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영복 (주)옥션 단 대표/ KBS TV 진품명품 위원
인터뷰-김영복 (주)옥션 단 대표/ KBS TV 진품명품 위원
  • 권대섭 기자
  • 승인 2011.07.08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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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미술의 매력은 여유와 포용성...감상하다보면 나도 그 경지

20~30대 젊은이들 관심보이기 시작...전통미술 시장 미래 희망적  

매주 일요일 오전. KBS TV 진품명품 화면을 풍미하는 사람. 서글서글한 인상과 독특한 음성으로 고미술 속 한문을 줄줄 읽고 해석해 준다. 전통가문이 오랫동안 소장하고 있던 고서적과 문서들의 비밀도 그 앞에 가면 시원스레 풀린다. (주)옥션 단(檀)을 설립, 고미술품 경매시장에 뛰어든 김영복 위원이다. 
 며칠 전 인사동 인근(안국로타리) 동일빌딩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TV에서 본 모습 그대로 ‘친절한 위원님’이다. 아주 편안하게 소탈하게 우리 고미술 전통문화 세계에 대한 소회와 방향을 이야기로 풀어낸다. 알고보니 그는 인사동에서 가장 오랜 우리나라 최고의 고서적 전문서점 ‘통문관’ 출신이다. 그곳에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며 이론도 정립했다.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현장 전문가다. 그래서 ‘김영복’인가 보다. 짧게나마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김영복 옥션 단 대표는 "20~30대 젊은이들이 고미술 세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전통미술 시장의 미래는 희망적"이라고 전했다. 

KBS TV 진품명품을 통해 고미술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알아 볼 수 없는 초서 한문을 줄줄 읽고 해석하시는데 어떻게 인연이 되었는지?

중고교 학창시절을 인사동 통문관에서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며 학교를 다녔는데, 1970년대 후반에 초서 잘하는 분을 만나 공부한 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특히 故이겸노옹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분은 제 은인이자 스승이신데 그 분 때문에 책장사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원래는 장사할 생각보다 공부에 매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분 집에서 지내기도 하면서 인사동 맨이 되었고, 제 인생행로도 결정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통문관에 이어 고서적 ‘문우’를 열어 인사동 사랑방 역할도 했습니다. 고미술 서적 부문 전문가로서 우리 고미술과 옛 서적의 향기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문우’는 지금 문을 닫았고요, 한때 기독교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저는 한번 빠지면 깊이 들어가는 성질이 있어 덕분에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다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고, 사색을 할수록 다시 동양으로 넘어 오게 됩디다.

수학에 비유한다면 서양은 부분집합이고, 동양은 진부분 집합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선 종교를 보면 서양 기독교는 영원히 신에 속한 인간이 돼야 합니다. 신의 종속물로서 주종관계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영원히 속한 바 된 부분인 거죠. 그런데 동양 불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엔 부처의 제자로 부분에 속했던 인간들이 나중엔 자기도 부처가 될 수 있잖아요. 부처의 경지에 도달해 부처와 같아지는 ‘진부분’으로 승화될 수 있는 거죠.

음악을 봅시다. 서양의 뮤지컬이나 오페라는 관객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관객은 그저 관객으로서 무대를 지켜야 합니다. 물론 연기와 스토리가 관객을 흡입하긴 하지만요...그런데 동양, 특히 우리나라의 판소리는 관객이 함께 추임새를 넣고 춤도 추곤 합니다. 음악과 관객이 부분관계에서 진부분관계로 발전하는 모습이죠.

마찬가지로 미술도 그렇습니다. 서양미술은 화면이 꽉 차서 들어갈 곳이 없지만 동양미술은 여백을 남겨 보는 이가 화면 속에 들어가 노닐 수 있게 됩니다. 글씨도 그렇습니다. 동양의 서예는 문종이 위의 여백과 함께 완벽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지요. 특히 추사체(秋史  김정희의 글씨)는 아름다운 조형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여백미와 조형 때문에 사람들이 그 작품과 ‘진부분’으로 하나 되는 경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그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여유와 포용성이 있는 거죠. 이런 점에서 우리 고미술과 옛 서적, 그리고 우리 글씨의 향기에 심취됩니다.

고미술 경매를 위해 옥션 ‘단(檀)’을 개장한 지 2년이 되어 갑니다. 그동안 성과나 결실이 있다면?

