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김용우가 부르는 아리랑 11곡’
‘소리꾼 김용우가 부르는 아리랑 11곡’
  • 홍경찬 기자
  • 승인 2011.08.12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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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음악인생을 아리랑 전곡으로 잇는 젊은 국악인

‘아니~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창부타령)

이 곡을 부르기 위해 소리꾼 김용우는 3년을 노력했다. 1년은 듣기만, 또 1년은 편곡해서 부르기만, 그리고 3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앨범(2009년 12월)으로 나왔다. 이번 8월 광복절에 맞춰 그가 다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리랑 11곡 전곡들로 이뤄진 앨범을 낸다. ‘소리꾼 김용우가 부르는 아리랑’이다. 그는 영화음악을 들을 때와 같이 편안한 아리랑이라 전했다. 진도와 정선에도 가고 연변에도 가고, 십대들을 위해 홍대 클럽 버전의 아리랑곡도 삽입했다. 국악인이자 소리꾼답게 생각하고 움직이는 김용우다. 그는 평일 오후 12시부터 2시까지 방송되는 국악방송 ‘행복한 하루’의 진행자이기도 하다. 중국이 아리랑을 유네스코 등재에 나선 요즘같은 때, 8월 15일 광복절이 우리 민족에게 전해주는 애환은 사뭇 남다르다. 아리랑 음반이 나오게 된 계기와 그 의미를 들어보기 위해 지난 4일 광화문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에서 그를 만났다.

-아리랑 음반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랐는데 음반 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 소리꾼 김용우가 15년 소리 인생을 정리하는 아리랑 전곡으로 이뤄진 앨범을 곧 낸다.

 '소리꾼 김용우가 부르는 아리랑’으로 잡았어요. 객관적으로 보는 아리랑보다는 김용우가 보는 아리랑은 어떤 수식어가 좋을까? 고민하다 그냥 ‘김용우가 부르는 아리랑’을 택했죠. 어느날 지인들과 막걸리를 마시다 ‘김용우가 부르는 아리랑을 듣고 싶다. 소리꾼이니 너만의 독특한 아리랑을 들려 달라’라고 부탁해서, 그때부터 진지하게 고민했죠.

그리곤 국악인 박애리가 불러 인기를 얻은 ‘쑥대머리’를 만든 오지총(본명 오철, 한의사)씨에게 이번 앨범의 프로듀서를 부탁드렸죠. 국악을 전공한 분도 아닌데 며칠 후 떡하니 곡을 들고 왔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음반 11곡 중 7곡이 오지총씨가 만든 겁니다. 진도, 밀양, 정선 아리랑은 현장에 내려가 채록을 통해서 담았고, 후배와 제자들 목소리도 넣었어요. 특히 이번 앨범을 통해서 카레이스키(구소련 시절 우즈베키스탄에 강제 이주된 고려인)의 고난과 역경을 가사로 담고 있는 아리랑을 접하면서 제 자신도 새롭고 다양한 과정을 겪게 됐어요.

-이번 음반에는 어떤 특별함을 담았는지요?
아리랑 곡들로만 제작된 음반은 이전에 없었어요.

이 음반은 국악음반이 아닌 대중가요처럼 만들었어요. 앨범의 프로듀서를 맡은 오지총씨가 주문하길 ‘독특한 자신만의 창법은 그대로 가지고 가되 발성은 필요에 따라서 가요처럼 바꿀 수도 있다’는 말에 충실했습니다.국악 창법이 가요와 다른 점은 바로 호흡이죠. 가요는 호흡마저도 노래에요. 국악인 소리꾼 김용우가 부르는 한편의 영화음악을 듣는 ‘편한 아리랑 음악이다’라는 평을 듣고 싶습니다.

본조 아리랑인 긴 아리랑은 기타로 길게 불어 내고 본조 아리랑 이전인 구(舊)아리랑은 가야금 한 대로 구성 됐고요. ‘기쁨의 아리랑‘, ’상주아리랑‘ 등은 곡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각도로 접근했어요. 새아리랑은 ‘그 남자 그 여자’로 유명한 뮤지션 바이브(Vibe)가 작곡을 맡았고 ‘기쁨의 아리랑’은 우리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기쁨을 노래한 아리랑으로,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 목소리도 넣었습니다. ‘진도아리랑’은 진도 어르신들 목소리, 밀양아리랑은 제자들이랑 함께 부르면서 추임새를 넣고 아카펠라처럼 돌림노래처럼 치기도 해서 이 곡도 잘 빠졌어요.

