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아티스트 이진준, 미디어의 '따스함'과 '환상' 담아내고파
미디어 아티스트 이진준, 미디어의 '따스함'과 '환상' 담아내고파
  • 윤다함 기자
  • 승인 2011.10.1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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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정원’展 10월 26일(수)까지 갤러리정미소, 독특한 미적체험 가능케 해

     2004년 코리아나 미술관 설치작업 및 대안 공간 풀에서의 단체전 ‘일탈’을 시작으로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국립현대미술관, 2010), ‘인터뷰: Interview & Artists as an Interview’(아르코미술관, 2011)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들의 기획전에 참가하고,  터키 이스탄불 디지털 영화제(REFEST 2008), 전주 국제 영화제(JIFF 2009) 등에 초청돼 작품을 상영하기도 한 다양한 이력의 작가. 더 흥미로운 것은 그는 원래 경영학도였다는 사실이다.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서울대학교 조소과에 편입해 학사 및 석사과정 졸업 후 뒤늦은 예술계 입문이 무색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는 그는 바로 작가 이진준이다.
     첫 개인전 ‘ART Theatre’(아르코미술관, 2007)와 두 번째 개인전 ‘YOUR STAGE’(선컨템포러리, 2009)에 이어 ‘ARTIFICIAL GARDEN(인공정원)’이라는 제목으로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이 갤러리 정미소에서 10월 26일(수)까지 열린다.
     전시 공간 전면에 LED를 이용한 빛 체험공간을 설치하고 전시장안의 기계음과 온도, 습도까지 소홀히 하지 않은 작가는 관객이 인체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 전시를 감상하도록 하고 있다.

▲이진준作 <Artificial Garden> (Site generating installation, LED, Air conditioner, Fan sound, Temperature(18-20 degrees), Grass, Soil, Spot light, Poly cabonate, 2011)

“좋은 작가란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쪽 면에만 문고리가 두 개 달려있는 문을 통해 작가는 ‘소통’을 화두로 내세웠다.
 “바깥쪽과 안쪽에서 서로가 같이 열어야만 열리는 마음의 문이랄까요. 한쪽이라도 잠그면 열리지 않죠.”
 작가는 문을 바라보노라면 자신이 문안에 있는 건지 아니면 문밖에 있는 건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고 했다.
 “이건 ‘내가 사회를 격리시키는 건지 아니면 내가 사회에 격리 당하는 건지’란 자문이기도 하죠. 동물원에 가더라도 내가 동물을 보는 건지 동물이 날 구경하는 건지...(웃음) 전 거기에 의문을 제시하는 거예요. 좋은 작가란 좋은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이진준 작가

 작가는 경영대와 미대를 다니며 좌뇌와 우뇌를 모두 사용하며 생활한 습관으로 자연스레 어떤 일을 바라볼 때면 상호적으로 관망한다고 했다.
 “절대적인 개체란 없어요. 모두 상대적이죠. 무엇을 나눈다는 것, 안과 밖, 벽과 문, 이런 것들이 실은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눠지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느 것 하나를 규제한다든지, 한쪽입장에서만 말한다든지 하는 게 저에겐 불편하게 느껴져요. 저는 늘 종합적이고 상대적으로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려고 합니다.”

▲이진준作 <S-HE> (200 Globe balls, Dimmer, Cable tie, 2011)

차가운 기계, 미디어의 ‘따스함’과 ‘환상

 이번 개인전의 800개의 LED를 이용한 ‘인공정원’이나 200개의 백열등으로 제작된 ‘S-He’를 비롯해 작가는 미디어작품 고유의 ‘따스함’과 ‘환상’을 담고자 노력해왔다.
 “사람이란 섬처럼 혼자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아요. 스포트라이트가 각각 개인을 비추고 있는 것이죠. 저는 이걸 긍정적 의미에서 개인의 환상, ‘환영’이라고 표현합니다. ‘환영’이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지만 한국사회는 개인의 그것을 집단의 시선을 통해 중립과 객관이란 이름으로 바라보고 다시 정의 내려버리잖아요. 미디어작품 또한 제3의 시선 즉, 디렉터의 관점에서 제공되고 있으면서도 객관인 마냥 가장되곤 합니다. 그럼에도 ‘차가운 소재’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미디어의 ‘따스함’ 그리고 ‘환상’이에요.”

