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열전 - 27] 김동원
[배우 열전 - 27] 김동원
  • 김은균 공연전문기자
  • 승인 2011.10.0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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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배우열전 4- 김동원>

선생님 여전히 건강해 보이십니다. 특별한 건강 비법이 있다면 궁금합니다.
  전에는 아침에 용산 가족공원을 꼭 산보를 했는데 이쪽으로 이사 오고 나서는 오후 느지막이 인근 초등학교까지 가서 산보를 해. 열심히 걷다 보면 대략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되지. 그 밖에는 특별한 방법은 없는 듯해.  간혹 취미가 있다면 화초 가꾸기 정도랄까. 정말이지 하루 종일 화초를 가꾸고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세상 근심이 다 사라지고 땅속이나 돌 틈을 비집고 솟아오르는 새싹을 보고 나면 나도 모르게 기운이 생기면서 삶의 의욕이 살아난단 말이야. 인간과 식물이 서로 따뜻하게 교류하고 대화하면서 새삼스레 하나님의 크고 무한하신 섭리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지.

▲1952년 부산에서 초연된 '처용의 노래' 에서 열연 중인 김동원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배우로서도 성공을 하셨지만 가정적으로도 누구 못지  않은 모범적인 가정을 일구셨는데요.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 데 어떻게 그러하셨는지요?
 그때까지 배우는 사회적으로 그리 높은 점수를 받은 편은 아니었어. 왜인고 곰곰 생각해 보았더니 예전부터 천시해 온 분위기도 무시 못했지만 배우들 스스로도 공부도 안 하고 조금 얼굴이 알려졌다고 하면 사생활에 바르지 못했다거나 축첩을 한다거나 했었어. 그래 일본으로 유학을 결심한 것도 한국에 적당한 과도 없었거니와 반드시 공부를 해서 연극인으로 성공할 것과 초지일관 내 뜻을 이루자는 결심을 단호히 했었지.
  아이들을 기르는 데도 가정교육이라는 것이 학교 교육 과정처럼 무슨 교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가정생활에 충실하려고 했고,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로 좋은 면을 보여주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을 했지.
  자랑 같지만 아내도 가정주부로서도 100점짜리라고 생각해. 아무리 직업적인 것이라도 예쁜 여배우들과 많이 접촉하는 배우의 부인으로서는 결코 마음이 편할 수는 없는 법이지만, 아내는 내가 배우 생활을 하는 동안 질투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이해심 많은 사람이자 연기의 비평가로서도 늘 내 곁에 있어 주었지 그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한 일인지.
  그리고 아이들도 모두 다 잘 자라 주어 첫째 장남인 덕환이는 서울대학 정치학과를 나와 쌍용 사장으로 재직하였고, 둘째 진환은 건축을 공부하여 대우 이사로 재직하고, 그리고 막내 세환이는 가수로서도 자기의 길을 가고 있지. 셋째는 고등학교 때 생일선물로 기타를 사달라고 해서 사주었더니 순전히 독학으로 가수가 되었어. 혹은 사람들이 내가 밀어주지 않았나 하는데 배우와 가수의 길은 분명 달라 나로서는 손을 쓸 수도 없었지. 전에는 내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김동원 간다.”라며 수군댔는데 세환이가 유명해지고 나니까 “김세환 아버지 간다.”로 바뀌더군.

햄릿을 맡으셨을 때 연기적인 부분은 어떻게 끌고 가셨는지요?
  내가 햄릿을 처음 본 건 동경 유학 시절 신축지 극장에서 일본 최고의 연기자로 꼽히던 센다(千田是也)와 야마모토(山本安英)가 각각 햄릿과 오필리어로 나오던 작품이었는데, 그 때 아직 아마추어인 나에게 비친 센다의 연기는 너무 학술적인 자기도취에 빠져 회의하는 인간상 표현에만 급급하다 보니 내면의 깊이가 결여되고 표현 자체에도 확실치 못한 아쉬움이 들더라구.
  그래서 내가 햄릿을 맡았을 때 이때의 생각도 나고 해서 연출과 합의하기를 ‘고뇌하는 햄릿’이 아니라 ‘행동하는 햄릿’으로 가자고 했었지. 아마 대사나 행동 하나하나에 악센트를 둠으로써 더 강렬한 연기가 나오지 않았나 해.
  나중에 영화로 나온 것을 보니까 로렌스 올리비에도 내 쪽에 더 가깝더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