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의 문화 꽃피운 중인들의 삶 전시로 만나다.
한양의 문화 꽃피운 중인들의 삶 전시로 만나다.
  • 홍경찬 기자
  • 승인 2011.07.27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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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웃대 중인' 展', 서울' 만의 특징인 중인, 조선 후기 그들이 꽃피웠던 웃대문화 조명

[서울문화투데이 홍경찬 기자]서울 2000년 역사문화특별전으로 '웃대(上村)  중인(中人) 展'이 지난 7월 26일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강홍빈)에서 정옥자 전 국사편찬위원장과 김종규 박물관협회 명예회장,정종수 고궁박물관장 등 박물관 관계자 및 관심있는 시민 등 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개최됐다.

이번 전시는 조선후기 한양의 웃대(지금의 인왕산 밑 부근)에 살던 중인들이 펼쳤던 시사(時社)를 비롯한 그들이 꽃피운 웃대 문화를 조명하고 있다. 중인의 존재는 서울만이 갖고 있던 독특한 문화현상이었다.

▲ 참석 내빈의 전시회 축하 테이프 커팅

 이날 행사는 강홍빈 관장의 전시회 의의와 의미를 설명한 후 내빈 축사와 오프닝 행사, 축하 테이프 커팅에 이어 서울역사박물관 박상빈 전시과장의 전시 안내로 마무리됐다.
 
 이 자리에서 강홍빈 서울역사박물관 관장은 인사말을 통해서 "대한민국은 불과 백여 년 만에 글로벌 시대의 국민이 됐다. 근대화를 이끌어 내고 한강의 눈부신 발전을 이뤄낸 계급이나 집단이 분명히 존재한다"라면서 "이번 웃대 중인전이 조선 후기에 그들이 꽃피웠던 웃대문화를 조명하는데 있어 좋은 모범사례다"라고 밝혔다.

▲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문학박사, 전 국사편찬위원장)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는 축사를 통해서 "이번 전시회를 마련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인왕산 중인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눈으로 볼 수 있게 마련된 이번 전시가 얼마나 좋은지 말로 설명해 드릴 수 없다"라면서 운을 뗀 후 "신라말, 고려 초 육두품들은 왕권을 도와서 고려를 창건했고, 조선은 향리 계층들이 그 역할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웃대에 살았던 중인은 근대화의 주역이었다는 연구까지 이뤄진 상태다. 소중한 옥계시사 자료를 대여해 준 김종규 회장에게 감사의 말을 드린다"라면서 지리적 역사적 정치적인 위치를 확고히 정립한 주목받지 못한 중심 세력이었던 중인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 회장은 축사를 통해서 "겸재 정선이 그려낸 인왕산 주변 일대가 도약하고 복원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며 운을 뗀 후 "일제의 식민지사관이 주입한 조선은 양반과 하위 계층만 존재한다는 논리로 장악 의도를 노골화했다. 이 논리에 반하는, 중인들이 그 중추적 허리 역할을 해왔다. 이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라면서 주목받지 못한 중인들이 꽃피운 조선 후기 문화의 우수성을 역설했다.

 웃대(광통교 기준으로 하류는 아랫대라 칭함)는 청계천 윗 지역으로 보통 경복궁 서쪽으로부터 인왕산 기슭에 이르는 지역을 말한다.

 주로 왕이 거주하는 궁을 중심으로 터전을 잡은 중인들의 문화적 역량은 조선 후기 웃대 시사(시를 짓는 모임)를 통해서 체계를 잡았다.

▲ 옥계사십이승첩 산사유약- 서울역사박물관 사진 제공-

 대표적인 시사가 정조 1786년 규장각 서리를 중심으로 결성된 옥계시사(송석원시사)이다. 이는 30여 년 동안 이어져 오면서 중인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옥계는 인왕산 옆 옥류동 옥류계곡을 칭하며 동인들은 옥계시사의 맹주였던 천수경의 집, 송석원에서 모임을 주로 가졌다. 

 웃대 중인은 조선 후기에 들어와 당대의 문화를 대표하는 주요 계층으로 성장했다. 또 통청운동(신분 제도에 얽매이는 구체제에 반발해 신분향상 운동)을 통해서 임금에게 글을 올리며 신분 한계 극복을 위해 노력했다. 이번 전시는 오는 9월 18일까지 이어지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자세한 관람 문의는 서울역사박물관 (http://www.museum.seoul.kr/, 02-724-0114)로 하면 된다.

▲ 강홍빈 서울역사박물관 관장이 전시회장에서 인왕산 기슭 웃대에 자리잡은 자신의 집위치에대해 설명하고 있다.
▲ 웃대 중인 전시회가 열린 서울역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