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꽃신’... 소설가 김용익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꽃신’... 소설가 김용익
  • 이소영 기자
  • 승인 2009.04.2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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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한국 서정성 담은 고향의 삶 그려 세계가 호평
번역시 표현 한계로 국내에선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해

“난 힘없고 가난한 신생 한국의 외교적 대변자였다면, 내 동생 용익은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한국정서를 세계무대에 알린 작가다. 후세에는 김용익을 더 오래 기억할 것이다” 소설가 김용익 선생의 형인 김용식 전 외무부장관의 말이다.

▲ 김용익 선생
김용익 선생은 1982년 ‘순교자’의 김은국 소설가, ‘초당’의 강용흘 소설가와 더불어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작가로 소개된 한국계 미국문단 2세대 소설가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생전에 그가 누린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저작권 문제 등으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그의 문체와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은 대부분이 영어로  쓰여 번역시 표현의 한계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2005년 처음으로 통영문인협회 김순철 사무국장이 마련한 김용익 선생 10주기 추모행사에서 선생의 둘째사위 정운성씨의 말에서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운성씨는 “솔직히 망연자실한 심정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장인에 대해 기껏해야 ‘영어로만 글 쓰신 분, 돌아가신 지 몇 년 된 작가’ 정도로만 기억되고 있다”면서 “10주기 추모 문학 행사가 열린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울먹거렸다.

1920년 5월 20일 수많은 예술가의 고향인 통영에서 태어난 소설가 김용익 선생은 영문학을 전공하고 1948년 미국으로 건너가 플로리다 서던 칼리지와 캔터키, 아이오아대학에서 작가워크숍을 다니며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56년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엮어낸 첫 단편소설 ‘꽃신(The Wedding Shoes)’은 미국의 유명잡지 하퍼스바자에서 발표와 동시에 영어권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설’로 선정됐다.

▲ 소설가 김용익 선생의 육필원고가 지인에 의해 세상에 공개됐다. 머지않아 모교인 고려대나 고향의 품인 ‘통영’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뒤이어 뉴요커와 이탈리아의 마드모아젤 등 19개의 세계 주요 매체에 소개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게 하게 됐던 것이다. 국내에서는 1990년 제1회 한국문인협회의 해외한국문학상과 제7회 충무시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겨준 작품이다.

‘꽃신’ 이후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발표한 그의 작품들 역시 영어로 한국인 특유의 감수성을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술의 펜’이라는 칭호를 얻은 김용익 선생은 무엇보다 청소년문학으로서 미국과 유럽 문단의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해녀(The Sea Girl)’는 미국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게재되었으며, ‘변천(From Below the Bridge)’과 ‘막걸리(The Village Wine)’는 외국인이 쓴 우수 단편으로 선정되는 등 발표한 작품마다 미국과 영국, 독일,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심지어 1960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행복의 계절(The Happy Days)’은 뉴질랜드에서 점자로 변역되기도 했다.

이미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고 알려져 온 그의 작품들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한국인의 깊고 절제된 서정이 녹아있으며, 나라와 민족을 초월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큼 보편적인 인간의 감성에 울림을 주는 그 무엇이 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는 “김용익은 타향 미국에서도 고향 한 가운데 있었다. 꽃신은 경상도 말의 극 세공품으로 언어미학에서 그 어떤 누구도 당할 수 없다”고 표현했다.

김종길 시인은 “그는 비록 영어로 작품을 썼지만 전후일관 철저하게 고향의 삶을 그린 작가”라며 “한국의 시골사람들의 토속적인 삶을 담고 있는 그의 단편작품들은 모파상이나 오 헨리의 것들처럼 서정적이며 전형적”이라고 평가했다.

국내에서는 1957년부터 1964년까지 고려대와 이화여대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면서 영문으로 집필했던 그의 소설 대부분이 한글로 번역 출판돼 문학사상, 현대문학, 신동아, 문예중앙 등에 여러 편의 단편이 실렸다.

지난해에는 김용익 선생이 한글로 쓴 중편소설 ‘좋은 날 오면’의 원고를 가진 이진모 시나리오작가에 의해 ‘계간문예’에서 일부가 연재되기도 했다. 이진모 시나리오작가는 “김용익 선생의 한글로 쓴 작품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알려지기를 바란다”면서 “조만간 고려대 영문과나 통영문인협회에 원고를 기증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의 고향 통영의 문인협회는 김용익 선생 추모행사를 10주기였던 지난 2005년부터 매년 열고 있다. 또한 그의 문학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이소영 기자 syl@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