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대로(大路)의 묵은 숙제, 종묘 앞 박카스 아줌마
종로 대로(大路)의 묵은 숙제, 종묘 앞 박카스 아줌마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11.07.11 15: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유산 · 녹지축 중심 관문...신세대 구세대 함께 어울릴 날은

 

지난 4월 국회에서 열린 ‘세계문화유산도시 지원 특별법 공청회’에서 서울 종로구 김영종 구청장은 세계문화유산 종묘(宗廟, 종로구 훈정동. 사적 제125호) 주변 주민들의 열악한 주거환경개선을 위한 제도개선을 강조한 바 있다.

세계문화유산인 종묘를 보존하려다 보니 주변 지역 주택가 건축물 규제가 심해 주민들이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김구청장은 이때 슬럼화 된 현장 노후 주택사진과 거주민의 육성을 영상으로 준비, 국회의원들과 문화재 관련자 및 전국에서 모인 세계문화유산 보유 지역 주민들에게 상황의 긴요성을 부각했다.

 세계문화유산 종묘 주변이 겪는 이 같은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서울시와 종로구가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숙제다. 중요한 건 종묘 주변엔 이 문제 말고 또 하나 묵은 숙제가 있다. 바로 종묘 앞마당 광장에서 볼 수 있는 노인들과 그분들을 상대로 벌어지는 성매매 문제다.

 종묘와 인근 탑골공원은 종로 2~3가라는 지정학적 특성상 언제부턴가 노인분들 차지가 돼 버렸다. 사통팔달 서울 중심부 교통요지인데다 수년 전 충청도 천안까지 전철이 연결되면서 그곳 노인들까지 집결하는 장소가 된 것이다. 더군다나 한때 이곳에서 모 종교단체가 제공하는 점심 무료급식이 행해지면서 집에 있기 무료한 노인들은 아예 이곳으로 출근(?)해 놀다가 저녁이 되면 돌아갔다.

천안에서 이곳까지 왕래하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포함하면 그런대로 하루를 보내기 좋은 일정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교통망이 연결되는 서울 경기 수도권 노인들이 모두 집결하는 장소로 인식된 곳이 종묘 앞마당 광장과 탑골공원 일대이다.

 이러다 보니 자연 부작용도 생겨났다. 노인들을 상대로 행해지는 성매매가 그것이다. 이곳에서 성매매에 나서는 여성들은 ‘박카스 아줌마’라고 불린다. 40대 젊은 여성에서 70대까지 노인 여성들도 활동한다. 할아버지들에게 접근, 박카스를 권하면서 성매매를 유도하기 때문에 ‘박카스 아줌마’로 불린다. 처음엔 국내파 여성들로, 먹고 살기 힘든 노인여성이나 젊은 시절 사창가 직업여성이었다가 나이 들어 갈 곳 없게 되자 이곳에 흘러온 여성들이다.

요즘엔 중국에서 온 이른바 ‘조선족 여성’들도 많다고 한다. 조선족 출신 여성들 중 상당수가 한국에서 학교 다니는 자녀의 학비마련을 위해 이 길로 들어왔다는 것. 이들은 처음엔 주로 식당에서 일했지만 하루 종일 새빠지게 일해 일당 6~7만원을 버느니, 한번 성매매로 5만원 받는 쪽을 택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은 핸드백 속에 박카스 류의 음료와 가짜 비아그라 등을 비치하고 노인들을 꼬신다.

반면 이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60~70대 국내파 여성들은 한번 매매에 3천원에서 5천원 정도의 화대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해서 어떤 할아버지들은 박카스 아줌마에게 수 백 만원에서 최대 수 천 만원까지 뜯겼다는 소문도 나돈다.

 더 위험한 건 많은 아줌마들이 성병에 걸린 상태이며 치료보다는 불법으로 유통되는 항생제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들에 따르면 종묘 앞마당 광장과 탑골공원 일대에서 이렇게 활동하는 여성들이 많게는 100명이 훨씬 넘을 거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탑골공원이나 종묘 앞마당에선 젊은이들을 보기 어렵다. 아예 노인들이 점령한 공간으로 인식, 찾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한 때는 이곳 노인들의 대낮 음주 가무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 NHK방송은 무료급식을 위해 줄서 기다리는 노인들의 행렬을  촬영하기도 했다.

세계문화유산 종묘의 위상과 600년 서울 중심 종로의 이미지가 좋지 않게 되자 종로구는 몇 년 전 광장 전체에 나무를 심어 조치하기도 했다. 그 후 상황이 개선되면서 좋아지는 듯 했으나 최근 다시 박카스 아줌마들이 기승을 부리는 모양이다.
 
 같은 서울 중심이면서 이곳과는 상반되는 분위기를 유지하는 곳이 있다. 바로 명동이다. 명동의 풍경은 구세대와 신세대가 아직까지 함께 노니는 곳임을 보여준다. 서울 중앙우체국 부근 100년을 넘긴 명동 화교학교를 중심으로 보면 수 십 년 째 변함없는 모습으로 물만두와 맛있는 자장면을 만들어내는 ‘산동교자’ 등의 가게가 아직까지 나이 든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발길을 끈다.

 젊은이들은 유니클로와 밀리오레 등에서 옷을 사고는 딘타이펑이나 꽁시면관 등에서 시간을 즐긴다. 최근엔 중국인 관광객이 오히려 일본인 관광객을 압도하면서 환전소와 마사지센터, 선물가게들이 많이 늘어나는 모습이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성지였던 명동성당과 그 인근도 구세대와 신세대가 함께 어울리기에 무난하다.
 
 다시 종묘 쪽으로 가보자. 조선왕조 태조 3년(1394)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짓기 시작, 이듬해 완성된 종묘는 조선시대 왕과 왕비, 죽은 후 왕으로 추존된 이들의 위패가 모셔진 공간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이곳에 주둔하려 하자 밤마다 어디선가 신군(神軍)이 나타나 왜군을 공격했다는 전설도 있다.

 이에 왜군이 불태워 버린 것을 1608년 다시 지었다. 정전 건축물의 뛰어난 조형미와 역사적 인류학적 가치를 평가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지만 사실은 창덕궁과 이어지는 녹지 숲도 매우 아름답고 울창하다. 신세대나 구세대나 누구든지 종묘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본다면 1시간 코스로 적절한 산책과 함께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아름다움과 운치가 있다.

 서울시는 바로 이 녹지 숲을 인식, 이 숲과 세운상가 녹지대 조성으로 남산까지 이어지는 ‘녹지 축’ 프로젝트를 실행 중인 것이다. 그리고 그 녹지축 중앙지점에 종묘로 들어가는 관문으로서 문제의 ‘종묘 앞마당 광장’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종묘 앞마당 광장은 일제시대 이후 지정학적 위치가 지닌 그 땅의 가치, 역사적 의미에 어울리는 위상과 분위기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언제쯤 이곳에서도 어르신들과 젊은이들이 함께 자연스레 어울릴 수 있을까. 탑골공원과 낙원상가 동쪽 인근을 포함한 종로 일대의 묵은 숙제 한 가지를 들먹여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