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열전 26] 사실주의 연기의 거목 - 장 민 호 3
[배우열전 26] 사실주의 연기의 거목 - 장 민 호 3
  • 김은균 공연전문기자
  • 승인 2011.07.2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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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연기스타일은 일관된 리얼리즘이었다. 그만큼 그의 화술은 우리시대 연기의 규범으로 칭송받고 있다. “좋은 화술은 마음과 행동이 일치되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대사와 동작과 내면이 함께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물의 내면에서 나오는 마음의 상태를 완벽히 이해한다면 마음과 대사가 함께 나오게 되어 있어요. 배우는 그 나라의 도덕과 문화를 책임지는 존재예요.

기형적으로 변하는 언어는 부분이지 전체일수는 없어요. 사회에 따라서 변화되는 무대 언어의 변화는 작가에게 맡기고 배우는 작품의 분위기와 연출의 의도대로 걸맞게 하면 되는 거라고 봅니다. 가령 같은 사극이지만 신봉승의 <파몽기>와 오태석의 <태>를 비교해보면, <파몽기>는 고전 그대로의 맛이 있어요. 연기도 고전 사극의 전형성을 지니고 하면 되지만 오태석의 <태>는 작품의 환타지한 구성에 맞는 모던하고 절제된 연기를 필요로 하거든요. 그 차이를 표현하는 것이 배우의 감각인 거죠.”

배우의 존재에 대해서는“배우의 사명은 작가가 창조한 인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으로 문자화된 인물을 생동감 있게 표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언행과 심성, 그리고 인물이 처한 상황과 내면을 고민하다 보면 관객이 믿을 수 있는 하나의 인간이 만들어지지요. 인물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테크닉을 가지더라도 인격을 모방하지는 못한다’는 말이 기억이 나는데, 인격과 경륜, 교양을 갖춘 사람이 천민이나 상스러운 인물을 표현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반대로 인격과 교양 없이 신분이 높거나 훌륭한 인물을 만들어 내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배우는 그러한 면면을 갖추기 위해서 평소에도 많은 훈련과 인격 연마 과정이 필요한 겁니다.”

그리고 선생께서 항상 강조하셨던 연기의 핵심은 배우의 이성(理性)에서 출발한다.“배우 스스로 인물을 창조해 나가려면 무엇보다도 이성이 있어야 해요. 지적인 사고를 해서 작품 전체의 줄기와 맥을 짚을 수가 있고 거기에서 배역의 역할을 분명히 찾을 수가 있지요.

감정만 앞세우다 보면 자기 자신은 물론 상대 배역, 더 나아가 작품 전체의 리듬과 방향을 무너뜨리고 말아요. 그래서 이성을 가지고 자신이 연출자라는 입장에서 작품을 대해야 해요.”그렇다면 국립극장 같은 큰 무대에서도 자연스러운 소리를 전달하는 방법이 있는지 여쭈어 보았다.

“어떤 아파트에 말이에요,“세탁! 세탁!”이렇게 외치고 다니는 심부름꾼이 있었데요. 처음엔 무슨 말인지 안 들려요, 곁에서나 겨우 들을 수나 있을까? 그런데 석 달이 지나니까 잘 들려요. 6개월이 지나니깐 아파트 전체가 다 들려요.

무슨 말인고 하니, 매일매일 훈련한다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그 세탁소 심부름꾼  만큼 훈련을 안 하는 것이 문제예요. 그리고 무대에서 해야 하는 언어가 따로 있어요. 일상 언어로 하면 안 되지요. 속 소리로 “너 죽고 싶어?”하면 객석에서는 안 들려요. 속 소리처럼 말하지만 객석에서 잘 들려야 하지. 그렇게 하려면 훈련을 해야 돼요. 

작품을 많이 해서 얻어지는 암기력도 있겠지만 나 같으면 그 인물이 가장 소화하기 어려운 대사, 입에 붙지 않는 대사, 가령 인물의 말로 녹아 있지 않고 작가의 주장이 그대로 드러나서 나랑은 생리에 맞지 않는 대사가 꼭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만 집중적으로 한 이 삼백 번을 해요. 전철을 타나 버스를 타나 화장실을 가나 말예요. 

그렇게 해서 그것을 극복하고 나면 나머지는 문제가 되질 않아요. 그렇게 못하고 무대 연습까지 씹고 막히는 대사는 공연 끝날 때까지 막힌다고요. 꼭 그렇게 돼요. 블로킹도 마찬가지예요. 연출과 안 맞아서 블로킹이 불편할 때는 그 부분만 집중적으로 해요.  가장 배우가 경계해야 할 것은 격앙된 대사를 극적으로 앙양시켜야 할 때, 감정과 분위기에만 치우치면 호흡 조절을 못해서 결정적일 때는 힘에 부쳐요.

쉽게 말해 더 올라가고 계속 유지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숨이 끊어지고 극적인 상황이 끊어지는 답답한 상황이 된다 말이에요. 가장 중요한 것은 소리를 지르건 속삭이든 간에 내면의 소리로 전달하려고 해야 하는 것이에요. 내면이 있으면 1천 석도 다 들려요. 이 차이는 연극만이 가질 수 있는 진실이에요. 실천적인 것이 필요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