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기행 55] 탄허기념박물관
[박물관 기행 55] 탄허기념박물관
  • 현창섭 기자
  • 승인 2011.07.1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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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찰과 현대건축의 조화로운 풍경

복잡한 서울 도심 이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조용한 시골의 정취를 느낄수 있는 곳 이있다. 탄허기념박물관으로 가는 길이 그랬다. 아주 조금 서울에서 벗어난 것 뿐인데, 먼길 달려 시골길을 걷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탄허기념박물관은 3호선 수서역에 내려 역앞에바로 있는 마을버스를 타고 갈 수 있지만, 오랜만에 좀 걸어보기를 권한다. 수서역 6번출구에서 내려 쟁골마을 방향으로 20분쯤 가다 보면 탄허기념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탄허기념관 전경

‘탄허[呑虛]스님’은 1913년에 태어나 1983년 오대산 월정사 방산굴(方山窟)에서 입적한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고승이다. 1934년에 출가해 팔만대장경 한글 번역작업, 한글대장경 간행등에 이바지 했으며 동양철학에 해박한 지식을 갖춘 지성이기도 했다.

조계종 초대 중앙역경원 원장, 동국역경원 초대역장장[譯場長], 동국대학교 대학선원 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서예에도 뛰어난 명필가이기도 했다. 특히 교육과 인재양성 크게 뜻을 두어 1959년‘영은사 수도원’을 개설 한국 불교계를 이끄는 후학들을 배출했다.

탄허스님의 공적을 기리고, 후학들에게 길을 열어주고자 탄허스님의 제자인 혜거스님이 주축이돼 2010년 11월 26일 개관한 탄허기념박물관은 탄허스님의 유품, 연구자료, 140여 점의 서예 작품, 4천여 권의 고서 등을 전시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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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기념박물관은 특히 건물이 아름답다. 지상3층, 지하 1층으로 구성된 기념관은 이성관 건축가의 모던하고 세련된 디자인에 불교와 탄허스님의 철학을 조화롭게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2010한국건축문화대상’과‘제28회서울특별시건축상’을 수상하기도 한 건물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듯이 기념관 건물도 그냥 보면 현대 건축물일 뿐이다. 하지만 그 안에 새겨진 의미들을 알 때 하나의 건축물은 새롭게 보이고 건물은 시(詩)로 태어난다.

먼저 건물외벽은‘금강반야바라밀경’전문으로 장식돼 있다. 통유리위에 흰 글씨로 장식됀 기념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대장경이다.입구로 들어가는 길에 새워진 108개의 녹슨 철기둥은 백팔번뇌를 상징한다. 녹슨철을 사용해 우리의 본성을가리고 있는 번뇌와 망상을 떨쳐버리는 수행의 필요성을 나타낸다고 한다. 우리는 박물관에 들어가는 것은, 백팔번뇌를 넘어 부처가 모신 곳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탄허기념박물관은 1층 주차장과 2층(로비이기도 함)에 여러 가지 강연과 교육이 이뤄지는 보광명전(대강당), 스님들이 이용하는 회의실과 3층 박물관 일소대(一笑臺 / 상설전시실)와 방산굴(方山屈 / 기획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특히 2층의 보광명전(대강당)은 기념관 건축예술의 백미라할 수 있다. 부처가 <화엄경>을 설파했다는 보광명전과 같은 이름으로 된 대강당은 자연채광으로 아늑하고 기품있는 느낌을 준다. 전통사찰건축공간을 현대건축으로 재해석한 이 공간은 현대와 전통이 조화롭게 만나고 있다.

또 직설적인 재현 보다는 은유와 상징을 통해 불교와 탄허스님의 정신을 담았다. 정면에는 금강경이 웅장하게 조각돼 있고 정면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넓은 창 뒤로는 108개의 대나무가 심겨있다. 원목느낌의 실내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자연채광의 천장에는 단청을 현대적으로 재현한 것도 볼 수 있다. 불자라면 이곳에 앉아 잠시 명상하며 쉬어가는 것도 좋을 듯 하다.

3층으로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탄허스님과 만날 수 있다.  제 1 전시실은 탄허스님이 처음 화엄경을 번역한 일소굴(一笑窟)의 이름을 따서 일소대(一笑臺)로 탄허스님의 유품이 전시된 상설전시실이다. 입구에 설치된 녹슨 달팽이 모양의 조형물은 백팔번뇌를 미쳐 떨쳐버리지 못한 대중이 탄허스님의 유지와 사상에 감화를 입어 모든 번뇌를 씻어버리고 큰 원력의 꿈을 가지고 돌아가도록 꾸며진 상징물이다.

이곳에서는 탄허스님의 유품과 직접쓴 글들 여러 가지 영상자료와 스님의 생전 육성도 들을수 있다. 넓지 않은 전시실이라 꼼꼼히 살피기 좋고 특히 전시실 중간 기둥에 서랍처럼 구성된 곳도 꼭 체크하자.
제 2 전시실은 화엄경 번역을 완성한 월정사 방산굴(方山屈)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방산굴이라 이름했다. 탄허스님의 탄허(呑虛)에서 허(虛)는 허공을 뜻한다고 한다.

