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나무
[시] 나무
  • 섬진강 1 김용택(시인)
  • 승인 2011.10.2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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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투데이 詩세계 / 시인이 읽어주는 아름다운 우리 시

나무-시인 박목월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일까. 묵중하게 서 있었다.
다음 날은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구에 그들은 떼를 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과객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공주에서 온양으로 우회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 문을 지키는 파수병일까. 외로워 보였다.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아 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늙은 나무가 곧 시인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마침내 시인 자신이 되었기 때문에 이 시가 탁월한 시로 거듭나고 있다. 날이 갈수록 더욱 춥고, 외롭고, 고독해지는, 늙어가는 시인 자신이 곧 그 늙은 나무라는 것이다. 시란 이런 것이다. -이소리(시인, 본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