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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은주 명창, ‘천년의 노래 아리랑’
명창 이은주 제자들 많아 나이들 여유가 없다는 90세 경기민요 인간문화재
2011년 09월 17일 (토) 10:49:02 이은영 발행인 press@sctoday.co.kr

이은주 명창은 부른다. 구십세를 존칭하는 졸수(卒壽)의 나이에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로 태평가를 보란 듯이 멋들어지게 뽑아냈다. 이은주 명창은 말한다. 내 나이 이제 구십, 소리하는 친구들과 화려하고 또 외로운 꽃길을 걸어왔던 날들이라고 회상했다. 그래도 이은주 명창은 아직도 젊다, 마음은 이팔 청춘, 단지 나이만 좀 먹었을 뿐이란다.

이은주 명창은 15세 때 소리에 입문했다. 지난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로 인정받은 이후로도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은주 명창을 만난 종로구 권농동 그 한옥에서 60년째 살고 있다. 그녀의 오늘날의 자리에 서게 한 고마운 어머니의 바람이 컸기 때문이다. 이은주 명창은 전쟁 통에 현재 우리 소리꾼들이 즐겨부르는 태평가의 가사를 직접 개사했다. 힘이 솟고 흥이 돋는 소리로 거듭나게 해 전쟁통의 우리 국민들을 위로했다. 소리가 좋아 소리에 울고 웃어온, 이은주 명창의 75년 소리인생을 들여보자.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소리길로 인도해 준 어머니께 감사

   
▲ 제자들 많아 나이들 여유가 없다는 90세 경기민요 인간문화재 이은주 명창
-오는 9월29일에 90세, 졸수(卒壽)를 맞이해 큰 공연을 계획하고 있으신 걸로 압니다. 어떻게 진행되는지요?
제자이기도한 박정욱 군에게 모든 걸 맡겨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이를 들먹이기는 싫지만 어쨌든 구십이 되고 보니, 무언가 뜻 깊은 무대에 서고 싶었습니다. 평소에 아리랑을 좋아해서 음반에 꼭 아리랑을 여러 곡 녹음했었는데 이번에 아리랑무대를 펼쳐보려고 합니다.

 

-올 초 국악방송 10주년 행사에서 제자 이호연 경기명창과 소리를 이어가는 꿈나무 송소희의 노래에 대 스승인 선생님께서 태평가로 화답하셨지요. 소리의 뿌리가 느껴지는 스승과 제자의 어울림이라고 관객들이 무척 흐뭇해하는 광경을 봤습니다. 당시의 소회를 들려주세요.
어린 명창의 소리를 들으면서 제가 어렸을 때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이제 소리도 대를 물려서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에 의미가 크고 모든 것이 현대화된 이 시대에도 70~80년 전처럼 민요가 좋아서 그 길을 가려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에 마음이 놓이고 기뻤습니다. 사실 제가 소리하는데 어머니가 적극 찬성했어요. 어머니는 신지식인이셨죠. ‘여자이지만 활발하고 많은 경험을 해라’고 가르치셔서 오늘날 제가 있게 된 겁니다. 

   
▲ 명창 이은주 천년의 노래 아리랑 90세 공연이 오는 9월 28일 열린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보유자이신데 경기민요의 참맛은 뭘까요?
경기민요는 서울서 경기사람들의 성격이 잘 표현된 소리지요, 깔끔하고 명랑하고 뭐든 예쁘게 표현해 내려는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운 소리를 목을 써서 굴리고 방울목으로 돌려 꺾기도 하며 잔잔히 떠는 음을 내어 경쾌하면서도 구성진 소리를 내야 하기에 타고난 목이 아니면 좀 힘들다고들 하지만 각기 개성대로 부르면 그 맛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정선아리랑에 아들 잃은 슬픔 담아내

-가장 좋아하시는 소리가 궁금합니다. 또 그 이유도 말씀해 주세요.
내가 제일 애창하는 소리는 ‘정선아리랑’인데 그 구성진 가락과 애달픈 가사 때문이지요. 이곡을 레코드 녹음할 때 눈물이 너무 나서 말이에요. 아들이 당시 나이로 31살 때 죽었어요. 죽은 지 한 달 만에 하려니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굽이굽이 삶이 묻어나서 언제나 부르고 싶은 민요이기도 하고... 사실 내가 제일 잘 부르는 소리는 서울민요 ‘이별가‘인데, 많은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소리는 역시 ’태평가‘인 것 같아요

-무형문화재 제도에 대한 국악계의 여러 목소리가 있었고, 몇 년 전 경기민요와 관련해 약간의 파란(?)이 있었을 때 이에 대해 큰 걱정을 하셨는데요.
처음엔 경기민요하는 소리꾼들이 많지 않아서 이런저런 사정 끝에 나와 안비취, 묵계월선생이 경기민요 보유자가 됐지만 이제는 제자들이 많이 안정되어 문화재 후보감이 많아지다 보니 아마도 이런 문제가 생기는 듯싶어요. 어쨌든 훌륭한 제자들이 잘 해결해 나가리라 믿고 경기민요의 위상이 섰으면 좋겠어요.