▲이진준作 <Here and There> (Variable installation, Beam projection mapping on the white door, 2 door handles, Grass, Single Channel Video, 00:02:30, 2011)

 미디어란 굉장히 물질적인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라고 작가는 말한다. 미디어가 담고 있는 내용물은 오히려 비물질적이라는 것. 그가 미디어에 탐닉하게 된 이유도 미디어의 이런 속성 때문이라고 한다.
 “미디어를 ‘고스트’라 느낄 때가 있었어요. 실체 없는 비물질이라 그랬을까요. 하지만 ‘고스트’만의 매력이 있잖아요. 드라큘라에 왠지 끌리는 그런 거 아시죠? 삶과 죽음 사이에서의 그 오묘한 매력말예요. 그 매력에 빠졌고 소외를 느끼지 않으면서도 ‘고스트’가 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땅에 발을 단단히 붙일 수 있는 가에 대한 고민 끝에 제가 얻은 답은 ‘따스함’이었어요.”

▲이진준作 <Artificial Garden> (Site generating installation, LED, Air conditioner, Fan sound, Temperature(18-20 degrees), Grass, Soil, Spot light, Poly cabonate, 2011)

나는 ‘번역자’다

 작가는 사람이 만든 모든 것, 인공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해 지는 노을에서 자연의 경외감을 느끼며 산길을 내려오며 마을의 불빛을 보는 순간, 그때의 안도감은 태양을 봤을 때의 감동하고는 다릅니다. 저는 관객들에게 마을의 빛 하나하나의 사연에서 오는 따스한 안도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이렇듯 그는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하고 언제나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작가는 원하는 것을 언제든지 취할 수 있는 도시를 좋아한다.
 “2011년의 서울이라는 도시에서는 미디어가 가장 자연스러운 예술입니다. 전 언제나 관계와 관계 속에 존재하고 싶어 하죠. 도시란 늘 소통의 장치들이 산재해있습니다.”
 관계 속에서 ‘고스트’가 되지 않고 물질적으로 건강하게 단단하게 존재하기 위한 대안으로 ‘따스함’과 ‘환영’을 택한 작가는 도시 안에서 미디어작품을 통해 중립을 지키며 ‘번역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진준作 <Where I am_05:28_One day, when they leaved> (A picture record of performnace in mountain, 200 lighting sticks, 2011)

 그는 최근 상암동 DMC에 미디어공공조각 ‘They'(2010)를 영구 설치하는 등 도시공공예술에 관심이 많다. 보통 공공성이라 하면 단순히 대중과 같은 것으로 다뤄버린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는 공공성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을 제외한 그 외의 것을 뜻한다.
 “제가 말하고 싶은 공공성은 아까 말했던 개인의 환영과 같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을 제외한 그 외의 것입니다. 한 개인이 작품을 소장하게 되면, 그 개인이 작품을 어디에 놓느냐에 의해 작품이 변질돼버리는 문제가 발생해요. 거실 벽에 걸어두는 것과 공공장소에 설치돼있는 것은 아주 다르다는 겁니다. 작품자체가 변하는 거죠. 저는 작품이 동시대에 어떤 맥락에서, 어떤 장소에 있어야하냐가 중요해요.”

 작가는 전시 중 퍼포먼스를 행하며 즉석에서 ‘관객참여’와 같은 시도를 하는 등 늘 관객과의 소통에 노력하고 있지만 모든 것이 완벽해야만 온전하다 생각하는 그에겐 진정한 소통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무심코 서로 소통했다고 믿어버리곤 합니다. 예를 들면 두 연인이 바닷가에서 사랑을 속삭이며 서로 같은 달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두 사람은 각각 다른 달을 본 거에요. 또 지난 전시의 연극에서 저는 기록을 위해 카메라로 촬영하며 뷰파인더 안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관객들이 연극을 향해 앉아 있는 모습도 제각각인 걸 발견했어요. 그때의 관객들 역시 서로 같은 연극을 본 게 아니라는 거죠. 이런 의미에서 소통은 불가능에 가까운 겁니다.”

4계를 주제로 한 4번의 퍼포먼스

 다양한 재료가 어우러져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비빔밥’은 총체적 예술을 추구하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이번 ‘인공정원’ 전시도 ‘총체극’으로서 작가의 세심한 의도가 드러나 있다. 관객은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온도, 소리, 빛, 촉감 등을 통해 감각의 총체를 경험 할 수 있다.
 “심지어 큐레이터 사무실 방 조명까지 관여했어요. 사무실에서 세어 나오는 형광등불빛을 통제하기 위해 사무실 앞에 2008년 작품인 <Red Door>를 설치했죠. 하지만 관객은 그걸 인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좋은 기술일수록 기술이 드러나지 않기 마련이잖아요.(웃음) 저는 관객이 그저 전시장을 거닐며 임펙트만 느껴줬으면 합니다.”

