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천호선의 문화비평]대중문화 I - 영화이야기
[칼럼-천호선의 문화비평]대중문화 I - 영화이야기
  • 천호선/컬쳐리더인스티튜트원장
  • 승인 2011.09.2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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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대 말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직전 친척 아저씨 한분이   처음으로 영화를 보여 주었다. 스펜서 트레시가 주연하는  <북서로 가는 길>이었는데, 그 이후 영화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때까지 내가 본 영화들의 감독, 주인공들의 이름을 줄줄이 외고 다녔다. 35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는 정년퇴직 이후를 생각하면서 중앙대 첨단영상전문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하기도 하였다.

 대학교 시절에는 연세대 산악반에서 록클라이밍에만 미쳐 있었고, 3년간의 군대생활, 그리고 그 후의 바쁜 직장생활 때문에 한동안 영화가 멀리 떨어져 있기도 했으나, 해외근무를 시작하면서 영화는 다시 내 생활의 중심에 들어 앉게 되었다.

 뉴욕, 코펜하겐, 오타와로 이어지는 해외근무 동안 영화는 우리 부부의 최대의 즐거움이 되었다. <대부>, <빠리,텍사스>, <화니와 알렉산더>, <집시의 시절>, <델마와 루이지> 등등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영화관에 다녔고, 당연히 저녁 시간 화제의 중심은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하루하루의 생활속에서도 기쁨과 슬픔, 분노와 희열, 사랑과 증오의 감정이 반복되고, 어쩌다 과거를 돌아볼 때 지나온 내 삶들이 엉성하고 단편적인 모습으로 엮여 나오기도 하지만, 영화속에서 나는 내가 바라거나, 피하고 싶은 또 하나의 나의 삶의 모습들을 보는 것이다.

 1990년대 초에 귀국해서는 상대적으로 바쁜 국내생활에 적응하느라 영화관을 찾기 보다는 비디오로 영화감상을 대신하다 보니까 영화가 주는 감동도 화면의 크기만큼 줄어 드는 것 같고, 영화에 관한 부부간의 대화도 없어졌다. 그러다가 언젠가 제인 캠피언감독의 <피아노>를 같이 보고는 오랜만에 영화 이야기로 밤을 새웠다.

 주인공은 시집오면서 피아노를 가져오고, 빼앗긴 피아노를 되찾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대가로 거래를 한다.

 그러나 그녀는 피아노의 건반을 뜯어 “내 마음을 당신께 드린다”는 글을 써서 사랑하는 남성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결국에는 사랑을 위해서 바닷물에 피아노를 버리고 만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는 음악을 주인공의 언어로 만든 것이다. 즉 감독은 주인공을 벙어리로 설정, 남성중심사회에서의 억압을 상징하고, 음악이 말을 대신하면서 주인공의 의지, 본능, 욕구를 표현토록 하고 있다. 또한 감독은 작곡가 마이클 니만의 미니멀 음악과 청색빛의 조화를 통하여 청각예술과 시각예술의 완벽한 결합을 보여준다.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에 놓여있는 피아노와 피아노를 버리고 떠나는 주인공을 감싸는 다크불루 스카이는 미이클 니만의 피아노협주곡과 어울리면서 움직이는, 들리는 초현실주의 그림을 만든 것이다.

영화 <피아노> 이후 우리 부부는 한동안 한달에 한번씩 영화관에 같이 가고 그날밤  본 영화를 같이 분석해 보는 습관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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