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서울시민 하종오 vs 평양시민 하종오
[서평]서울시민 하종오 vs 평양시민 하종오
  • 이소리(시인, 본지 논설위원)
  • 승인 2011.10.2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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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하종오 새 시집 <남북상징어사전> 펴내

 “분단 이후 생각이 다른 여러 사람들이 주창한 여러 통일론도, 그에 대한 다양한 견해도 나의 시각 밖으로 밀어내놓고 분단 현실을 직간접으로 관련된 남북 주민과 세계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서 사실주의적 상상력으로 시를 쓰려고 했다. 2010년대 초의 분단 상황과 전 지구를 뒤덮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남한 국민과 북한 인민이 어떤 모습으로 살며, 그런 삶을 제각가가 어떻게 넘어가는지, 세계 시민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어디쯤에 놓여 있는지, 그 모든 점이 평화와 통일을 어떻게 실현하게 할는지도 주요한 시적 관심사였다.”

 

 -‘시인의 말’ 몇 토막
지난 2월 허리춤께 <제국(諸國 또는 帝國)>을 펴낸 시인 하종오(57)가 8개월 만에 펴낸 새 시집 <남북상징어사전>(실천문학사). 이 시집은 제목이 된 ‘남북상징어사전’이란 글에서 그 속내가 드러나듯이 분단과 자본으로 얼룩진 남북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자본드림’을 찾아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도는 모든 사람들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집은 제1부 ‘하종오 씨의 순례’, 제2부 ‘옥수수밭’, 제3부 ‘시민과 시인’, 제4부 ‘트레킹’, 제5부 ‘첫술’ 등 모두 5부에 62편이 자본이란 바위덩이에 눌려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동갑내기 하종오 씨들’ ‘전쟁고아 하종오 씨의 자문(自問)’ ‘몰이꾼’ ‘보따리상’ ‘어느 월북 시인을 생각함’ ‘문예 공무원’ ‘세계지도와 지구의’ ‘한국산(韓國産)’ ‘남한 내비게이션’ ‘비 오는 날의 라면’ 등이 그 시편들.

 “내가 아는 건 하종오 씨들도 나를 모른다는 것”
하종오 씨는 남한에도 북한에도 살고 있을 것이다
남한 거주자 하종오 씨와 북한 거주자 하종오 씨가
무엇이 다르고 어디가 같은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종오 씨’ 몇 토막

 시인 하종오는 스스로를 남북에서 살아가는 주민이자 탈북자,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지구촌 곳곳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온 이주민에 빗댄다. 시인은 서울 시민 하종오와 평양 시민 하종오를 통해 우리가 걸어온 아픈 역사를 비추기도 하고, 지금 이상하게 살아가는 남북 주민들어지러운 삶을 속속들이 들춘다.

 남한 토박이 하종오는 “회사에 정규직으로 다니고 / 자식을 키우고 / 물려줄 유산”이라도 있다. 북한 탈북자 하종오는 “실직자로 구인 광고지를 뒤적이고 / 가족을 버려두고 왔고 / 상속할 재산”이 하나도 없다. 이들은 한때 “동명이인인 걸 알고 반가워했으나 / 서로 신분이 다르다는 걸 알고는 / 멋쩍어하며” 돌아선, 참으로 안타까운 사이다.

 시인 하종오는 시인 이름을 딴 16편에 이르는 시들을 통해 남과 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물질 앞에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서글픈 이주민 삶을 쇠꼬챙이처럼 날카롭게 들쑤신다. ‘두 하종오 씨의 순례’ ‘이산가족 하종오 씨의 인상 깊은 이야기’ ‘광고기획자 하종오 씨의 구상’ ‘이상한 나라의 주민 하종오 씨’ ‘하종오 씨도 덕 보거나 피 본다’ 등이 그러하다.