아직은 어렵습니다. 다만 고정고객(단골)이 점점 늘어나 앞으로는 희망적입니다. 서면응찰이나 전화응찰도 많이 늘어나는 모습입니다. 고무적 현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요즘은 젊은 분들도 공부하겠다며 가끔 찾아옵니다. 30~40대 젊은 분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참 반갑습니다. 당장은 어려워도 앞으로를 위해서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미술 시장의 추세는 경매가 대세를 이룰 겁니다.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전통이 곧 창조다’라는 마인드를 가진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데 제가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 옥션 단은 고미술과 옛서적 전문가인 김영복 대표가 맡고 있다. 그는 40여 년간 인사동에 머물렀다.

 “전통속에 창조 있어...대기업 2~3세들 ‘문화 경영’ 배워야”
“미술품 기증자에 세금 면제 등 혜택 줘야...선진국선 보편화”
  

우리 고서화 시장이 대중화된 분야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 분야 경매에 문외한들이 대부분입니다. 공부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서화 분야로 처음 뛰어드는 분들한테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고미술품을 제대로 수집하고자 하면 첫째, 사람을 믿어라. 두 번째는 공부를 해라, 셋째는 미술품을 믿어라...정도로 얘기합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안목이 있는 건 아닙니다. 선배를 믿고 어느 정도 배운 후 스스로 공부해야 합니다.

대상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연구하며 자문도 구하여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최종 선택을 결정할 때는 미술품을 믿어야 합니다. 옆에서 권하는 사람을 믿지 말고, 대상이 가진 미적 형태, 인물, 내용 등을 잘 살펴야 합니다. 물론 이런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만...그래서 처음엔 가격이 싼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도 많이 가보고, 각종 전시회 도록도 부지런히 섭렵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젊은이들의 참여가 더 많이 늘어나야 된다고 보는데, 대개 어느 정도 기간을 배우며 공부해야 되겠는지?

10년까지가 중요합니다. 잘못하면 10년 안에 환멸을 느껴 떠나게 됩니다. 안목을 키우고 고미술 시장을 제대로 누비는데 필요한 시간을 10년 정도로 봅니다.

그래서 저는 20~30대 젊은이들이 고미술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매우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배워서 40~50대의 농익은 활동으로 우리 전통 미술시장을 지키며 창조적 미래를 열려면 20~30대 때부터 배웠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20대 때부터 눈뜨기 시작해야 하는 거죠. 그때부터 수집하고 공부하며 노력해야 40~50대 쯤에 박물관도 차릴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중요한 건 당대에 혼자 모든 걸 이루려 하지 말고 디딤돌 역할도 생각하며 장기적으로 봐야 합니다. 

김영복 대표는 "전통속에 창조가 있으며 대기업 2~3세들이 문화 경영을 배워야 한다. 미술품 기증자에게는 세금 면제  혜택을 줘야 하며 선진국선 이미 그런 문화가 보편화됐다"고 말한다.

고미술품은 우량주이고 현대미술은 위험성이 큰 주식이라 말씀한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젊은 컬렉터들이 고서와 고미술에 안목을 키운다면 고부가가치 수집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만약 일반인들이 재테크로서 고서나 고미술품을 수집해도 괜찬겠는지요? 

시중엔 가짜들도 많이 돌아다닙니다. 특히 글씨는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안목을 키우며 10년 정도 공부해야 한다는 겁니다. 고서화나 고미술품은 아시다시피 남아있는 물량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전국적으로 많이 늘어나는 추세이지요. 그러니 고미술품을 사두면 확실한 재테크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사동 살리기엔 덜 벌고 고상하게 살자는 동양정신 필요”
“문화가 밀려나면 찾는 이 줄어들것...임대료 상승 자제돼야”

고미술 시장의 활성화와 대중화를 위해선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할 텐데 현재 우리나라 상황은 어떻습니까?

별로 좋은 상황이 아니죠. 우리나라는 미술품을 기증해도 세금면제를 안해 줍니다. 국회의원들이 문화산업 진흥에 대한 마인드가 있다면 이런 법안을 만들어 줘야 됩니다. 미국에선 좋은 미술품이 나오면 기업인이나 부자한테 연락이 갑니다.

기업인과 부자는 그 미술품을 사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또는 시민들의 접근성이 좋은 문화공간에 기부를 합니다. 대신 세금을 면제 받지요. 이런 풍토와 제도가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문화를 향유하는 시민생활의 저변이 넓어지는 겁니다. 우리도 문화선진국이 되려면 하루 빨리 그런 제도가 정착됐으면 합니다.

