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나운 자연인가?
감사나운 자연인가?
  • 강미선 동화작가 / 배리굿미디어 대표
  • 승인 2009.04.2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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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오전, 꽃바람을 맞으러 남산에 올랐다. 때마침 벚꽃 축제 기간이라 체험학습을 나온 초등학생들, 장애인들과 어울려 행사를 벌이는 직장인들로 목멱산 아스팔트길은 소음과 인파로 뒤덮여 있었다. 북새통을 피해 평소 한적했던 등산로를 기억하며 기웃댔지만 그 어디에도 나무깽이를 잇대 만든 흙계단은 보이지 않았다. 돌계단으로 교체한다는 공사 내용을 알리는 안내판과 높다란 차단막으로 가로막혔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꽃도, 바람도 즐기지 못한 채 사무실로 돌아와야 했다.

▲ 강미선 동화작가 / 배리굿미디어 대표
 점심 식사 시간. 내수동, 청진동을 기웃댔지만 정겨운 맛집들은 재건축을 위해 문을 닫았거나 재건축으로 사라져 망설임 끝에 햄버거 한쪽으로 때우고 돌아서야만 했다. 귀가길, 공사로 차선이 줄어들어 밀리는 잠수교 위에서 문득 남단에 새로 만들어진 낯선 콘크리트 공연장을 보게 되었다. 산책로를 따라 봄이면 이름 모를 들꽃들이, 가을이면 무성한 갈대가 회색빛 한강에 드리웠던 낭만이 그리워 느꺼워지고 말았다.

 저녁 식사 후, 산책을 하러 나왔다가 아파트 입구의 어린이 놀이터를 돌아보게 되었다. 모래판 위에 있던 놀이터를 부순 지 두어 달 만에 완성한 새 놀이터였다. 바닥은 알록달록한 우레탄으로 깔고 호화로운 놀이기구를 새로 들인데다, 구석에는 근사한 탁자와 의자까지 놓여 있었다. 멋지게 변신했다고 생각하는 한켠, 모래 장난하던 내 아이들의 모습이 우련하게 떠올라 산책을 포기한 채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 젖어들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오르면 사방에서 날개를 퍼덕이던 꿩들과 여기저기서 뛰어다니던 다람쥐에 놀라던 유년기의 남산.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한강물과 흰 모래톱을 맨발로 만끽했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복개 이전, 강남역 주변 개천에서 소꿉놀이와 가재 잡기, 물장난에 빠져 해거름이 아쉬웠던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한강의 기적 신화를 이루는 가운데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다이내믹 코리아로 탈바꿈한 우리 대한민국.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게 아니라 2년이면 내비게이션을 업그레이드해야만 하는 우리 서울.

 꿈의 동산 남산도, 한강 르네상스도, 뉴타운도 모두 좋다. 자연은 감사나워 인간이 인공적으로 깎고 부숴 재창조해야만 예술적이고 도회적인지도 모르니까. 폴란드의 비알로비에자 푸차보다는 작지만 한반도에는 비무장 지대라는 원시림이 있으니 그 이외의 곳은 모두 콘크리트와 아스콘으로 도배해야 현대적일지도 모른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니 서해안쯤은 기름으로 뒤덮여도 별문제 없을지도 모른다. 국토의 70%가 산이니 지자체가 앞다투어 산을 깎아 아파트를 짓고 골프장을 만들어 농약을 뿌려대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4년만 생색내고 버티면 미세 먼지가 많아지든, 스카이라인이 달라지든, 녹색지대가 사라지든 상관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교에, 학원에 하루 종일 갇혀 시달리는 우리들의 아이들이 서울을 벗어나지 않고도 흙을 밟고 뛰놀고 맑은 개울에 발 담근 채 가재를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면 촌스러운 생각일까? 문화센터에서 강사의 지시에 따라 인공모래로 성을 쌓기보다 푸른 바다에 뒹굴다가 ‘두껍아’를 부르면서 굴을 잇대 만들기를 바란다면 시대에 뒤처지는 생각일까? 놀이동산에서 아찔한 기구를 타고 콜라를 마시기보다 산에 오르면서 가위바위보로 아카시아 이파리를 뜯고 칡뿌리를 씹어 먹기를 바란다면 세련되지 못한 생각일까? 자연조차도 규제하고 부수지 않으면 제멋대로 촌스럽게 변해 현대적 도시 감각을 자랑하는 서울의 이미지를 깎아먹는 감사나운 존재일까?

 그래도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드라이든의 낡은 잔소리를 한번쯤 되새겨보고 싶다.

 “예술은 잘못을 저지르지만 자연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