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코너] 내 탓이오!
[에세이코너] 내 탓이오!
  • 구금아 / 수필가
  • 승인 2011.07.2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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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랑 통화하면 기본이 20분이다. 아니 기본만 20분이다. 이 기본이라는 것이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거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 처음 입력해주는 시간처럼 최소 단위이다.
그래서 기본을 넘기는 일이 허다하다. 그걸로 통화가 끝나면 다행이다.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곧 울리는 전화를 2~3통 더 받아야 끝이 난다.

통화 내용도 딱히 없다. 애들이나 집안얘기 하다가 엄마의 꾸지람을 듣는다. 니가 애들을 잘 건사해야지, 니가 정서방 뜻도 따라주고 기 살려줘야지…….등의 잔소리. 행여 아이가 다치거나 아프면 잔소리는 몇 절까지 늘어난다. 그러다가 결국은 엄마 당신이 잘못해서 애가 아픈 거라며 다 자기 탓이라고 한다.

천주교 신자도 아니어서‘내 탓이오’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왜 애가 아픈 게 할머니 탓이란 말인가? 자식, 손주들을 내 몸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알겠지만 비약할 땐 억지소리 같게 느껴지곤 한다. 그럴 때면 성의 없는 말투로“그게 왜 엄마 탓 이예요. 제가 더 잘할게요.”라며 마무리 해버린다. 장시간의 통화에 귀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머리까지 지끈거리다가 살짝 짜증도 난다.

짜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짜증으로 이어진다. 가장 많은 원인 제공을 하는 사람은 남편이다. 잘해줘도 못해줘도 괜히 짜증이 생기는 존재다. 그런데 요즘은 일이 잘 안 풀린다며 날카로워져 있어 오히려 눈치를 보는 중이다. 쉽사리 풀릴 것 같지 않아 더욱 조심스럽다. 소심한데다가 생각 또한 많은 그는 한번 어두운 굴속에 들어가면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일 때문에 고심하고 있는 사람에게 짜증을 낼 수도 없고, 잘해줘야 되는데 마음뿐이다. 난 늘 그렇듯 툴툴거리기 일쑤다. 그래서 이번에는 꼭‘잘해줘야지, 웃는 얼굴과 목소리로 맞아줘야지’라며 자신을 추스렸다. 그리고 기다렸다. 남편의 퇴근을 기다려 본 게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살짝 설렘도 생겼다. 그가 들어오자 밝은 소리로 인사하고, 오늘은 재미있는 일이 뭐가 있었냐며 물어봤다.

며칠 이렇게 대하다 보니 요 근래 심하게 퉁명스럽게 굴었던 것 같았다. 일하는 나도 힘들고 지친다며 데면데면하게 대했다. 남편의 눈길이 느껴질 때면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할까봐 못 본체했고 행여 말을 걸면 대답조차 귀찮아져서 피하곤 했다. 그이의 힘없는 한마디에 안쓰럽고 도와주고 싶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잠시 그런 감정을 잊어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혼자 두었다.

아!, 그럼 내 탓인가? 이 사람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내가 소원하게 대한 탓? 아마도 마음을 헤아려주고 따뜻한 눈길을 보냈다면 나의 에너지가 그 사람에게 닿아서   유연한 사고와 여유로움으로 일이 잘 풀렸을 것 같기도 한다. 머릿속의 울림을 느끼고 나니 문득 엄마의 지론이 떠올려진다.
역시 내 탓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