아까 말씀하신 ‘젊은 층의 참여’부분과 같은 맥락입니다만 기업이나 부자들 쪽의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선 대기업 2~3세들의 관심유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대기업 2~3세들이 문화를 공부하면 그 노하우가 경영에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사람은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여백(틈)이 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죽어라 일만 한다고 경영이 좋아지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여가생활과 틈을 줌으로써 새로운 동력과 성취동기 유발이 한층 강화되는 겁니다. 가끔 CEO들 중엔 직원들을 늦게까지 잡아놓고 빈 틈없이 일을 시키는 게 잘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착각이죠. 정말 일을 잘 시키려면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줘야합니다.

일을 할 땐 타이트하게 하다가도 쉴 땐 쉬게 하라는 거죠. 여가나 취미생활을 영화나 미술품 감상 등 문화에 둔다면 틀림없이 좋은 아이템과 동기유발이 파생됩니다. 그러면 저절로 일하지 말래도 스스로 일을 만들어 내는 직원들이 될 겁니다. 경영 전문가 양성과 일하는 회사분위기 진작에 반드시 필요한 게 문화생활이란 겁니다.

기업광고도 마찬가집니다. 탈랜트나 유명 스포츠맨을 모델로 한 광고도 있겠습니다만 기업내에 미니 박물관을 만들어 그것으로 광고 할 생각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직원들이 일하다가 그곳에서 쉬며 즐길 수 있다면 회사에도 큰 도움되고, 문화도 진흥되는 일거양득 효과가 있을 겁니다.

우리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현상도 사실은 걱정스러운 부분입니다. 전통이니 우리 것이니 하면 괜히 고리타분한 취급을 하는 분위기도 있고 말입니다.

-교육이 문제죠. 서구 지향적 교육이랄까요. 그러니 미술품도 서양시각으로 봅니다. 서구적 사고방식으로 우리 고미술을 보려 합니다.

예컨대 국립박물관 직원을 뽑는 시험에서 한문보다 영어 비중이 더 큽니다. 학벌도 따지고 말이죠. 그 분야 전문가를 찾으면 되는 게지 무슨 학력차별을 하고 그럽니까...서구적 시각을 벗고 우리만의 주체적 시각, 또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균형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초등학교때부터 안되어 있다고 봅니다.

통문관시절부터 인사동의 오랜 사랑방과 같은 역할을 해 오셨습니다. 요즘의 인사동은 많은 이들이 걱정스럽게 보고 있습니다. 높은 임대료와 상업화 추세에 밀려 문화의 흐름이 북촌으로 서촌으로 유랑하고 있습니다.  

-인사동과 북촌, 서촌(세종마을)을 포함한 종로구 일대는 서울 600년의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을 때 가치가 빛나는 곳입니다. 정체성이 거기에 있는 거죠. 그런데 장사속 상업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자본주의 돈독에 문화가 밀려나면 머지않아 사람발길이 뚝 끊어질 겁니다.

황폐한 미래를 자초하는 거죠. 사실은 돈을 좀 덜 벌더라도 고상한 쪽을 택하는 게 우리 동양정신입니다. 정부나 서울시, 또는 지방자치단체들도 이런 관점에서 현지 지도해야 합니다. 건물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대손손 인사동에서 부를 누리며 살고 싶으면 문화를 살려줘야 합니다. 돈 욕심을 조금만 자제하고 상부상조하는 마인드가 절실합니다.

김영복  대표는 "인사동 살리기엔 덜 벌고 고상하게 살자는 동양정신이 필요하며, 문화가 밀려나면 찾는 이가 줄어들 게 뻔한 상황에서 임대료 상승은 자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매체를 통해 하고 싶은 말씀은?

서민생활이 안정됐으면 합니다. 서민이 안정돼야 문화의 저변도 깊고 넓어집니다. 그래야 진정한 문화선진국이 되는 거죠. 일반시민들이 생활 속에 자연스레 문화를 즐기며 누릴 수 있어야 문화대국이 되는 겁니다.

 지금처럼 집값 감당에, 교육비에 휘청거려서야 문화의 보편화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서민의 경제수준 향상과 문화생활 보편화가 가능할 때 비로소 우리문화계도 융성하게 될 겁니다. 예컨대 문화선진국이 되면 과거 해외로 반출됐던 귀한  문화유산들도 저절로 돌아오게 됩니다. 일본 문화시장보다 우리 문화시장의 가격이 더 좋으면 일본으로 반출됐던 유산이 스스로 돌아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문화시장의 저변이 훨씬 넓어져야 하는 것이며, 거기엔 서민생활 안정이란 토대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당국자들은 이런 관점에서 문화정책을 생각해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