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화랑’ 오픈한 갤러리스트 박정수
‘정수화랑’ 오픈한 갤러리스트 박정수
  • 홍경찬 기자
  • 승인 2011.07.28 2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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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갤러리스트로 100명 작가 입주한 15층 스튜디오 꿈 꿔

[인터뷰/서울문화투데이 홍경찬 기자]본지 ‘골방에서 듣는 박정수의 미술이야기’ 칼럼은 애독자가 가장 먼저 찾는 기사 중 하나이다. 작가와 화랑 등 미술계 전반에 걸쳐 해박한 지식과 박정수 관장의 날선 비판을 여름 무더위 날 목줄기를 타고 넘는 시원한 생수의 매력으로 표현하면 너무 짠 점수일게다. 박정수 관장의 20여 년 간 내공이 담긴 혜안은 명쾌하고 정확하고 시원하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정수화랑’을 지난 7월 23일 토요일 종로구 사간동에서 오픈했다. 갤러리스트로서 그의 즐기는 자세가 순풍이 되고, 좋아하는 열정이 돛이 되어 올곧게 순항하기를 바라며 박정수 관장과의 인터뷰를 오픈날 가졌다.

 우선‘ 갤러리’ 오픈을 축하드립니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면서 대학 4학년 때 미술시장에 눈을 떴다고 했는데 그 때 대학생으로서는 감히 엄두를 내기 어려운 화랑을 직접 운영했고, 거의 20년 만에 자신의 화랑을 또 오픈했다. 감회가 있을 듯 합니다.

▲ 박정수 관장의 꿈은 '100명 작가 입주한 15층 스튜디오를 세우는 것'이라고 말하며 정수화랑 개관 후 이의 실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어릴때는 멋모르고 시작했어요. 어떤 기회가 와서 잠실 석촌호수 근처에 무작정 작은 공간에 아트포스터나 판화를 걸어두었어요. 제 의지라기보다는 지인이 아트포스터와 판화를 구매하겠다기에 사업자 등록증 비슷한 것이 필요했을 뿐이죠. 오래 못 갔어요. 어렸을 뿐만 아니라 미술시장이라는 것도 잘 몰랐고, 작가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었죠. 세종대학교 회화과 4학년 재학중이었기 때문에 선배들이나 교수님들, 잡지에 자주 등장하는 작가님들 이름정도만 알고 있었죠. 그래도 참 용기가 가상 했어요 그때는....

 지금요? 만 20년 되었죠. 남들 다하는 말 있자나요. 성공도 해봤고 실패도 해봤고 등등의 말 말입니다. 저도 별스럽진 않았어요. 돈 많이 벌었다가 소위 말하는 한방에 뒤집어지고, 그랬었죠. 이제는 좀 부산스럽게 움직여도 될 것 같아요. 자숙이라든가 조용히 있다는 것은 곤란한 문제 아닌가요?

 솔직히 남들 피곤하게도 한 경험도 있고, 그쪽 길이 아니었는데 하는 맘도 있죠. 뭐, 다 그런것 아닌가요?

 그동안 계속 미술계 밥을 먹어왔는데, 그 때와 지금의 환경은 어떻습니까?

 어른들이 들으시면 웃으실 일이겠지만 많이 변한 것 사실이죠. 14년 전쯤인가 롯데백화점에서 100만원 균일가전을 한 일 있었어요. 백화점식 미술품 판매였죠. 욕 많이 먹었죠. 예술품에 어찌 균일가가 있는가, 어린 친구가 미술시장 그렇게...등등.

 대학 4학년 때 운영하던 화랑은 금세 망했어요. 그러고 나서 92년 말경에 백화점 갤러리 큐레이터로 입사했어요. 지금이야 다르지만 그때는 대기업 신입사원 공채 시험을 같은 날 봤어요. 대졸 신입사원 그룹사 공채를 통해 어렵사리 합격했는데 말입니다. 백화점으로 발령 받고 당연히 갤러리로 간다고 생각했는데 일반 상품매장으로 배정하려 하더군요. 황당했죠. 그때만 해도 큐레이터라는 직함을 잘 모를 때니까 그럴 수 있었어요. 90년대 초반 미술시장은 2007년 호황기와 비슷했던 것 같아요. 전시장이 백화점 7층에 있었는데 지하를 통해 미술품이 반입되요. 조금 명성 높은 화가의 경우에는 지하주차장에서 그림을 내리면서 판매가 되기도 했어요.

 그때 비하면 작품 판매는 더 어려워진 것 같아요. 애호가들의 눈높이도 달라졌구요. 그것보다도 요즘은 마이크로 블러그에 의한 정보 확산이 너무 빨라요. 조금만 딴짓하면 정보를 따라가질 못해요. 정보는 달라졌지만 미술품 사고파는 것은 비슷해요. 여전히 어렵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20년 전에도 능력 있는 갤러리스트가 있었고, 현재도 그런 분들이 많죠. 이분들이 우리나라미술시장의 중추인 것 같아요. 저요? 이제 시작이죠.

