

제가 이곳에 와서 보니까 박물관을 건립할 것이 내정돼 있더라고요. 그래서 인터렉티브 시스템을 제안 했더니 예산이 고민이었어요. 일반 박물관으로 꾸밀 것을 염두에 두고 예산이 5억 7천정도만 책정이 되어 있었는데 인터렉티브 시스템으로 갈 경우 12억 이나 드니까 말이지요.

협찬을 받아볼까 했는데 다행히 추경 예산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더군요. 현재 국회 전문위원까지는 통과 됐으니 추경 예산이 통과 되면 바로 가능해 질 것 같습니다.“

그의 동아일보 기자생활은 어땠을까. ‘대 선배’인 임 극장장에 젊은 날 기자로서의 삶에 대해 묻자 본인은 현실에 충실한 사람인데 사건 현장에 가장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즐거웠다고 했다. 25년 그 생활 하다보니까 지금도 어떤 사건 현장을 보면 가슴이 뛴다고.

“74년에서 99년까지 기자 직종에 있었어요. 중앙일보에 74년에 입사해서 수습을 했는데 학부 때 역사공부를 했다보니까 문화부에서 학술기자를 하게 됐어요. 78년도에 동아일보의 문화부 기자로 스카웃되는 바람에 문화부 기자 붙박이가 됐죠.”

기자로서 가장 보람 있었던 것은 역시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특종을 많이 발굴한 것이었단다. 경주 용당동 고분 발굴에 대한 특종을 설명하면서 그 시절로 돌아간 마냥 눈이 밝게 빛났다. 

“고분이 무덤이다 보니 보통은 고사를 지내고 밤에 술들을 좀 하게 되지요. 깊은 이야기를 들으려면 아무래도 술을 먹어야 하니까 양주를 몇 병 가지고 발굴하는 분들을 찾아갔어요.

술을 마시면서 ‘뭐 화제꺼리 없나’ 그랬는데 한 사람이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아서 말은 안했는데 토우가 진흙이다 보니까 토기 귓밥 한쪽에 만든 사람이 남긴 지문이 선명하게 남아 있더라’고요. ‘사람은 죽었는데 지문은 남았네’ 그러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했지요.

저는 ‘신라인의 지문’이 남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사진을 잘 찍어서 기사화 했는데 다른 기자들이 무난하게 고분 발굴에 대한 기사를 썼으니 특종을 한 것만도 화제였지만 지문을 관리하고 있는 경찰청에서도 난리가 났었습니다. 이후 경찰청 지문 감식반 입구 문 위에 당시 제가 찍은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어요.”

공연과 관련해서도 문화부 기자들을 여럿 울렸다고 털어놨다.

“국민 성우 김세원 씨의 아버지가 월북한 김순남 씨였어요. 80년대 후반에 연좌제가 여전히 있어 안기영, 이건우 이런 분들의 음악도 못 틀고 밝히지도 못하게 했지요.

그 가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그 분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박용구라는 무용 평론가 분을 만나니까 연좌제 피해에서 100프로 해금이 될 때까지는 사연을 안 밝힐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해금이 되면 말해주겠다고 했는데 해금이 된다는 사실을 사흘 전에 알게 돼 가족을 만나서 다 취재를 했지요.

김세원 씨가 펑펑 울면서 지난 20년의 세월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못 듣겠더라고요.” 엄 극장장은 이 대목에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른 두 작곡가에 대해서도 잘 취재를 해서 원고지 20매~30매가 되게 기사를 썼지요. 해금이 발표되자 남들이 정권 발표 기사만 실었는데 우리만 특종을 낸 거지요. 다른 음악기자들이 난리가 난건 말할 필요도 없고요.”

또 기억에 남는 것은 현재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 감독으로 계시는 황병기 선생님하고 윤이상 작곡가와 함께 초청 받아서 평양에 다녀왔던 것이지요.

"91년도였는데 평양에 3박 4일 있으면서 특별 배려로 금강산까지 구경했었어요. 당시 금강산을 방문한 사람은 정주영 회장 밖에 없을 때였죠.

또 작곡가 이건우 씨도 직접 만나고 평양 가서 소설 쓰는 사람, 연극하는 사람, 평양 봉수 교회 문화재 발굴 현장 그런 것도 다 그 쪽에서 제공한 벤츠를 타고 다니면서 취재를 잘했습니다. 기자로서 무척 즐거운 경험이었지요.”

그는 언론인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발휘를 해서 극장 경영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를 단지 성공한 기자로만 보기에는 부족하다. 그의 공부 욕심은 끝이 없었다.

중앙대에서 석사를 하고 57세의 나이에 성균관대에서 예술경영박사까지 취득한 후 중앙대에서 교수로 재직 했다. 현재 극장 내에 홍보 마케팅 팀을 신설한 것도 만든 것도 그 이유다. 이 부분이 과거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 특보를 담당한 코드 인사라는 말을 무마시키는 부분이다.

“ 만 58세가 된 2007년도에 동아일보 정년이었는데 정확히 2006년 9월이었어요. 그런데 적당한 후임자도 없어 1년씩 세 번을 더 연장하기로 했지요.

2007년도에는 중앙대에서 출강을 하기 시작했는데 초빙 교수로 본격적으로 일하는 것이 어떠냐 해서 2007년 2월 말에 기자를 그만두려고 했지요. 그런데 ‘동아 마라톤’의 중요한 행사 때문에 사무국장을 맡아 그것만 또 하기로 했습니다.

그 때 서울시하고 제휴를 해서 같이 했어요. 도시를 대표하는 마라톤 대회가 있어야하는데 동아 마라톤 대회를 서울 마라톤으로 바꾸면서 이명박 시장과 인연이 된 거죠. 2007년도에 선거도 있고 해서 강의를 하면서 언론 특보를 하게 됐습니다.”

예술 마케팅의 전문가이자 언론의 선배인 만큼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의 발전 방향에 대한 질문을 안 할 수 없었다.

“기자는 독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독자의 눈높이를 맞춰야 해요. 가령 백화점에 들어갈 때 주차권을 뽑아주는 아가씨가 무릎을 내리고 눈을 맞추면서 ‘오늘 즐거운 곳 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나 국립극장을 찾아오시는 관객 분들에게 ‘오늘 즐거운 공연 되세요’라고 말을 건네는 것 같지요.

문화를 아이템이 무궁무진하니까 통신원들을 많이 이용해서 현지 이야기들을 많이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현재 국립극장에서도 ‘미르’지를 발행 중이지만 뉴욕소식도 있고 호주 공연단체 소식도 간혹 실립니다.

저도 신동아 통신원 ‘안필립’이라는 친구를 섭외해서 좋은 기사를 받을 수 있었어요. 이렇게 하면 돈을 그렇게 안 들이고도 해외소식까지 생동감 있게 전해줄 수 있는 전문지가 되지 않겠어요?”

서울문화투데이 인터뷰 이은영 국장 young@sctoday.co.kr  정리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