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 시인- 시상집 <쿠시나가르의 밤> 발간
김승국 시인- 시상집 <쿠시나가르의 밤> 발간
  • 권대섭기자
  • 승인 2011.07.19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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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절망 극복하고 순수 시심(詩心)으로 빚은 ‘시 & 에세이!

“시상집 <쿠시나가르의 밤>은 그의 문학에 대한 순수함과 국악을 비롯한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이 함께 결집된 성과다. 그는 시로 문학에 대한 애정을, 산문으로 삶에 대한 열정을 표현하고 있다. 노원문화예술회관 관장의 소임을 다하면서 여러 기획을 하고 서울시문화재위원과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도, 어느 틈에 삶을 기록하고 시를 쓰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배려하는 그의 근면하고 성실한 삶을 볼 때, 그의 부단한 노력과 삶에 대한 열정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_조정권(시인,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

시상집(詩想集) <쿠시나가르의 밤> 출간을 지켜보는 조정권 시인(경희사이버 대학교 교수)의 평가다. 동시에 저작자인 김승국 시인에 대한 평가다.

김승국 시인은 현재 노원문화예술회관 관장이면서, 서울시 문화재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살아온 자신의 부단한 삶의 기록을 시상집 <쿠시나가르의 밤>에 담았다. 시인은 소통이 단절된 도시의 삶 속에서 절망을 극복하고 순수의 시심(詩心)으로 써낸 70편의 시를 시상집 안에 담아낸 것이다. 또 그런 결백한 시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자아의 단상이 담긴 에세이 40편도 함께 실었다.

 번뇌의 세계서 ‘영원불멸의 지혜’를 보다
 쿠시나가르는 석가모니의 열반지다. 열반의 참뜻은 ‘지혜의 완성’이라 볼 수 있다. 왜냐면 욕망에 가득 찬 번뇌 망상이, 열반에 들게 됨으로써 영원불멸의 지혜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쿠시나가르의 밤>은 그런 종교적 배경을 깔고 열반에 들기 전의 세계, 즉 인간적인 갈등, 고뇌, 슬픔, 기쁨에 사로잡힌 채 번뇌의 세계에 머무는 시적 자아의 방황을 그린 것이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 4부까지는 시, 그리고 5부에는 시인이 그동안 살면서 만나 온 아름다운 인연들과, 문화 관련 일을 하면서 겪었던 전통예술에 관한 단상, 또 일상의 희로애락에 대한 에세이를 실었다.

 추천사를 쓴 동국대 명예교수 홍윤식은, 그의 시세계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四聖諦)를 실천해 나가는 구도의 길을 엿볼 수 있으며, 아울러 그 길에선 성도(聖道)의 빛이 감지된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소통이 단절된 삭막한 오늘의 사회현상에서 소통과 원융의 세계를 갈구하는 깊은 고뇌가, 결국엔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라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시상집은 현실적인 삶과 번뇌의 세계를 형상화하고 있지만, 그것은 열반에 이르기 위한 불가결한 과정과도 같은 것이므로, 동시에 그 번뇌에서 해방될 수 있는 가능성의 길 또한 열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시상집을 읽는 독자들은 궁극적으로 절망스럽고 불온한 현실의 삶이 아닌, 순수의 확장을 통해 그것을 극복한 희망의 메시지를 얻게 될 것이란 기대이다.

젊은 시절부터의 詩 열정
시인의 직계 문학선배이며 ‘정신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친숙한 조정권 시인은 시상집 발문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김승국 형과 나는 같이 양정고등학교를 다녔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양정고등학교 문예반에서였다. 그 시절이 60년대 중반이었으니 우리가 알게 된 햇수만도 어언 45년이 넘는 연륜이 흘렀다. 당시 그는 인천에서 서울의 만리동까지 기차 통학을 하던 문학 소년이었다. 지금의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소년처럼 해맑은 미소와 순수한 눈빛의 마음이 살아 있다.

문예반 시절 가장 열성적으로 시를 쓰고 교지편집과 교내 문학행사를 도운 후배가 승국 형이었다. 매년 박목월선생을 모시고 개최한 ‘월계문학의 밤’에서 그는 박목월 선생의 칭찬을 들었다. 까까머리 어린 시절이지만 무엇보다 그에게는 열정이 살아 있었다. 그 열정이 그의 삶을 오늘에까지 이끌고 왔다고 믿고 있다.”

