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학교지옥’에서 40년 괴로워했다
[서평]학교지옥’에서 40년 괴로워했다
  • 이소리(시인, 본지 논설위원)
  • 승인 2011.09.1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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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유고시집 <이 지구에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얼마나 아름다운 지구가 될까> 나와

우리 겨레 참 교육자이자 탁월한 사상가로 불리는 참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 글쓴이가 이오덕 선생을 처음 만난 때는 1990년대 들머리, 고려대 아래 비탈진 언덕에 있었던 이층 한옥을 고쳐 사무실로 쓰고 있었던 ‘한길사’란 출판사에서였다. 선생은 그날 글쓴이를 처음 만났는데도 아주 오래 만난 벗처럼 따스하고 포근하게 감싸줬다.
선생은 그때 우리 말과 우리 글이 한문투, 일본투, 미국투로 바뀌고 있는 것에 대해 참으로 안타까워했다. 지구촌 그 어디에 내놓아도 정말 곱고 아름다운 말과 글이 우리 말과 우리 글이라는 것이었다. 아이들 교육에 대해서, 동시에 대해서도 몇 말씀 던졌다. 아이들 교육과 동시가 모두 아이들 생각을 벗어난 어른들 생각으로 가고 있어 ‘큰일’이라 했다.
글쓴이도 시인이어서 그런지 선생 말씀이 마음 깊숙이 새겨졌다. 선생 말씀을 듣고 난 뒤 글쓴이는 그동안 스스로 쓴 시나 산문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그 순간 낯짝에 뜨거운 불길이 확 일었다. 명색이 시를 쓴다는 사람이 우리 말과 우리 글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었다니! 이런 큰 낭패가 어디 있나!
부끄러웠다. 쥐구멍이라도 보이면 숨고 싶었다. 글쓴이는 그때부터 문투가 애매할 때마다 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묻곤 했다. 사람들 대부분은 흔히 시를 인용할 때 ‘전문’이나 ‘일부분’이라 쓰지만 글쓴이 홀로 ‘모두’ ‘몇 토막’이라 쓰는 것도 선생에게 물어본 뒤부터였다. ‘일본투 영문투’는 쓰레기처럼 몽땅 버리고, 우리 말과 우리 글 깊숙이 박힌 ‘한문투’까지 몽땅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린이 말과 몸짓은 시요, 생명이다

“어린이의 말은 시 / 어린이의 몸짓은 시 / 산새처럼 재잘거리는 / 피라미처럼 파닥거리는 / 팔팔 살아 있는 / 어린이는 생명 바로 그것 // 생명은 거짓이 없다. / 생명은 꾸미지 않는다. / 생명은 자연 / 생명은 바로 하느님 // 생명을 짓밟는 자 누구냐 / 생명을 속이는 자 누구냐... 부끄러워라 우리 어른들 / 어린이에게 말하는 자유를 주자” -‘인류의 희망’ 몇 토막
이오덕(1925~2003) 선생이 지녔던 사상을 부활시키는 ‘이오덕교육문고’ 제5권 이오덕 유고 시집 <이 지구에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얼마나 아름다운 지구가 될까>(고인돌)가 나왔다. 이 유고시집은 선생이 1950년대부터 2003년 무너미 고든박골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쓴 발표하지 않았던 시 341편을 모아 엮은 책이다.
이 시집은 이오덕 연구가인 이주영 어린이문화연대 회장이 적은, 선생이 살아온 이야기들이 시대별로 담겨 있고, 선생이 남긴 시를 시대별로 나누어 엮었다. 이 시집을 들추면 ‘이 시대의 참교사’로 불리며 평생을 꼿꼿하게 살아낸 이오덕 선생 삶과 선생이 삼라만상을 바라보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모든 것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1950년대에 쓴 시 31편, 1960년대에 쓴 시 55편, 1970년대에 쓴 시 59편, 1980년대에 쓴 시 20편, 1990년대에 쓴 시 78편,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쓴 시 98편이 이오덕 선생이 떠난 자리에 앉아 또 한번 ‘이 시대 참교사’로 거듭나고 있다. ‘기원-누님께’ ‘소’ ‘해바라기’ ‘하늘과 아이들’ ‘인류의 희망’ ‘민들레’ 등이 그 시편들.
이주영 어린이문화연대 회장은 “선생님은 평생 교육자의 삶을 살며, 우리나라 아동문학이 나아갈 길을 열었고, 우리말 바로쓰기와 우리 말 살리기를 펼친 한글운동가이자 어린이 문화운동의 싹을 틔운 어린이문화운동가로 살면서, 어느 이름난 시인 못지않게 많은 시를 썼다”고 되짚었다.
그는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이오덕 선생님의 아드님인 이정우 ‘이오덕 학교’ 교장 선생님이, 이오덕 선생님 유품들과 자료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갈무리 된 시들”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살아생전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님에 준 시 몇 편도 따님이 보내줘 빛을 보게 되었다”라며 “이 시집은 시로 보는 우리나라 역사와 교육, 자연과 생명 세계에 대한 아주 귀중한 증언이고 문헌이다. 이오덕 선생님의 삶과 사상의 궤적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이오덕 개인사의 보물창고’”라고 쐐기를 박았다.

