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소금꽃 피우는 나무를 싹둑 베는 나라
[서평]소금꽃 피우는 나무를 싹둑 베는 나라
  • 이소리 시인 본지 논설위원
  • 승인 2011.08.1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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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여성 노동자 삶과 투쟁 이야기 <소금꽃나무> 특별판 펴내

“가서 김진숙 아줌마를 보았을 때는 안쓰럽고 걱정됐어요. 그런데 아줌마 말을 들었을 때 멋지고 용감하다고 느꼈어요. 아줌마의 목소리를 들으니까 힘이 났어요. 그리고 제일 좋았던 건 무섭지 않고 평화로웠던 거예요... 희망버스를 타서 배우고 온 것도 많고 사람들이랑 처음 보는 데도 서로 친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게 좋았어요.”-누리꾼 ‘연서’

이 나라 최초로 여성 용접공이었던 김진숙. 그는 누구일까. 그는 무엇 때문에 홀로 이렇게 힘든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그가 이번에 펴낸 특별판 <소금꽃나무>를 살펴보자. 그는 ‘일당이 좀 세서’ 용접을 배웠고, ‘돈 벌어서 대학 가는 게’ 소원이었다. ‘정의 사회 구현’에 도움이 될까봐 ‘노동조합’에 출마한 물정 모르는 촌뜨기가 그다.

그는 공장에 다닐 때 하루하루가 지옥 같아서 새벽에 일어나면 매일 울었다. 공장에서 관리자를 만나면 주눅이 들어 안전모가 삐뚤어진 것은 아닌지 고쳐 쓰고 작업복이 단정한지 확인했다. 공장에서 용접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 하루에도 시계를 수백 번씩 보지만 그럴 때마다 시간은 5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그즈음 노동조합에 뛰어들었다. 그 뒤부터 아침에 회사 가는 것이 즐거웠다. 공장 관리자에게도 거꾸로 ‘걸리기만 해봐라’ 생각할 정도로 당당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노동조합은 ‘인간의 자존감’을 깨닫게 한 길이었다”고 쐐기를 박았다. 봄이 오면 ‘삼랑진 딸기밭’에 나들이 가고 싶어 하는 비정규직 해고자들 청춘을 언제까지 버려둘 것인지 몹시 안타까워하는, 정말 마음씨 곱고 아름다운 여자 김진숙.

이 세상을 가꾸고 있는 것은 노동자
“잎사귀도 없이 꽃만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나무를 본 적이 있는가. 황금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를 본 적이 있는가. 아침 조회 시간에 사람들이 ‘나래비’를 죽 서 있으면 그들의 등짝엔 허연 소금꽃이 만개하곤 했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다. 중학교 때 일기장에 칼을 그리고 선생한테 얻어맞은 뒤로 일기조차 진실을 은폐한 관제 일기만 썼고 글 쓰는 걸 취미로 삼아본 적도 없다”-‘책을 내며’ 몇 토막

“내가 지금껏 썼던 글들은 원고지에 쓸 수가 없는 글이었다”고 말하는 김진숙. 그런 그가 왜 <소금꽃나무>(후마니타스)라는 책을 냈을까? 그는 “진짜 노동자들의 건강함, 세상을 만들어가는 그들의 자신만만한 낙관을 보여 주는 이야기들로 책을 출간했다”고 되짚는다. 이는 곧 원고지에 쓰는 “진실을 은폐한 관제 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책에 담겨 있는 글들은 1980년대 뒤 우리 사회가 지닌 얄팍하고도 무서운 속내를 사실 그대로 파헤친 ‘노동과 천민자본의 역사’이자 우리 사회 자화상이다. 한 여성 노동자가 거대한 자본과 마빡을 내밀고 싸우는 삶과 투쟁, 비록 그것이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될지언정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이 책이 지닌 ‘뼈아픈 아름다움’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모두 6부(부록 1편)에 33편에 이르는 글들이 그가 해고를 당하기 앞에 들었던 용접봉에 붙은 시뻘건 용접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다. 1부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 2부 ‘거북선을 만드는 사람들’, 3부 ‘더 이상 죽이지 마라!’, 4부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미래다’, 5부 ‘손가락을 모아쥐면 주먹이 된다’, 6부 ‘상처’가 그것.

