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속 무대를 만들고 음악회를 연다”
“나는 계속 무대를 만들고 음악회를 연다”
  • 편보경 기자
  • 승인 2009.05.02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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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에게 ‘즐거운 편지’가 된 작곡가 강은수

지난달 22일 세종 체임버홀. 작곡가 강은수와 관객들이 아주 특별한 사랑이야기를 나눴다. 강은수가 ‘작곡가 강은수의 즐거운 편지’라는 타이틀로 연주회를 열고 그의 음악적 감성을 통해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와 ‘풍장’을 만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공연 전반부는 황동규 시인의 시를 중심으로 한 작품들을 가곡과 기악곡으로 풀어냈고 후반부엔 작곡가가 편지에 얽힌 사연들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중심에 배치했다. 따스한 휴머니티가 있는, 너무 솔직해 당황스러운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 강은수, 소위 현대 음악의 지존이라 불리는 그가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관객과의 소통의 장을 무대 뒤편에서 직접 들어보았다.

 

-음악회를 성황리에 마친 것을 축하한다. 작곡가 입장에서 연주를 지켜본 소감은?

청중이 중심이 되는 음악회였다. 객석의 청중 모두는 미세한 소리 하나에도 함께 숨 죽였다. 연주자와 완전 하나가 되는 무대였다는 의미에서 특별했다. 그들은 작곡가가 던지는 메시지, 완결된 어떤 것이 아닌 미완의 의문점을 그대로 감지하고 갔다. ‘작곡가는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하는 의문이 풀리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여러 다른 악기로 다른 주제로 표현하는 다양한 내용들을 하나씩 이해하며 의문이 풀리기도 하고 새로운 의문을 품게도 되는 긴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풍장27 이라는 작품에서 호른과 트럼펫은 무대에 등장하지 않고 소리만 들리게 연출한 이유는?

풍장이 ‘바람으로 장례 지낸다’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곡은 죽음을 바탕에 깔고 있다. 70편의 연작시에서 표현되는 죽음이란 하도 다양한 내용이어서 어찌 보면 일상과 하나도 다르지 않게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현세와는 완전히 구별되는 어떤 다른 세계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호른과 트럼펫의 느린 삼화음의 팡파레는 죽음의 세계, 천상의 소리, 어떤 베일에 쌓인 소리로 여겨질 만한 의미로 해석가능하다. 그것은 바리톤의 느릿한 노래와 어울려 긴 여운을 준다.

 

-'봄날에' 라는 작품이 처음 시작될 때 바이올린 활로 가야금을 갑자기 강하게 그어 소리를 내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한 개인과의 껄끄럽고 까칠한 관계를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어떤 일로 인하여 서로간의 마음이 크게 상하였는데, 그렇게 까칠한 상태를 지속하고 싶지는 않아 열심히 노력은 하나 그것은 참 힘든 일이다. ‘봄날에’라는 짧은 시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그러한 나의 심경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겨울과 봄’, ‘언짢음과 즐거움’이라는 서로 대조되는 시어는 얼었던 강물에서 풀려 새로 반짝이고 있다. 짧은 시 안에는 계절의 변화와 함께 참으로 많은 역사가 담겨있다. 갑자기 강하게 활로 가야금을 긋는 행위와 거친 소리에 놀라고 의미를 묻는 청중.까칠했던 기억, 잊고 싶던 기억이 되살아나며 그 격정은 화해라는 강물에 다시금 흘러내리는 큰 맥락으로 이해되기를 바란다.

 

-'녹차에 하얀 매화' 라는 곡에서 딸 승주에게 불러 주었던 자장가를 삽입했다. 이 곡의 탄생 배경을 자세히 들려 달라.

녹차에 하얀 매화는 하운청시인의 시를 음악으로 만든 것이다. 시의 내용은 자식 키우는 일이 하도 어려워 스님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니, 이 스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녹차에 하얀 매화를 띄워 권하시고는 아궁이에 군불 지펴 놓고 이부자리 잘 깔아놓았으니 그저 하루 편히 쉬고 내려가라고 말씀하신다는 내용이다.

남편과 떨어져 두 아이를 데리고 독일 유학하던 시절 마음은 늘 조마조마하였다. 그 시를 읽은 감명을 아코디언에 담은 것이다. 악기가 낼 수 있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소리부터 제일 큰소리까지, 난해하게 풀어놓은 음들은 복잡한 나의 심경을. 그리고 이 안에 삽입된 자장가는 절대평화, 절대 안식을 의미한다. 노래와 함께 자장가를 부르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의 휴식이었다.

 

-곡 전반에 다양한 악기들이 등장한다. 특히 국악기는 배운 적이 있는지? 아코디언의 등장도 이색적이다.

가야금을 쉽게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바이올린을 오래 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오래전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이번 곡은 가야금 이지영님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여러 가지 소리에 대한 탐구와 개발 말이다.

나는 새로운 악기에 대한 호기심이 눈을 뜨면 일단 그 악기를 알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아코디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최근의 기악곡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다. 한국에 전문 연주자가 없어서 그 때마다 독일서 연주자를 모셔온다. 이번 공연에서 연주를 한 Felix Kroll(펠릭스 크롤)은 그동안 두 번이나 내한 하였던 Margit Kern (마깃 케른)의 제자이다.

나의 최근 작품을 이해하는데 아코디언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악기이다. 작년 2008 서울 스프링 페스티발의 개막식 위촉 작품으로 현악5중주와 피아노와 아코디언을 위한 7중주 ‘젊은 그들’ 에도 아코디언이 쓰였다. 한국에도 아코디언에 흥미를 보이는 연주자가 절대 시급하다. 기회가 되는 대로 아코디언 캠프를 열고 싶다.