정선아리랑을 편곡한 ‘엮음자진아리랑’은 홍대 부근의 클럽에서도 통할 수 있도록 빠른 비트를 넣어 20~30대가 좋아하도록 했어요.

 소리꾼 김용우는 이번 앨범까지 총 9장의 앨범을 냈는데 올해는 그가 걸어온 15년 음악인생을 정리하는 해라고 했다.

◆아리랑은 누구나 들을 수 있고 흥얼거릴 수 있게 해야

-아리랑을 중국이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을 했습니다. 이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십시오.
8.15 광복절 날 앨범이 나올 예정인데 중국이 우리 아리랑을 자기들의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놀라기도 하고, 참 어이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손석희 교수가 ‘중국과 일본, 우리나라는 좋은 이웃을 두지 못했다’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정말 가슴에 와 닿습니다.

중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 우리의 좋은 문화유산을 다 빼앗으려 덤빕니다. K-POP, 피겨의 김연아 선수, 김치와 같은 우리 음식들은 누가 뭐라고 하든 우리 것인데 말이죠.아리랑을 중국이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진도지역에는 무형문화재가 20개가 넘어요. 중국과 일본에 이런 곳은 없습니다.

우리 노래이기에 뺏길 수 없는 거는 당연하죠. 하지만 우리 것으로 생각했지만 당연하다고 해서 할 수 없는 일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아리랑을 우리가 자꾸 부르게 해야죠. 부르고 듣다 보면 자연스레 흥얼거릴 수 있게 되고, 또 지킬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악계의 조용필로 불리며 팬클럽도 갖고 있습니다. 민요(국악)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젊은 베테랑 소리꾼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대중화를 위해 어떤 활동을 예정하고 계신지요.
일단 쉽게 푸는 작업이죠. 대중들에게 어렵다고 하는 민요를 쉽게 풀어야 합니다. 사실 전통 소리를 듣게 되면 어렵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 되려면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을 노력해야 해요.

제가 큰마음 먹지 않고 공부 하지 않으면 풀어 드리기가 쉽지 않아요. 토속민요와 지역민요 채록과정을 통해서, 또 연습하는 과정에서 제가 김용우 답게 거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첫 음반(1996년) ‘지게소리’를 내자 제 음악을 듣고 ‘어 이거 국악 맞아?’ 라면서 반응이 금방 왔어요. 민요를 부르지만 여기에 피아노에다 기타도 들어가고, 우리의 전통악기도 함께 섞어서 연주하는 새로운 시도를 한거죠. 그렇게 활동하다 보니 콘서트를 하면 많이들 찾아와 주십니다. 어렵고 고루하고 힘들다고 했던 분들이 점차 제 음악을 편하게 느끼고 좋아해주셔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용우 소리꾼은 국악방송 행복한 하루 진행자이기도 하다. 평일 오후 12시부터 2시까지 그의 해설이 깃들여진 국악방송을 들을 수 있다.

 -국악 대중화가 어디까지 와있다고 느끼십니까?
예전보다 진짜 좋아졌죠. 악기 공부, 소리 공부 하시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음악을 아시는 분들은 혼자만 좋다고 하는 게 아니라 주변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거죠. 혼자 아는 걸 공유하면서 자연스레 대중화로 이어지고 있어요.

자국민 음악으로만 방송되는 채널은 세계에서 국악방송이 유일합니다. 우리나라 음악만으로 송출되는 방송 말에요. 오는 10월에 국악방송 전주채널이 열려요. 한옥마을에다가 방송국을 만들었죠. 우리네 음악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이제 학부모님들도 자녀에게 국악을 시키려고 해요. 서양악기로 성공하는 케이스는 1%도 안됩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부모들이 ‘국악과 우리 민요로 우리 아이들을 제대로 밀어주자’로 생각이 달라진 거죠. 국가의 지원도 늘었고, 저변확대도 많이 이뤄졌습니다. 우리 민요가 가요 차트에 올라가는 게 제 개인적인 욕심이에요. 최선을 다할 건데 이 음반 안 되면 정말 큰일이라는 각오로 만들었어요. 오지총이랑 백방으로 뛰고, 가요와 방송 쇼케이스도 열심히 할 겁니다.