2층의 보광명전(대강당)과는 복층으로 구성돼 잇는구조다. 즉 보광명전(대강당)에서 보기에 방산굴(方山屈)은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돼있다. 이곳은 불단이 모셔진 박물관의 중심공간으로 역시 자연채광이 아름답고 탄허스님의 서예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3층 로비에는 생전에 스님이 신문에 쓰셨던 칼럼과 기사들도 스크랩 돼 있다. 관심이 생긴다면 챙겨 읽어 보는것도 좋을 듯 하다. 탄허기념박물관은 찾아가려고 마음먹기 쉽지 않은 곳 이긴 하다. 그렇기에 한 번 마음 먹어 가볼만한 곳이다. 이곳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며 조화롭게 자리한다.
시간을 내 보자. 어쩌면 이곳에서 현재의 나의 자리가 어디인지 알게 될 지도 모를일이다.

관람안내
관람시간 : 오전 10시 30분 ~ 오후 4시
휴관일 : 매주 월요일, 신정, 설날, 추석
관람료 : 무료

<탄허스님 연보>

성씨는 김(金). 속명은 금탁(金鐸). 자(字)는 간산(艮山). 법명은 택성(宅成: 鐸聲), 법호는 탄허(呑虛)이다. 1913년 음력 1월 15일. 전북 김제 만경(萬頃)의 독립운동가 율재(栗齋) 김홍규(金洪奎) 선생의 차남으로 태어나다.
1918~1933(21세) : 6세에서 21세까지 사서(四書) 삼경(三經) 및 노장(老莊) 등 제자백가서를 수업하다.
1934(22세) : 오대산 상원사에 입산, 방한암(方漢岩)스님을 은사(恩師)로 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다.
1936(24세) : 상원사에‘강원도 3본산(유점사·건봉사·월정사) 승려(僧侶) 연합수련소’를 설치, 한암스님의 증명(證明) 하에 스님은 중강(中講)으로 금강경(金剛經)·기신론(起信論)·범망경(梵網經) 등을 강의하다. 불교계에 전례 없는 이 일은 초미(焦眉)의 관심사였다.
1939(27세) : 신화엄경합론(新華嚴經合論)(47권)을 비롯한 사교(四敎)·사집(四集)·사미(沙彌) 등 불교내전(佛敎內典) 총 15종, 70권의 불교경전을 현토(懸吐)하다. 이는 후일 역경의 저본이 되다.
1949(37세) : 한암스님의 회하(會下)에 15년 동안 참선 하면서, 강원의 이력(履歷) 과정·보조법어(普照法語)·육조단경(六祖壇經)·영가집(永嘉集)·전등록(傳燈錄)과 선문염송(禪門拈頌)·선어록(禪語錄) 등 주요경전을 사사(師事)하다.
1955(43세) : 대한불교조계종 강원도종무원장 겸 월정사 조실에 추대 되다.
1956(44세) : 오대산 월정사에 대한불교조계종 오대산 수도원을 설치하다. 이는 인류사회를 위한 인재양성이라는 이상 하에 이루어진 최초의 교육결사였다. <신화엄경합론(新華嚴經合論)> 번역 착수하다.
1958(46세) : 영은사로 옮겨 1962년 10월까지 인재양성의 교육 불사를 이어가다.
1960(48세) : <현토 역해 육조단경(六祖壇經)>을 간행하다.
1963(51세) : <현토 역해 보조법어(普照法語)> 간행하다.

1965(53세) : 동국대학교 대학선원장(現 正覺院長)에 임명되다.
1966(54세)  : 수원 용주사(龍珠寺)에 설립된 동국역경원의 초대 역장장(譯場長)에 추대되다.
1967(55세) : 10년 만에 드디어 62,500여 장에 달하는 <신화엄경합론> 번역 원고를 탈고하다.
1969(57세) : 대전 학하리에 자광사(慈光寺)를 창건하다.
1972(60세) : 화엄학 연구를 위하여 서울 낙원동에 화엄학연구소를 설립하다.
1972(61세) : 3월부터 <신화엄경합론(新華嚴經合論)> 간행에 착수하다.
1975(63세) : 동국학원(東國大學校) 이사에 취임하다. <신화엄경합론> 총 47권을 간행하다. 간행 공로로 동아일보사 주최 제3회 인촌문화상과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상을 수상하다.
1976(64세) : 강원의 사집과 교재인 <서장(書狀)>·<도서(都序)>·<절요(節要)>·<선요(禪要)>를 간행하다.
1977(65세) : 월정사에서 <신화엄경합론> 간행을 기념으로, 제1회 화엄법회를 개최하다.
1980(68세) : <능엄경(楞嚴經)>·<금강경(金剛經)>·<원각경(圓覺經)>·<기신론(起信論)> 등 사교(四敎)와 <부처님이 계신다면>을 간행하다.
1981(69세) : <치문(緇門)>과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을 간행하다.
1982(70세) : <현토 역해 주역선해(周易禪解)>, <현토 역해 도덕경선주(道德經選註)>를 간행하다.
음력 4월 24일(양력 6월 5일), 오대산 월정사 방산굴(方山窟)에서 세수(世壽) 71세, 법랍(法臘) 49세로 열반하다.
1983년 : 정부에서 국민훈장이 추서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