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대 묘비명은?
[소설] 그대 묘비명은?
  • 유시언(소설가)
  • 승인 2011.08.1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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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묘비명은?

유시연(소설가)

노인이 남긴 유언은 다음과 같다.
1.고향에서 장례식을 치를 것.
2.마을 사람들에게 충분히 사례할 것.
3.부인 묘에 합장할 것.
4.장례비용은 통장에 남긴 것으로 쓸 것.
5.대학원 명예석사학위를 묘석에 쓸 것.

어떤 사람은 죽음 이후의 삶까지도 철저하게 준비한다. 노인이 요양원에 머문 시간은 고작 두 달 여. 자식들이 번갈아가며 방문을 하면 노인은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에 잠기곤 하였다. 노인은 평생 농사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보통 농부들과는 달리 작물연구나 농촌 계몽을 하며 보낸 분이다.
노인의 학력은 국졸이다. 평생 못 배운 한이 남은 노인은 막내 딸이 대학원 졸업하며 학교에서 부모에게 준 명예학위증이 자랑스러워 유언으로 남겼다.

후손을 위해 잣나무를 심거나 잡목이 무성한 산에 여러 가지 경제가치가 높은 나무를 심거나. 노인은 하루도 쉴 틈 없이 일을 하여 자식들을 교육시켰다. 가끔 어린 자식들을 키우며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검버섯 가득한 얼굴에 깊은 주름을 만들며 어제인 듯 꿈꾸는 눈으로 창밖을 응시하였다. 의식은 또렷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당뇨와 간경화 말기가 암으로 진행된 상황을 노인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생명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도.

노인의 몸이 이상해진 건 삼 년 전부터다. 고혈압에 당뇨와 간경화. 젊었을 적에 술을 즐기며 몸을 돌보지 않은 결과다. 노인은 그때부터 스스로 자신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안주머니에는 항상 돈을 준비해서 메모지와 함께 넣어뒀다.

― 누구든지 내가 쓰러지거든 안주머니에 든 돈으로 병원에 데려다주오.
노인은 요양원에 오기 전 세 번인가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갔다. 첫 번째로 쓰러졌을 때 이웃 청년이 발견해서 구급차를 불러줬다. 그 이후 노인은 위기상황에 대비해서 항상 현금을 준비해서 갖고 다녔다. 한 번은 쓰러진 후 혼자 몸을 겨우 움직여서 구급차를 부르고는 종합병원에 입원을 했다. 멀리 있는 자식들은 아무도 몰랐다. 입원 치료 후 몸이 조금씩 나아졌다. 일 년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노인은 의사로부터 이 상태라면 앞으로 일 년 이상 너끈히 살 수 있다는 말에 몹시 행복해했다. 하지만 노인의 몸은 서서히 병이 깊어갔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자식들이 의논하여 요양원에 모신 후 노인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우울해했다. 고향집에 데려다달라고 틈만나면 자식들을 닦달했다.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면 고향으로 모시고 가겠다고 했지만 노인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큰 딸이 방문했을 때 노인은 지나간 시간들, 용돈 보내드린 일, 첫 입학, 자식과의 추억에 대해 감사해하며 고맙다고 했다. 딸은 돌아서면서 노인이 유언을 하는구나 싶었다.

“야야, 내 몸이 왜 이러냐.”
노인은 둘째 딸이 오면 의식과 다르게 자꾸 흐트러지는 몸에 대해 푸념을 했다. 간호학을 전공한 둘째는 처음부터 노인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했다. 둘째는 그날 영양제를 한 병 놔주고 한나절을 노인 옆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노인의 얼굴은 밝았고 피부는 맑았으며 몹시 평화로운 표정이었다. 노인은 많은 이야기를 했다. 둘째가 노인을 만나고 온 이십여 분 뒤 노인은 운명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명료한 의식으로 과거를 회상하며 자식과 즐거운 담소를 나누었다.

유언에 따라 노인은 선산 기슭에 묻혔다. 먼저 간 부인과 합장을 하라고 유언했다. 노인은 장례식 비용을 통장에 보관하고 있었고 둘째 아들이 뒤늦게 낳은 손녀 딸 돌을 못 볼 것을 짐작하고 금반지를 미리 준비해뒀다. 무엇보다도 겨울에 죽으면 땅파기 힘들다고 흙을 한 트럭 사다가 부인 묘지 옆에 부어놓았다. 병상에서조차 자신이 먹을 약을 머리 맡에 두고 꼼꼼하게 챙긴 노인은 죽음까지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돌아가셨다.
노인의 사십구재. 자식들은 다시 고향에 모였다. 전국이 한파로 얼어붙은 날이다. 노인이 살던 집은 텅 비어 있고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묵은 앨범이 선반 위에 포개져 있고 오래 비워둔 공간은 썰렁하기만 했다.
단 하루만이라도 온전히 노인을 위해 시간을 내어주지 못한 자식은 회한에 젖어 후회를 한다. 혈기 왕성한 젊은 청년이었던 노인의 시간을 자식은 선명히 기억한다. 기억 속에 노인은 고스란히 저장되어 살아있다.
중학교에 첫 입학하는 딸자식을 위해 만년필을 선물로 준비해놓았던 노인. 자신이 배우지 못한 한을 대물림할 수 없다고 학자금 고지서가 나오면 미리 준비해뒀다가 첫 번째로 내어주던 노인.
뒤돌아보면 부모의 희생으로 그 자식은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지냈다. 수업료를 낼 때가 되면 항상 준비했다가 일등으로 냈던 그 기억들. 결혼 후 사는 게 어려워 툭 하면 친정부모에게 돈을 빌려다 쓴 그 일마저도 가슴 아픈 회한으로 남았다.
노인이 땅에 묻힌 뒤 딸자식은 언 땅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슬픔을 삼켰다. 살아있을 때 좀 더 잘해드릴 걸 후회를 하고 또 하며 가슴이 먹먹해지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시간이 되어버렸다.

아버지.
언제나 울타리가 되어 못난 딸자식을 지켜줄 것만 같았던 그도 흐르는 시간과 더불어 늙고 병들고 죽어 저 세상 사람이 되어버렸다. 인생은 한낱 한바탕 꿈. 지나간 어제와 같다. 아버지는 자식들 가슴 속에 오래 살아남아 흔들릴 때마다 힘들 때마다 옳은 길로 가라고 야단치시는 것 같다.
노인의 49재에 모인 자식들. 묘지석을 주문하고 나서 묘비에 새길 글을 적어본다.
몰운리 255번지에서
한 생을 살던 부부
산그늘 베고 누워
강물소리 들으며 잠들다.

*작가 유시연은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2003년 <동서문학>에 단편소설 '당신의 장미'가 신인상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는 <알래스카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가 있으며, 이번에 펴낸 <부용꽃 여름>은 첫 장편소설이다. 한국작가회의, 한국소설가협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인터넷문예일간지 <문학in>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2008 인천문화재단 창작지원금'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