김진숙은 특별판 ‘책머리’에 이렇게 또박또박 쓰고 있다. “난 아직도 세상을 바꾸고 싶다”라고. 이는 곧 이 세상을 가꾸고 있는 것은 노동자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거북선을 만든 것도 노동자요, 배와 차, 길, 집, 기름, 전기, 전화, 포크레인, TV, 컴퓨터, 빵, 밥, 옷, 신발, 우유, 시계, 종이, 악기 등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는 이가 노동자 아니겠는가.

잠시 인터넷을 끄고 소금꽃 김진숙을 읽자

“물이 0도에서 얼듯이 세상 만물은 영하로 내려가야지만 얼어붙는 줄 알았습니다. / 출간한 뒤 따뜻한 방 안에서 발가락이 몹시 가렵고 잠시도 못 참고 긁어대면서도 그저 무좀이려니 했습니다. 발가락을 끊임없이 긁어대는 걸 보다 못한 친구가 제 발가락을 들여다보더니 화들짝, ‘동상이다!’ 하길래 그때서야 발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말 새끼발가락부터 빙 돌아 뒷꿈치까지 벌겋게 얼어 있었습니다”-‘항소이유서’ 몇 토막
<소금꽃나무>, 200일을 훌쩍 넘긴 크레인 농성 등으로 이제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김진숙. 이 책을 낸 출판사 게시판에 “소금꽃나무를 널리 알려 주세요. 김진숙 지도위원이 무사히 내려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잠시 인터넷을 끄고 소금꽃 김진숙을 읽자”는 누리꾼 글까지 수없이 매달리는 그.

김진숙이란 이름이 요즈음 여기저기 하도 이름이 오르락내리락 하니까 무슨 ‘대단한 감투’(?)라도 쓰고 있는 줄 아는 이들도 더러 있는 모양이다. 이는 모두 착각이다. 그에게 ‘닉네임’처럼 붙는 것은 꼭 하나,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다. 그래. 꼭 하나 더 있다면 <소금꽃나무>다. 이 책이 그 만큼 많은 사람들 마음을 찡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출판의사를 묻는 출판사에게 “그 따위 게 책으로 만들어 낼만큼 가치가 있는 걸까, 그 따위 걸 책으로 만들어 내자고 나무를 베어내도 되는 걸까”라고 말한 김진숙. 나무를 너무 좋아해 “다음 생에 윤회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고 못 박은 여자. <소금꽃나무>는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우리 곁에 다가온 책이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소금꽃나무 선물하기 운동을 펼치는 독자들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크레인 위에서 긴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소금꽃나무는 1,700여 명의 새로운 독자들을 만났다”라며 “출간 이후 4년여가 지난 책이 다시금 이런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은 <소금꽃나무>에 대한 독자들의 새로운 열망 때문이었다”고 귀띔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독자들은 ‘김진숙’을 통해 소금꽃나무를 찾았지만, 이제 그것은 김진숙을 알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김진숙을 응원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라며 “출판사는 독자들이 종이가 아닌 그녀의 살을 맞대고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었다. 때문에 <소금꽃나무> 한정특별판은 바로 이런 독자들이 만들어낸 책”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소금꽃나무>는 땀과 피를 찍어 쓴, 억울하게 해고를 당한 한 여성 노동자가 적은 우리시대 노동일기다. 이 책은 거대한 자본을 가진 대기업들이 제멋대로 저지르는 노동자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사실 그대로 고발하고 있다. 노동자 없이 이 세상에 있는 그 무엇이든 만들어질 수가 없음을 우리 사회 곳곳에 똑똑히 새기고 있다는 그 말이다.

‘소금꽃나무’로 불리는 김진숙(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은 강화도 외포리에서 태어나 1982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여성 용접공이 되어 한진중공업 모태인 대한조선공사에 입사해 일하다가 노동조합 활동 때문에 해고되었다. 그 뒤 20여 년을 해고자이자 노동운동가로 살아온 그는 지금 200일이 지나도록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크레인에 올라가 긴 투쟁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