◆3천 5백석 가득 메운 도쿄 공연장에서 부른 ‘임진강’에 울컥

-일본에서 음반도 발매하고 많은 활동을 하셨는데 앞으로의 해외 활동계획은?
라이선스 계약도 하고 유투브에도 올리면서 세계무대에 진출할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한류스타인 배우 배용준씨가 일본에 진출하기 전인 2000년 초반에 저는 이미 일본에서 전국 투어 콘서트를 3년에 걸쳐서 했어요. 3천석도 매진시키고 했는데, 공연티켓이 한 달 전에 매진이 됐죠. 일본말 철저히 공부하고 보고 읽고 우리 아티스트와 일본 아티스트로 혼합 밴드를 구성하고, 참 반응도 좋았죠. 일본 기획자가 셈(배분이 적어서)을 너무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이랑 대판 싸우고 그만두면서 많이 아쉬웠는데 그때는 콘텐츠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요. 이번 아리랑은 미국이랑 다른 국가와도 연결해보려고 해요.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공연과 에피소드를 들려주신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훗카이도 공연 후에 가졌던 마지막 도쿄 공연입니다. 그날이 공교롭게도 저의 생일이었죠. 무대 마지막 곡으로 ‘임진강’을 불렀습니다. ‘임진강’은 북한 노래인데 국내보다 일본에 더 잘 알려져 있는 곡이죠. 이 곡을 아카펠라 트라이톤 그룹과 함께 불렀는데, 민족 애환이 담긴 곡이라 제 부분에서 이 노래를 이어 부를 수가 없었어요(감동이 벅차올라서). 그 때 일본인과 조총련계 재일교포들이 많이 와서 3천 5백석이 매진됐죠.더욱 놀란 일은 공연이 끝난 뒤 무대 뒤에서 쉬고 있는데 스텝들이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더군요. 나가보니 공연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극장 안에 남아 계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왜 안가셨나 했더니 싸인 받으려고 300미터 줄이 구불구불하게 서있는 거예요. 정말 고마웠고 기억에 오래 남아요.

이번 아리랑 앨범에 호응을 많이 해주셔서 콘서트로 연결된다면 저야 말할 나위 없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겠지만 꼭 성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국악과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영동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자연스레 국악을 접하게 됐어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저희 부모들은 국악 한다고 하니 썩 좋아하지 않았어요. 배고픈 짓을 왜하냐 그랬죠. 서울대에 진학하니까 살짝 수그러들었죠(웃음) 영동은 난계 국악축제가 유명해요. 초중고 학교마다 다 국악반이 있었어요. 국악관현악단이 영동군에 유일하게 있고 국악전용극장. 국악체험장. 국악기를 제작하는 장인이 많은 곳도 영동입니다. 영동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자연스레 국악을 접하고 소리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평일 오후 12시 행복한 국악을 들려주는 국악방송 진행자

-낮 12시부터 국악방송 ‘행복한 하루’를 진행하고 있다. 방송의 재미는 어떤가?
재미요? 쏠쏠하죠(웃음) 일단 소통할 수 있고 바로 바로 생방송으로 우리 민요음악을 소개할 수 있는 게 큰 매력이죠. 사실 국악방송을 알고 있는 분들이 아직은 많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국악방송으로 거듭나야 하고 존재감도 더 키워야죠. 이 부분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곡이 있다면
창부타령이에요. 故 지연화 선생님 노래를 직접 듣지는 못했어요. ‘꼭 배워야겠다’ 다짐을 하고 계속 들었죠. 이 곡은 1년은 음악만 들었고 이후 1년은 편곡해서 무대에서 부르기만 했어요. 그러고 나서 1년 후인 3년 만에야 음반에 담을 수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부족함을 느끼는 곡이지만, 이 노래 부를 때만은 가장 행복함을 느끼죠. ‘아니~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제목으로 지난 2009년 12월에 앨범이 나왔는데 곡(창부타령) 제목으로 했죠. 가장 많이 부른 곡이기도 하고 관객들 반응도 가장 좋은 거 같아요.

맑고 단아하면서도 깊은 소리와 독창적인 음악적 색깔로 국악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소리꾼. 서양의 대표적인 악기를 민요의 품속으로 끌어들이거나, 아카펠라와의 하모니와 함께하는 것, 재즈와 테크노음악과의 접목 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신선한 울림을 주고 있다. 또한 다양하고 활발한 음반 및 공연 활동을 통해 우리 소리와 민요를 대중음악의 한 방편으로 널리 알리는 일을 꾸준하게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