◆장수 비결은 부지런함에다 웃음

-지금도 계단을 단박에 오르내리실 정도로 건강하십니다. 어떤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으신지요?
제자들이 많아서 나이들 여유가 없어요(웃음). 건강하게 사는 비결은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것이죠. 나이 들었다고 할 일을 남에게 미루지 않고 크고 작은 일들을 예전과 같이 늘 하려는 마음이 건강의 비결입니다. 자주 간식을 먹게 되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세상사는 얘기들도 함께 나누고 웃고 사는 것이 비법입니다.

   
▲ 인터뷰 도중에 태평가를 뽑아내는 이은주 명창
-20~30년대 당시에는 관객들 투표로 소리 우승자를 가렸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제가 21살 때 스승이 대뜸 소리 공부만 하지 말고 나가서 상도 타봐라 하시데요. 그길로 인천극장에서 수심가를 부르니 떡 하니 1등을 했어요(웃음). 그 당시는 관객들이 직접 투표함에 투표를 하는 방식으로 1등을 뽑았어요. 또 종로 단성사에서도 투표로 1등을 연달아 했어요. 상품이 인천은 자개농이었고 단성사는 큰 금반지였습니다(웃음). 스승이 ‘너 참으로 수고했다’ 등도 두드려 주고 ‘그러니 더 숙이고 잘해야지’하고 말한 기억이 납니다.(웃음)

-아버지가 소리하는데 반대가 심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이야기를 말씀해 주십시오.
시골에서 올라와서 고생 많이 했어요. 소리가 하고 싶은데, 제 아버지는 소리 하지 말고 좋은데 시집가거라 하셨어요. 소리 하려면 산에 가서 하라고 하니 어머니랑 두 분이서 많이도 싸우셨죠. 그 동네가 유명한 동네에요.. 동네 사람들이 소리하는 사람들이 못 들어오게 한다고 박대도 많이 받았어요. 어머니가 마음껏 해보라고 해서 스승께 5년을 배우고 거기서 먹고 자면서 배웠죠. 그 대신 종아리를 참 많이 맞았어요. 여름이 되면 살이 딱딱해요. 열 곡 부르면 열 곡 전부다 종아리를 치는 거죠.

-공연 중 재미난 일화가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일본에서 목소리가 막혀서 갑자기 안 나오는 거예요. 이거 큰일 났다. 사람들 저렇게 많은데 소리가 안 나오면 어떡해. 물 좀 달라고 해서 한 그릇을 다 먹고 인사하고 노래를 했죠. 미안하기도 하고 당황했어요. 소리로 할 건 다했어요. 그러다 보니 박수가 더 많이 나왔죠. 일본을 여러 번 갔어요 백금녀랑 코미디언이랑 30-40명이 가게 됐어요. 옛날 그 골동품들(잘하는 사람들 지칭)이랑 석 달 연습을 했어요. 김옥심이 여러 사람들이 앞에서 멋지게 춤을 추다 남치마 하얀 저고리가 내려가는 웃지 못 할 진풍경도 벌어졌어요(웃음). 일본 사람들이 안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죠(웃음)

-선생님의 소리인생을 돌아보신다면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후회한 적은 없어요. 선생님께 5년간 종아리를 그렇게 얻어맞고 했는데도 후회한적 없어요. 그리고 큰 사람이 돼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소리를 하고 있는 거죠. 열다섯 어린나이에 시작해 한 평생을 경기민요와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살아온 인생. 해방과 전쟁 그리고 가난했던 그 시절에도 터져 나오는 목청하나로 희망의 노래를 불러왔습니다. 행복한 때도 눈물이 쏟아지는 슬픔 속에서도 외쳐 불렀어요. 동료들과 함께 여성소리꾼들의 모임 민요연구회를 만들어 일본교포의문공연도 가고 어렵기만 했던 문화재지정도 온갖 애를 쓰며 만들어 냈어요. 가정살림보다는 소리에 더 많은 애정을 쏟았기에 이제는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죠.

   
▲ 15세 때 명창 이은주 선생
-이번 공연을 기획한 박정욱에게 이은주 명창과의 인연을 물었다.

“이은주 선생님을 처음 뵙게 된 것은 1986년 가을이었습니다. 제가 사사받은 고(故) 김정연 선생께서 편찮으셨을 때인데, 우연히 선생님 댁에 놀러 가게 되어 선생님의 문하에서 소리를 배우게 됐어요. 70세 기념공연으로 ‘소리 한 자락. 바람 한 자락’ 공연을 구성하게 됐고요, 80세 기념공연 ‘태평가’ 또한 제가 구성과 연출을 맡았습니다. 이제 90세 기념공연을 준비하게 되어 매우 뜻 깊고 감격스럽습니다. 늘 긍정적이시고 깔끔한 성격의 선생님께서는 한 같이 소리에 대한 애정을 품어내십니다. 제자들에게 한마디라도 더 멋진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다그치시지요. 이은주 선생님은 경기민요의 백년지송(百年之松)이십니다.” 제자의 거침없는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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