 

-이번 연주회도 그렇지만 '대사의 일기장'이라든지 시를 가지고 곡을 쓴 것이 많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2007년 작고하신 나의 시아버지, 고 민목 유양수님께서는 외교관이셨다. 16년간의 대사생활을 하신 기록을 ‘대사의 일기장’이라는 책에 담으셨다. 아버님께서 투병하실 적에 나는 독일에서 박사논문을 막바지 수정하는 작업 때문에도 그렇겠지만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학기 중이라 며느리로써 해야 할 마땅한 병간호를 하지 못했다. 그것이 나에게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아버님을 추모하며 ‘대사의 일기장’ 이라는 합창 모음곡을 만들게 된 것이다. 가사는 당시 주독대사시던 이수혁님의 시를 바탕으로 하였다.

이수혁 대사님의 꾸미지 않은 시어, 어떤 것들은 너무 꾸며놓아 어색하기도 한 것 같은 시어들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 모음곡을 지난해 내 작곡발표회 ‘그리운 만남’에서 선보였다. 이수혁 대사님의 시를 기초한 시리즈는 모두 12곡으로 이번 음악회에 발표되었던 곡 ‘이제 당신은 연인’도 그 중 하나이다. 나는 이 곡을 전 독일대통령이신 바이체커님께 헌정했는데 그의 아버지도 직업 외교관이셨다. 그들이 기본적으로 밑바탕에 깔고 있는 정서가 아마도 그리움이 아닌가 한다. 그 정서가 남편과 떨어져 유학중이던 나의 정서와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이제 이 곡은 아버님을 향한 그리움을 달래준다.

-42세에 또다시 유학길에 오르는 쉽지 않은 결정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자신의 작곡에의 열정은 어디로 부터 온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아마 대화, 소통하고 싶은 마음 아닌가 한다. 음악이라는 언어와 소통한다는 것은 그 언어의 추상성 때문에 직접적인 소통이 어렵다. 늘 쓰지 않던 다른 부위의 뇌를 갑자기 열어 가동시키는 듯한 생경한 느낌은 현대음악이 가지고 있는 묘미이다. 대중과 교감하고 싶다고 그 언어의 특성을 없애면서까지 다가간다는 것은 그래서 위험한 일이다.

‘저렇게까지 큰소리가 필요한가?’, ‘저렇게까지 불협화가 끊임없이 나와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들은 음악의 기본적인 특성인 긴장과 이완으로 설명할 수 있다. 큰소리, 불협화라는 긴장, 더 큰 긴장과 이것들의 적절한 이완이라는 자연적인 웨이브에 몸이 익숙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작품의 내용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일단계적인 거부감을 지나, 호기심과 의문의 단계를 다시 지나, 작곡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관심의 단계를 지나고, 또다시 그 음악을 듣게 된다면 이제는 그 소리가 익숙하게 들리고, ‘아하, 이것이 이 작곡가만의 언어이구나’ 하면서 처음에는 난해하게 들렸던 언어들이 차츰 친숙하게 다가온다. 현대음악과 친해지는 몇 단계를 거치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시간이요, 인내심이다.

 

- 전업 작곡가가 되기로 한 이유는 뭔가?

표현의 욕구다. 그것은 절대적인 혼자의 시간을 요구한다. 황동규시인의 신조어 ‘홀로움’과도 통한다. 나는 절대시간 혼자 있다. 음식에서 산성과 알칼리의 밸런스를 맞추어야 할 뿐 아니라 체질적으로 인풋과 아웃풋의 밸런스를 맞추어야만 하는 편하다고 느낀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나의 시간을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 아이들 육아와 강의, 작곡 모든 것을 함께 할 당시의 이야기이다. 작곡도 하고, 강의도 하고, 아이도 키울 수 있었다면 아마 그것을 다 했겠지만 나에게는 불가능했다. 몸은 늘 탈진상태로 헉헉대었고, 시간강사월급으로 아이들을 맡길 도우미를 쓸 형편도 아니었다. 작곡할 생각도 못했다.

최근 작품목록을 보면 그것이 확연하다. 전업 작곡가를 선언한 2000년 이후에 작품의 개수가 월등히 많아졌다. 그러나 말이 전업 작곡가지 단어가 주는 의미상 모순은 작곡이 단 한 푼의 돈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작곡발표회를 하면 할수록 가계부채가 늘어날 뿐이다.(웃음)

 

-소위 '현대음악의 지존'이라고 불리우시는 데 현대음악은 아직도 일반 대중에게 어필하기는 힘든 것 같다. 관객과 소통하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관객과의 소통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작년 발표회 ‘그리운 만남 이후’이다.이번 무대에 관객과 소통하는 역할은 배우이자 방송인인 강석우님의 출연이다. 첫째 둘째 곡의 무거움을 털어버리고 긴 한숨을 쉴 수 있는 자리를 부러 마련한 것이다.

나의 관객과의 소통방식은 다양하다. 무용 안무를 곁들이는 것도 관객입장에서 곡의 난해함을 조금 덜 수 있는 매체이고. 이번 연주되었던 작품 중 녹차에 하얀 매화처럼 쉬운 노래의 인용도 하나의 예이다.

현재 준비 중인 7월5일 합창단 음악이 있는 마을의 정기공연에는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다양한 해법이 제시될 것이다. 현대음악의 미래에 대한 중요한 이정표가 되리라는 것을 확신한다.그 모든 방법적인 디테일을 떠나서 나는 계속 무대를 만들고 계속 음악회를 연다. 그것이 바로 ‘소통’이기 때문이다.

서울문화투데이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