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대첩(임진왜란)과 명량대첩(정유재란)의 만남
한산대첩(임진왜란)과 명량대첩(정유재란)의 만남
  • 홍경찬 기자
  • 승인 2009.04.3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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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 축제행사 교류협력 조인식

 임진왜란을 대표하며 세계4대 해전의 으뜸인 통영 한산대첩과 정유재란을 대표하는 명량대첩이 410여년이 지나서 서로  만난다.

 시는 4월 30일 오후5시 통영시청 회의실에서 (재)한산대첩기념사업회(이사장 박명용, 현 조흥상호저축은행장)와 (재)명량대첩기념사업회(이사장 박준영, 현 전라남도지사)간에 축제행사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상호 교류협력 조인식을 가진다고 밝혔다.

▲ 한산대첩 재현모습

▲ 명량대첩 재현모습

 











 이날 영호남 축제 교류협력 조인식에는 양 축제를 집행하는 한산대첩 재단 류태수(마산대학 겸임교수) 집행위원장과 명량대첩 재단 조규탁(진도군의회 의장)집행위원장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양시 기념사업회 이사장의 이름으로 협약서를 상호교환 하게 된다.

  통영한산대첩축제는 지금으로부터 417년 전인 1592년 7월 8일 남해를 돌아 여수의 전라 좌수영을 격침하고 서해진출을 꾀하려는 일본의 최정예수군 부대 ‘와키자카 야스하루’란 수군장수가 지휘하는 함선 73척과 이 충무공 등이 지휘하는 조선의 연합함선 58척이 서로 전략,전술을 겨루는 최초의 조일 정규해전 이였으며, 이 해전에서 이 충무공은 학인진으로 적함선 59척을 격침시키고 8천여 명의 일본수군을 한산앞바다에 수장 시키는 대승첩을 이룬다.
 
 조선수군은 단 한 번의 해전으로 일본수군은 재해권을 상실케 하고 서해진출을 포기하게 만든다. 한산대첩이 없었다면 일본의 조선합방이 300년 정도 빨라졌을 것이라는 역사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그리고 울돌목의 명량대첩축제는 412년 전인 1597년 9월 16일 이 충무공이 단 12척의 함선으로 일본수군 함선 133척을 맞아 ‘必死卽生 必生卽死’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적함선 31척을 격침하는 대첩을 이루었다.

 이번 영호남 축제행사 교류협력 조인식이 이뤄짐으로써 오는 8월 12일부터 개최되는 한산대첩축제 행사시는 명량대첩의 강강술래 공연팀이 우리시를 방문하여 공연을 시연하고 10월 8일부터 개최되는 명량대첩축제 행사시는 우리시의 통영오광대 등이 울돌목으로 가서 공연을 시연하게 된다.

▲ 명량대첩 재현모습

▲ 한산대첩 재현 후 레이저 쇼

 











 앞으로의 교류협력 사업으로는 상징적인 프로그램의 상호 교환운영, 홍보부스 설치 및 홍보물에 상대축제 게재 홍보,축제관람 교차방문 협조체제 유지, 상호 공동 협력 홍보를 통한 저변 확대 강화, 상호 재단 발전을 위한 공동 사업 추진 모색 및 협조체재를 강화하고 상호 상대 축제장을 방문하여 축제 프로그램을 교류하게 되며 축제 물적 교루에 소요되는 경비는 축제를 주관하는 기관에서 축제의 인적 교류에 소요되는 경비는 참여자 부담으로 하여 교류 범위는 30~50명 정도로 하고 있다.

 통영시 문화산업담당 관계자는 “이번 축제교류 실현으로 영호남 화합의 장 마련과 상호간 축제의 공동협력 및 상생으로 대표적인 역사 축제의 모델로 제시하는 한편 통영한산대첩축제를 2012년 세계축제로의 개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있다고 했다.
       

                                             서울문화투데이 경남본부 홍경찬 기자 cnk@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