1980년대, ‘아이들 글을 팔아 집장사 하는’ 파렴치한으로 몰려

“주여! / 당신은 그 높은 곳에서 나를 부르십니다. / 그러나, 나는 갈 수가 없습니다. / 저 가난한 사람들과 / 가난하기 때문에 죄를 지은 사람들을 / 땅 위에 그냥 두고 / 나 혼자 갈 수가 없습니다. / 피 흘리며 쓰러진 비둘기와 참새. / 날마다 모진 고역(苦役)을 견디지 못하는 착한 짐승들. / 그리고 억울하게 죽어가는 모든 목숨들을 / 함께 불러 주십시오.” -‘기원(祇願)-누님께’ 몇 토막
1950년대 이오덕 선생은 고향을 떠나 부산으로 가 부산 국제시장 근처에 살면서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한다. 주말이면 국제시장 헌책방에 다니며 책을 사고, 그림을 사고, 시를 쓴다. 이때 <소년세계>에 동시 ‘진달래’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선생은 이때 이오덕이란 이름을 쓰지 않고 ‘이지’나 ‘백양’이라는 필명을 쓴다.
1960년대 선생은 청리초등학교에 복직해 2학년 담임을 맡는다. 이때부터 아이들과 같이 배우고 가르치면서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연구하고 실천한다. 그때 제자들은 지금도 매주 글쓰기와 그리기 시간이면 산과 들과 냇가로 나가 놀면서 수업을 해서 즐거웠다고 말한다. 이때 가르친 내용을 주춧돌로 나온 책이 <글짓기교육의 이론과 실제>다.
1970년대 선생은 평생 어린이문학을 함께 할 수 있는 동무 권정생 선생을 만난다. 선생은 권정생 선생과 시골 교회 문간방에 누워 오순도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나온 책이 어린이문학계에 지진을 일으킨 <아동시론>과 <시정신과 유희정신>이다. 거짓교육을 날카롭게 비판한 수필집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삶과 믿음의 교실>, 시와 산문을 엮은 <일하는 아이들>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가 나온 것도 이즈음이다.
1980년대는 선생에게 희망과 절망을 한꺼번에 안긴다. 그동안 펴낸 책들이 큰 인기를 끌었지만 어린이문학을 하는 일부 사람들이 선생에게 ‘동업자의식이 눈곱만큼도 없는, 아이들 글을 팔아 집장사 하는’ 파렴치한으로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독재정권은 이오덕 문학을 폭력을 부추기는 용공문학으로 몰았다.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를 만들고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 <참교육으로 가는 길>이 나온 것도 1980년대다. 선생은 이때부터 교육민주화 추진 전국초등교육자협의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어린이도서연구회, 민족문학작가회의,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겨레를 살리는 우리말 모임 등 여러 모임에 적극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