  스스로 갤러리스트라고 하는데 자신이 하는 갤러리스트의 일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어려운 품목이군요. 큐레이터, 딜러, 매니저, 미술감독, 화상, 학예사, 화랑주인, 화랑 종업원 등 미술계 종사자를 부르는 이름이 참 많습니다. 그냥 간단히 말하면 섞어 비빔밥 같아요. 비빔밥도 어떤 주 종목이 있거든요. 산채 비빔밥은 산채가 중심이고, 콩나물 비빔밥은 콩나물이 주가 되어 맛을 내잔아요. 갤러리스트도 딜러라든가 매니저라든가 하나의 주 종목을 가진 미술시장의 모든 일을 다 하는 직종입니다.

 저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것은 주종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고 작가에 대한 가치를 찾는다거나 미술사적 입장을 정리하는 것을 기본으로 해서 현존작가에 대해서는 전시컨설팅을 진행하죠. 어떤 것이 주종이 되더라도 결국은 영업활동입니다. 미술시장이라는 곳은 미술작품만 판매되는 곳이 아니라 작가의 경력이나, 예술관, 정신성까지 함께 움직이니까요.

 갤러리스트는 영리를 목적으로 합니다. 국가나 기관에서 월급을 주지 않거든요. 미술관이나 박물관 종사자들은 공공기금으로 생존하면서 국가의 문화 예술적 가치를 찾고 연구 보존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하는 일과 방법은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영업이익이 안되는 연구는 가급적 피해 다닌 답니다.

▲ 박정수 관장은 지난 2001년 타계한 故 심봉섭 조각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사후 '주목받지 못한 조각가' 심봉섭 대가의 작은 정보라도 알고 있다면 연락을 부탁한다는 말을 전했다.

 얼마전 4살짜리 꼬마의 그림이 2600만원이란 거액에 거래되는 것을 보고 비판과 함께 일종의 자괴감마저 든다는 내용의 글을 쓰기도 했는데 비판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좀 답답했죠. 이건 순전히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 같습니다. 말하면 추상표현주의라는 작품 표현장르에 반하면서 무식하다 할 것이고, 말 않으려니 답답하고... 우리나라 인구가 너무 적어서 호사가들이 거의 없거나, 우리나라에는 코끼라 원숭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이 아니구나 생각했죠. 지나가던 개가 웃으면 ‘세상에 그런 일이’에 반드시 출연합니다. 제가 무식하다 욕할지도 모르지만, 4살짜리가 그리면 얼마 그리겠습니까. 자의식과 기본적 조형을 거부했던 추상표현주의 작품으로 볼 수 있는데, 추상표현주의가 함께 욕먹는 일이죠. 예술이 어린아이의 장난이나 언론에 의해 놀아날 순 없는 일입니다. 비판꺼리도 안된다고 봐요. 그냥 답답할 뿐이죠. 예술은 장난일 수 있지만 예술작품은 절대 장난이 아니거든요

 저희 신문에 ‘박정수의 골방이야기’라는 타이틀로 작가와 화랑 등 미술계 전반에 걸친 비판과 비꼬음을 서슴없이 하시고 계신데 그에 대한 부담도 있을 듯합니다.

 하하, 속 시원한 이야기를 아직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제가 많이 부족한가 봐요. 칼럼을 쓰면서도 진짜 욕먹을 만한 말들은 빼먹거든요. 약간의 음주에 의한 미술계 뒷담화를 쓰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요. 문화 평론가 모씨는 막말도 하고, 누구는 대 선배 작품을 헐 뜯기도 하는데 말입니다. 아직 제가 공력이 부족한가 봅니다. 가끔씩 한소리씩 듣습니다. 작가님에게서는 시원하다고 하고, 저의 직종과 비슷한 분들은 눈을 흘기죠. 제가 작가가 아니기 때문인가 봐요. 제가 작가였으면 작가세계에 대한 골방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부담요?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공력이 필요합니다.

 갤러리스트들과 작가들의 열악한 현실에 대해 가끔 토로하는데 미술계에 뛰어 들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후회와 번민과 새로운 충족을 반복하며 사는 것 같습니다. 후회하다가도 새로운 일이 생기면 그 자리를 바로 메워줍니다. 다른 일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죠. 20년 전에 저와 비슷한 길을 가고자 했던 많은 사람들 중에 몇 안 남았어요. 후배들은 계속 배출되는데 말입니다. 그만큼 힘들죠. 경제적으로 말입니다. 교수가 되는 길도 아니고, 빠른시간 안에 경제적 이익을 많이 내는 일도 아닙니다. 오랜 시간과 경험과 연구가 필요한 직종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대답이 되겠군요. 제 아이가 중학생인데 저와 같은 길을 간다면 우선은 말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즐기고 좋아한다면 최선을 다해 돕고 싶습니다.

▲ 박정수 관장의 '정수화랑'이 지난 23일 종로구 사간동에 개관했다.