이에 대해 시인은 저자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겸손한 입장을 밝혀 놓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시와 산문들은 대부분 그런 부끄럽고 헛헛한 기분에 사로잡혔을 때의 기록들이고, 상당 수 저작(著作)들은 평생 혼자만 간직해야겠다고 다짐했던 내용들입니다. 하지만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을 넘어 이순(耳順)이 다가오니 그런 이야기조차 세상에 꺼내놓을 수 있는 용기 아닌 용기가 생겼습니다. 사회인 김승국은 말이나 행동을 모두 조심하려 남의 시선을 신경 써야 했지만, 시인(詩人) 김승국은 부끄럽고 추한 모습일지라도 이 책을 펴시는 분들을 위해 기꺼이 제 마음을 보여드리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게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은 참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김승국의 시세계, 성도(聖道)의 빛 감지된 ‘구도의 길’

내 마음 어지럽게 가르는 비 / 마모된 민둥성이 얼굴이 / 비에 젖고 있다 / 폐허 속 나는 내 밖에 서 있고 / 그 나는 또 그 밖에 서 있다. / 역마살이 꼈나 보다. 「( 역마살」 - 全文)

얼마나 많은 상념들이 왔다 가서 그만 얼굴이 민둥산이 될 정도로 마모가 되었을까? 그 내려앉은 얼굴이 내면을 들락거린다. 부단하게 오고가는 그것을 시인은 역마살이라고 거두절미하고 있다. 번잡하지 않게 시인 자신의 삶이 그러하다고 내비침으로써 어쩌면 우리들 모두의 삶이 또한 그러하리라는 것을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를 살게 만드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왕래는 그러므로 삶의 본질을 추구하는 본능이다.

시인은 비가 내리는 젖은 날, 경계를 풀고 주변을 폐허로 만들어서 비로소 그 앙금을 낚아 올리고 있다. 그야말로 고독한 존재다.

우리는 모두 차갑게 냉각된 마네킹 / 뚜- 日常을 여는 신호가 울리면 / 우리에겐 하나 둘 번호가 매겨지고 /하루도 쉬지 않고 위축되어온 / 너와 나의 몸뚱이가 / 철근과 시멘트 사이에 / 나사처럼 박히어 돌아간다.

우리는 점점 위독해진다. / 서로의 가슴을 열고 / 꽃 같은 서로의 눈물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 문득 생각될 때면 / 내가 걷고 있는 日常의 복도에 / 문이 닫힌다. / 속절없이 차단되는 주위. / 안으로 안으로 / 밀폐된 깊은 곳에서 / 나의 소리는 묵살된다. 「(주위1」 - 全文)

마네킹에는 맥박이 없다. 마네킹에는 피가 돌지 않으므로 생각도 없다. 그 무뇌의 존재들에게 누군가가 번호를 매기고 도시의 시멘트에다 대고 나사처럼 돌려 박고 있다. 그것을 직시한 시인은 위기를 감지하고 해법을 고민하다가 눈물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절망한다.

눈물은 체액이며 수액이며 절을 대로 절은 맨 마지막 호소다. 무엇에 갇힌다는 것은 밀폐다. 밀폐된 공간은 이미 공간이 아님을 시인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 밀폐된 공간에서의 탈출을 간절하게 원하지만 아무도 시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귀가 먼 우리는 모두 어쩔 수 없이 마네킹이다.

가슴에 눈물을 심어야 눈물이 날 것이며 눈물이 나야 피가 돌 것이다. 또 쌩쌩 피가 돌아야 사랑을 할 것인데도 그 외침을 듣지 않는 것과 묵살되는 것에 조바심을 치다가 시인은 일상(日常)의 견고함에 부딪치고는 다시 절망한다. 그 절대불변의 완고한 일상(日常), 아무리 그래도 시인은 내일 또 목청을 높일 것이라고 주위에 대자보를 붙이고 있다.

