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조선 일류 가객, 박춘재 (12)
[연재소설]조선 일류 가객, 박춘재 (12)
  • 박춘재일대기
  • 승인 2011.07.1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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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 가객을 찾아온 내시
그런데 어느날이었다. 죽방울 돌리는 어른이 자기 순서를 마치더니 슬그머니 춘재를 불러냈다. 그리고는 장막 뒤에 있는 연습실을 턱으로 가리켰다.
 “가 보게. 아까부터 자넬 기다리고 있어.”
 “저를요?”
 목소리가 은근했기 때문에 불현듯 긴장감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으로 하는 말은 기이하게 들렸다.
 “내시야.”
 “네?”
 내시라니. 궁중에서 일하는 내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시가 지금 저 안에서 나를 기다린다고 생각하니 도무지 이상할 뿐이었다.
 “왜 이래요? 내시가 왜 저를 찾아와요?”
 “그거야 모르지. 자네 불알을 따먹으려고 왔는지도 모르지.”
 정말 내시가 와서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의아했지만 티를 안 내고 연습실로 들어가 보았다.
 “어서 오시게나. 유명한 가객이라 만나기도 힘이 드는군.”
 몸피가 통통한 중년의 사나이가 의자에서 일어서면서 활짝 웃었다. 흰 두루마기에 새 갓이 깔끔해 보이는 사나이였다.
 “저를 찾아오셨다고요?”
 “맞네. 박춘재군. 신동 가객을 만나보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하네.”
 가객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두 번씩이나 그 말에 힘을 주는 걸 보니까 뭔가 잘못 알고 온 것 같았다.
 “가객은요? 저는 그냥 소리꾼이지 가객은 못 됩니다.”
 “아닐세. 자네는 그렇게 말할 수 있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궁으로 들어가 황제폐하 앞에서 소리를 해주게나.”
 춘재는 그만 눈을 크게 뜨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 사람이 돌아도 단단히 돌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제가 황제폐하 앞에서요?”
 “물론이지. 자네를 찾으러 일부러 나왔다네.”황제폐하는 고종이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꾸면서부터 부르는 명칭이었다. 제국이니까 이제는 왕이 아니라 황제였다. 고종황제였다. 왕비도 황후이고 왕자도 황태자가 되었다.
 고종은 3년 전 민비가 일본의 낭인들에 의해 시해당한 후 2년이 지난 작년에야 장례를 치렀다. 원통한 심정을 가눌 길 없다가 엄상궁의 가마를 타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한 적도 있었다.
 파천에서 돌아올 때는 민비가 시해당한 경복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예전 성종 임금의 형님되시는 월산대군의 사저인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겨갔다. 그리고는 곧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민비의 칭호를 명성황후로 바꾸었다. 그리고 나서 국장을 치렀다.
 그 기간 동안 일본에 대한 전국민의 분노는 뼈에 사무칠 정도였다. 의병은 그때 생긴 것이었다.
전쟁이라도 일어나야 하는데 국가가 대항할 힘이 없자 너도 나도 산속으로 모여 허술한 무기지만 나누어 들고 원수를 갚기로 맹세했다.
경운궁의 황제는 그때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