 국경 인종 뛰어넘은 시인 하종오가 말하는 ‘만인보’
북한에서 탈출한 최귀림 씨와
베트남에서 시집 온 메이 씨와
필리핀에서 취업 온 글로리아 씨와
연변에서 친척 방문했다 주저앉은 김화자 씨가
지방 소도시에서 만난 지 일 년이 지났다
-‘여인 천하’ 몇 토막

 시인 하종오가 바라보는 세상은 국경도 없고 인종도 없다. “북한에서 탈출한 최귀림 씨와 / 베트남에서 시집 온 메이 씨와 / 필리핀에서 취업 온 글로리아 씨와 / 연변에서 친척 방문했다 주저앉은 김화자 씨”가 그들이다. 이 네 여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코리안드림’을 꿈꾸는 팔자 좋은 여자로 보이지만 사실 그 속내는 ‘팔자 사나운 여자들’일 수밖에 없다.

 네 여자가 일하는 공장은 “말이 공장이지, 네 여자가 전 직원인 봉재공장”이다. 여기에 “야근도 같이하는 여주인도 빚 때문에 / 앞날이 보이지 않기는 피차 마찬가지” 인생이다. 경기 또한 이제는 남한과 북한 관계뿐만 아니라 지구촌 경기와 맞물려 돌아간다. 봉제공장 여주인이 월급을 제때 주지 못하는 것도 제 잘못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남한은 북한과 가까워지려고 / 풀숲을 밀어 도로를 닦고 / 산기슭을 깎아 공장을 짓는다 / 북한 인민들에게 일자리를 주면 / 도로를 더 닦을 수 있고 / 공장을 더 지을 수 있다”(한국산-상상도)처럼 시인은 일제강점기 때 착취와 수탈로 얼룩졌던 우리나라가 지금은 제국주의가 저지르는 착취와 수탈을 이어받는 작은 제국 비슷한 국가가 되어가는 것도 날카롭게 꼬집는다.

 하종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남북을 상징하는, 물질이 낳은 양극화를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곱씹는다. 시인 고은이 쓴 ‘만인보’가 아니라 시인 하종오가 쓴 ‘만인보’처럼. “남한에서 살아온 국민과 북한에서 살아온 인민은 / 말투와 생김새가 비슷한데 / 여기가 이상한 나라로 진화했는지 / 거기가 이상한 나라로 퇴화했는지”(이상한 나라의 주민 하종오 씨)라거나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하여 말이 다른 타국으로 / 탈출한다는 건”(한 끼쯤), “모든 대륙이 중심이 될 수 있고 / 그 가장자리에 각 나라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세계지도와 지구의) 등이 그러하다.

 남한에서 살고 있는 시인 하종오가 바라보는 북한 인민 하종오
“지방 소도시 임대 아파트 단지 공원 정자에 / 북한에서 탈출한 여인들이 모여 앉아 웅얼거리면 / 베트남에서 시집온 여인들이 모여 앉아 재잘거리면 / 서로 못 본 척했다 // 북한 출신 여인들은 겨울이면 바람 속에서 / 베트남 출신 여인들은 여름이면 햇볕 아래서 / 은근히 고향 집을 그리워한다는 걸 /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춘하추동’ 몇 토막

 시인 하종오가 펴낸 새 시집 <남북상징어사전>은 남한에서 살고 있는 시인 하종오가 바라보는 북한 인민이자 탈북자 하종오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스스로를 ‘가질 수도, 가지지 않을 수도’ 없는 얄궂은 ‘물질드림’을 꿈꾸는 북한 인민과 남한 주민에 빗댄다. 그 ‘빗댐’ 속에서 날이 갈수록 더 큰 물질에 헉헉대는 지구촌, 그 속내를 탈곡기로 벼를 털듯이 샅샅이 훑는다.

 河詩(하시)라는 호를 갖고 있는 시인 하종오는 1954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1975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사월에서 오월로> <넋이야 넋이로다> <분단동이 아비들하고 통일동이 아들들하고> <꽃들은 우리를 봐서 핀다> <사물의 운명> <님 시편> <님> <님 시집> <지옥처럼 낯선> <국경 없는 공장>이 있다. 제2회 신동엽 창작상(1983), 제1회 불교문예작품상(2006)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