밤 열한 시 오십구 분의 거리엔 / 쓰레기 같은 말들이 나뒹굴고 / 비린내 나는 바람이 / 흐느끼며 부벼댄다. 방에 있는 나의 바다에 / 그는 묶여진 손목처럼 / 흐느끼면서 / 내벽(內壁)으로 부딪혀와 / 불만의 비늘을 / 푸른 녹으로 털어버린다 / 어제도 그제도 계속되는 / 홀로의 노동. / 내 방의 그는 항상 허전하다. 나는 긴 복도처럼/ 허전한 그가 좋다. / 허나 그는 믿을 수 없다. / 그는 보석만큼 투명하다가 / 이따금 / 그믐달처럼 사라져 버린다. 「( 청동어」 - 全文)

밤 열한 시 오십 구분이라는 시각을 설정하는 것부터가 심상하지 않다. 심상하지 않은 것은 읽는 이들을 단박에 긴장으로 끌고 들어가는 힘이 크고 또한 다음에 제시될 그 어떤 것들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 김승국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그는 추녀에 매달린 청동어를 바라보면서 바람과 자기 영역 밖의 시시콜콜한 말들을 듣다가 홀연 청동어의 흔들림이 푸른 녹을 터는 노동임을 깨닫는다. 내벽으로 와 부딪는 그 신성한 노동은 그러나 곧 스러지는 그믐달을 따라서 사라질 것이지만 그것이 다시 초생으로 살아날 것이라는 점을 내포함으로써 굴곡진 인생의 긴 여정을 의미 있게 함축시키고 있다.

바다 속으로 익사한 고대 도시 / 창백한 피부를 드러낸 채/ 잿빛 숨을 / 가쁘게 토해내고 있다. / 내 귀여운 자식과 /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삼킨 채 / 징그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는 / 회색빛 괴물. / 우리는 모두 엄청난 음모 속에 / 빠져 있는지 모른다./ 안타깝게 깜박이고 있는 / 적색경보. / 그러나 우리는 볼 수 없다. / 우리는 모두 失明하였다. 「( 서울」 - 全文)

무엇일까? 무엇이 서울을 익사시킨 것일까? 그러나 시인은 그 원인을 굳이 캐내려 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거대한 음모일 것이라는 점만 슬쩍 비칠 따름이다. 익사한 서울, 그리고 익사한 사람들, 그렇다. 시인은 지금 어쩌면 자신의 내면을 익사시키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눈을 감고 동공을 들락거리는 빛을 차단시키면 그것이 곧 실명(失明)이므로 우리 모두에게 질끈 눈을 감고 무엇이든지 보지 말라고 한다. 어떤 부정의 고래가 시인을 삼켰고 그 저항할 수 없는 굴복에 맞서서 경광등을 쉬지 않고 깜박거리는 수고를 느끼게 만드는 은근한 절편(截片)이다.

이번 시상집의 해설을 쓴 시인 박종명은 “순수는 시대를 맑게 한다. 그리고 사람을 맑게 한다. 마찬가지로 현실을 긍정적이게 한다. 김승국 시인은 분명 순수의 확장을 인간 존엄과 문화 사랑을 통해 얻는 듯하다.

추상화된 관념이 아닌 나와 현실이란 고민에서 출발하며 주변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으로 늘 새롭게 태어나며 순수의 시심(詩心)을 얻는 것이다. 시인 김승국은 전통문화예술인 김승국의 고독을 대변하듯 정직하다. 아니 너무 투명하다. 맑고 깨끗하다.

시인 김승국의 보물들에 붙이는 해설로는 많이 부족한 이 글이 작디작은 신호등으로 명멸하기를 바란다”라고 김승국의 시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저자 김승국은?


-인천 출생. 1978년 ‘월간 공간’의 편집장이었던 시인 조정권의 권유로 ‘월간 공간’의 편집부 기자로 활동하였다. 그후, 교단으로 자리를 옮겨 교직생활을 하다가 다시 문화예술계에 몸담았다.

-양정고 재학 시절에는 <향우문학회(向友文學會)>에서 시인 이건청, 조정권을 만나 詩作을 시작했다. 1971년에는 이들과 함께 첫 동인지 <무인칭(無人稱)>을 만들었다.

-1985년 첫 시집 <주위 둘, 스켓치 셋>, 1989년 두 번째 시집  <나무닮기> 1999년 세 번째 시집 < 잿빛 거리에 민들레 피다>를 출간하였다.

-(사)전통공연예술연구소 소장, 대한민국전통연희축제 자문위원, 화성재인청복원사업회 집행위원장, 문화관광부 전통예술정책수립 TF위원, 부천무형문화엑스포 정책자문위원, (사)남사당보존회 이사장,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교감 등을 역임했다.

- 현재 노원문화예술회관 관장,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서울시 문화재위원, 평안남도 문화재위원, 황해도 문화재위원, 한국전통예술학회 이사, 무교학회 부회장, 사단법인 전통연희단체총연합회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