 그의 전시 행적을 살펴볼 때, 그는 미디어의 공연적인 요소를 감각적으로 극대화시키기 위해 미디어설치와 퍼포먼스를 함께 연출해왔다. 작가에게 공간 연출력은 작품의 완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인 것이다. 이번 ‘인공정원’ 전시기간 중에도 오프닝을 포함해 4번의 퍼포먼스가 동시에 진행된다. “이번 퍼포먼스는 사계절을 주제로 했어요. 각 계절의 이미지를 살렸죠. 저는 고정적인 것을 싫어해요. 사람도 일분전과 일분후가 다르듯이 작품도 변화해야합니다. 제 작품은 한번 보면 끝나지 않고 계속 보는 재미가 있죠.”

▲작가 이진준의 세번째 개인전 'ARTIFICIAL GARDEN(인공정원)'은 10월 26일(수)까지 갤러리 정미소에서  열린다

 그가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무서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날 이후로 그는 피아노 레슨도 끊어야 했다. 그 시대의 평범한 부모님이 생각하듯 공부 잘하는 자식이 예술가의 길을 간다는 것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부모에게서 사라지는 자식’이 되는 셈이다. 그는 미대 졸업 후 미래가 보장된 공중파 시사교양국 PD로 입사하지만 결국 1년도 안 돼 그만두고 미디어 아티스트가 되기로 결심한다. 당시 부모님의 반응은 자식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제가 예술을 한다는 것은 부모님께는 당신들의 시야로부터 사라진다는 걸 뜻했어요.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사라지는 거였죠. 부모님의 걱정과 낯설음만큼 엄청 반대하셨죠. 그러던 부모님께서 이번 전시에 처음으로 와주셨어요. 아버지께서 전시를 보고 나가시다가 전시장으로 다시 올라가시더라고요. 나중에 보니 방명록에 ‘추억이 남는 구나’라고 남겨주셨어요.” 기자에게 방명록을 보여주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 작가는 지난날을 회고하는 듯 했다.  

 작가의 아버지는 목욕탕을 운영했다. 그는 동네에서 ‘목욕탕 집 아들’로 불리며 성장했다. 햇빛이 목욕탕의 물에 반사되는 걸 보며 생명의 근원을 느꼈다는 작가는 이렇듯 어릴 적부터 알게 모르게 빛과 공공에 대한 관심을 가져온 것이다. 

 작가는 인터뷰 내내 계속 연필로 뭔가를 그려내고 있었다.
 “미술에 특별한 재능은 없었지만 드로잉은 어렸을 때부터 계속 해왔어요. 습관이에요. 경영대 다닐 때도 책에다가 뭔가를 늘상 그리곤 했으니까요.(웃음) 경영대 졸업 후 조각을 알게 됐는데 작업복 입고, 지저분한 모습으로 조각하는 그 모습이 너무 와 닿는 거예요. 경영학 공부하며 하루 종일 연산다루고, 머릿속엔 이론만 가득한 상태에서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어떤 결핍이 해소되는 걸 느꼈어요. 하지만 조각을 하다 보니 돌을 깎아야 한다는 게 불편하게 다가오더라고요. 돌은 이미 수억 년 전부터 존재하던 것으로 저에겐 지구 그 자체였어요. 돌이 제겐 너무 크게 느껴진 거죠. 그래서 저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다큐멘터리 영상을 찍어왔던 익숙함으로 미디어라는 매체를 다시 탐구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항상 영감으로 가득 차있지만 최근에 작가로서 작업에 열중할 시간이 없어 아쉽다고 했다.
“작업하기위해 돈을 벌어야 되는 건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제가 돈 버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할애하고 있더라고요. 주변에서도 제 나이가 예술가로서 가장 힘든 시기라고들 하죠.”

▲이진준 작가

“올림픽에서 미디어퍼포먼스 하고 싶어”

 대학교 시절 우연히 듣게 된 종묘제례악은 그에게 숙명을 안겨줬다. 올림픽에서 종묘제례악을 이용한 미디어퍼포먼스를 하는 것이 바로 그의 일생일대 꿈이다.
 “올림픽에서 종묘제례악으로 미디어총체극을 하고 싶어요. 벌써 머릿속엔 이미 작품이 완성돼 그래픽부터 연출까지 설계도가 쫙 잡혀있는 걸요. 왕의 위엄과 웅장한 사운드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죠. 저는 현대기술로 그 때의 감성과 정신을 그대로 담아 올림픽을 무대로 세계에 보여주고 싶습니다.”

 차가운 기계, 미디어를 다루면서 그 곳에서 따뜻함을 끌어내는 작가 이진준. 컴퓨터가 개발되고 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우리는 기계에 둘러싸여 결국 인간성이 말살된 세상에 살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는 어떤가, 그 기계들을 통해 전혀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뜻을 같이 하며 여러 일을 도모하기도, 의와 정을 나누기도 하는 시대가 됐다. 미디어아트 또한 그렇다. 작가 이진준은 차가운 기계 속에서 따뜻한 인간애를 끌어내는 정반합을 만들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