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칼럼]파리 샌드위치 가게에서 생긴 일
[여행칼럼]파리 샌드위치 가게에서 생긴 일
  • 정희섭 / 글로벌문화 전문가
  • 승인 2011.07.1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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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과 문화의 도시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의 감동,샹젤리제 거리의 화려함과 라데팡스의 모던함, 그리고 몽마르뜨 언덕의 고즈넉함을 모두 가진 도시. 파리는 정말 볼만한 도시다. 보고 또 봐도 새로운 것이 계속 생겨나는 도시이며, 세느 강변을 거닐기만 해도 레미제라블의 감동이 되살아 나는 것 같다. 물랑루즈 쇼와 리도 쇼, 그리고 콩코드 광장과 에펠탑. 파리의 키워드는 말하면 말할수록 늘어만 간다. 18년 전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에 가서 그림으로만 보았던 개선문에 올랐을 때의 기분은 감동 그 이상의 것이었다.

▲루블박물관 앞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파리에서 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를 당할 위기에 빠진 적도 있으며, 동양인을 조롱하는 소리를 내며 수상한 악수를 청하는 청년들을 애써 외면하며 걸었던 경우도 많았다. 물론, 그들이 청하는 악수를 받으면 순식간에 몸에 있는 지갑이 그들의 것이 된다는 것을 난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단 파리에서만 이런 경험을 한 것은 아니지만, 파리에서의 크고 작은 안 좋은 해프닝들이 우아한 파리의 이미지를 반감시키는 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난 한 도시를 여행할 때, 대부분 걸어서 한다. 아주 긴 거리라면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지만 가까운 거리는 걷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이동한다. 샹젤리제에서 노틀담 성당,  다시 노틀담 성당에서 몽마르뜨 언덕에 이르기까지 멀다면 멀다고 할 수 있는 거리를 모두 걸어서 다녔다. 길을 걸으며 현지인들의 옷차림과 갖가지 소품을 파는 가게의 쇼 윈도우를 보는 것은 여행의 큰 즐거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왠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 이런 즐거움을 놓치는 것 같았다.

오전에 숙소를 나서서 저녁이 될 때까지 전차나 버스를 단 한 번도 타지 않고 걸어 다니며 많은 도시를 즐겼다. 많이 걸으면 에너지 소모가 빨라서 수분 공급을 위해 물도 많이 마셔야 했고 허기도 빨리 찾아 와서 무엇인가를 먹어야 하는데, 이럴 때 여행하는 나라에만 있는 작지만 분위기 좋은 식당이나 빵집을 발견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오늘 내가 이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해준다. 파리에서 그날도 이 곳 저 곳을 오래 걸어서인지 아침식사를 많이 하고 나왔음에도 허기가 졌다. 운이 좋게도 골목 모퉁이에 있는 열 평 남짓한 규모의 작은 샌드위치 가게를 발견했다. 아직 점심시간이 되기에는 한 시간쯤 전이라 가게 안은 한산했다. 내가 주문할 차례가 왔다.

“ 여기서 제일 맛있는 샌드위치는 무엇인가요?”
나이가 지긋이 들어 보이는 프랑스 아주머니는 나의 우문에 친절한 현답을 해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약간 싸늘한 표정의 아주머니는 나의 질문이 무색할 정도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난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 저기요, 이 집에서 인기 있는 샌드위치는 무엇이죠?”
여전히 묵묵부답인 아주머니. 이번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난 당황스러웠고 한편으로는 조금 화가 났다. 손님이 질문을 하는데 대답하지 않는 가게 주인이라니. 내가 과연 문화도시 프랑스에 있는 건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논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추가 질문을 포기하고 샌드위치 진열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 이걸로 주세요.”

나의 목소리에는 이미 짜증과 노여움이 섞여 있었다. 난 돈을 지불하고 거스름 돈을 받았다. 돈을 주고 받으면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는 아주머니. 몇 분을 기다리니 내가 주문한 샌드위치가 나왔다.  그런데 난 나의 눈을 의심했다. 샌드위치 빵이 먹기에는 불편할 정도로 까맣게 타있었다. 난 화가 치밀어 올라 큰 소리로 말했다.

“샌드위치 빵이 너무 탔네요. 새로 해주길 원합니다.”
그러나 역시 말이 없는 아주머니. 대답이 없는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안 나는 환불을 요구했고, 싫으면 그냥 가라는 식으로 돈을 내주었다. 난 돈을 받아 그 가게를 나와 버렸다. 기분도 나쁘고 파리의 감동이 반감되었다.

 

▲세느강변

 

문득 프랑스에서 영어를 쓰면 알아 들어도 말을 하지 않는다는 직장 선배의 말이 생각났고 난 극단적인 국수주의를 실제로 경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점원이 나의 영어를 알아 들었는지 못 알아 들었는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의 영어를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영어 배우기에 예전이나 지금이나 떠들썩한 한국. 식지 않는 영어 배우기 열풍으로 가득한 한국.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배우고 대학입시에서도 영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치하는 한국과 영어를 알아 들어도 자국어를 쓸 것을 은연 중에 강조하는 프랑스. 그 상황에서는 화가 많이 났었지만 과연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일까에 대한 가치판단은 아직도 내리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두 가지 경우가 다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중요한 점은 각종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영어, 사회적으로 출세하기 위해 배우는 한국에서의 영어와 알아들어도 모국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웬만해서는 사용하지 않는 프랑스에서의 영어는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여행객이 한 나라의 문화와 사고 방식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파리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의 태도가 외국어를 쓰는 이방인에 대한 프랑스식 대응방식이었건, 그저 한 개인의 불친절이었건 나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여행의 묘미란 작은 불친절을 겪었을 때라도 같이 화를 내고 싸우기 보다는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에게 파리는 여전히 여행하고 싶은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