 우문일수도 있지만 좋은 작가와 작품은 어떤 것이고 갤러리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어른들이 알면 웃으시겠지만) 좋은 그림, 안 좋은 그림, 덜 좋은 그림 하면서 나름 구분을 한적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어렵더군요. 돈되면 좋은 그림이라고 믿어본다 치더라도 저와 같은 직업에서 돈되는 미술품을 찾아내고 형성하여야 하는데 말입니다. 남들이 좋다고 한 것을 더 이상 따라갈 수 없거든요. 만들어야죠. 이부분이 가장 어려운것 같습니다. 좋은 작가보다 좋은 작품을 선호하는데, 좋은 작품이라고 열심히 다듬어도 사회라는 집단이 거부하면 그만입니다. 좋은 갤러리요? 그림 장사(?)잘하는 곳이 좋은 곳이죠. 미술관이 아니거든요. 영업이익을 위해 존재합니다. 다만, 문화예술에 대한 미래 지향적 가치를 지켜야 그렇게 됩니다. 돈 많다고 되는 일도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의무감이 따르는 것 같아요. 작품에 대한 의무, 문화예술에 대한 의무, 고객에 대한 의무 기타 등등. 책임지지 못하면 오래 못 가더라구요

 ‘나는 주식보다 미술투자가 좋다’라고 한 책이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그 책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하하 조금 많이 팔렸다고 하더군요. 2007년 미술투자 붐을 타고 그렇게 되었나 봐요. 책은 저의 경험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들입니다. 말할 수 없었던 미술계 뒷이야기도 조금 실렸구요. 미술마케팅이나 관련 일을 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도움이 되었나 봐요. 조금 쑥스럽군요. 
 아쉬움도 많죠. 늘 그런것 아닌가요?

▲ '나는 주식보다 미술투자가 좋다라'는 저서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박정수 정수 화랑 대표.

 조만간 또 책을 출간할 계획인걸로 아는데, 어떤 내용들이 담겨지나요?

 지금 거의 마무리되어가요. ‘나는 주식보다 미술투자가 좋다’, ‘미술 투자 감상’에 이어 세 번째입니다. 내용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책의 종합판이라 할 수 있어요. 첫 번째가 화랑 중심이었고, 두 번째가 감상자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작가와 화랑 미술애호인의 관계에 대한 종합적 이야기입니다.

 갤러리스트로서 가장 하고 싶은 일과, 자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정말 어렵습니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은 국가에서 월급 받는 갤러리스트가 되고 싶어요. 미술관 학예사들과는 다른 일이거든요. 국가 기관에서는 유명하고 명망있고, 가능성 높은 예술가를 연구합니다. 저도 비슷하긴 하지만 저는 유명해지기 위해서, 명망을 얻기 위해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작품을 연구합니다. 저 같은 직업군에서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면 기관에서 일을 하지 못합니다. 기관에서는 명분이 있어야 연구비가 나오거든요.

 말은 이렇게 하기 쉽습니다. 내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문화예술에 종사하겠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돈을 많이 벌고 싶습니다. 15층 스튜디오를 가지는 것이 꿈입니다. 100여명의 작가님들이 입주할 수 있는 공간 말입니다. 온갖 미술행정을 다 갖춘 공간을 꿈꾸고 있습니다.

 향후 전시 계획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전시 공간은 아주 작습니다. 이것도 아주 평범한 대답밖에 할 수 없군요. 좋은 작품 전시하고 싶죠. 무엇보다도 좋은 작품을 조명하고, 마케팅하고, 세상에 널리 알릴 수 있는 알찬 공간이 되고 싶습니다. 어떤 전시를 할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전시보다는 기획을 먼저 생각합니다. 이제 막 문을 열었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 박정수 정수화랑 관장은 미술계 전반에 걸쳐 해박한 지식과 날선 비판이 담긴 통찰력을 글로써 보여 주고 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부탁드립니다.

 언제 물어보시나 했습니다. 갤러리스트로서 가장 중점적인 저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2001년에 타계하신 조각가 심봉섭님에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작품세계와 우리나라 조각계의 위상, 생전에 활동하신 사료들, 작품발굴 등을 통해 작품집을 발간하고 2012년 3월경에는 대 회고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현존 작가에 대한 가치를 조명하는 일을 합니다. 한마디로 컨설팅 혹은 마케팅이죠. 그냥 전시를 대행해서 심부름 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보면서 예술관에 대한 조명과 작품관리 전시컨설팅, 매니지먼트 등 종합적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심봉섭님은 우리나라 추상조각의 한켠에서 활동하신 분입니다. 부산에서 주로 활동하셨구요. 지금 그분에 대한 자료를 찾고 있습니다. 작은 정보라도 알고계시면 연락부탁 드립니다.

 조각가 심봉섭님에 대한 말씀 조금 더 하겠습니다. 심봉섭(沈鳳燮, 1929~2001). 경남진주 출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각과 5회졸업. 부산교대 미술과 교수를 역임 했습니다. 이분에 대한 작은 자료라도 연락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