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전시 리뷰]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 박희진 객원기자
  • 승인 2011.10.2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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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된 전시, 기획이 관건

 그간 한국미술 전시는 유명작가 이름에 기댄 블록버스터 전시에 묻혀 소극적인 기획으로 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90년대 말부터 무섭게 밀려들어오던 명화를 활용한 블록버스터 전시들은 그 속사정이 어찌됐건 인산인해(人山人海) 봇물이 터져 국내 전시장 곳곳을 떠들썩하게 했다. 경제사정이 어려운 국내미술계는 대형전시는 물론, 기획전시를 시도하는 것조차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국가재정 아래서 국립미술관에서 근현대와 한국미술 100년에 역사를 돌아보는 기획전시로 간신히 체면치레 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도 ‘제대로 된’ 대형전시를 선보일 때가 됐다. 본래 블록버스터란 할리우드 대작을 일컫는 용어로 막대한 제작비와 스타배우를 내세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사용한 마케팅 용어이다. 전시에 있어 블록버스터는 무엇일까. 막대한 운송비와 보험료를 감수하며 세계각지의 작품들로 기획한 것이 블록버스터 전시이다. 블록버스터 전시는 단순히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과장된 결과물은 아니다. 문화를 환원하는 확장판이기도 하고, 국가간 문화교류 일부로 긍정적인 평가가 따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기획력의 축이다.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관람코드가 맞지 않는 전시는 “이 작품 왜 여기있는지 모르겠다”는 헛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한국미술이 갖고 있는 역사만큼 또렷한 정체성과 독창성을 잘 살려낼 수 있는 흥미로운 전시가 기획될 필요가 있다. 

 지난 9월 국립중앙박물관이 준비한 ‘초상화의 비밀’ 기획전시가 문을 열었다. 모처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제대로’ 기획한 대형전시가 아닌가 싶다. 이 전시가 ‘제대로’ 기획됐다 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덧붙는다. 첫째는, 외부 기획력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점. 우수한 기획력의 원천이 우리에게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가장 한국적인- 전통회화의 뿌리를 찾기에 제격인 ‘초상화’가 주제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을 발산한다. 셋째는 흥미로운 비교거리가 풍성하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초상화만을 대상으로 기획됐다면 식상할 수 있다. 국내외 비교가치가 충분한 대작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를 더한다. 넷째는 전시를 개최한 시기와 장소가 탁월하다는 점이다. ‘초상화의 비밀’ 전시와 더불어 전통회화를 기획한 타미술관 전시가 유익한 교육으로 연결될 수 있다. ‘초상화’를 통해 전통회화의 배경을 알고 조선시대 명화 전반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초상화는 사진이 없던 시절 조상을 대신하는 역할을 했다. 삼국을 거쳐 고려시대까지 그려왔고 그러다 유교가 국가 이념이 된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왕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을 통해 그 발전정도를 짐작할 수 있고 대부분 ‘충효’를 기본으로 제사를 중시여겨 사당이나 서원, 사직단 등에 위패와 함께 모셔졌다. 유교의 도덕사상에서 기본이 되는 3가지 강령과 5가지의 인륜이 일상에 스며있던 조선의 사회풍토가 기반이 돼 초상화에 담긴 것이다.

 본래 조선의 초상화는 전신사조(傳神寫照) 정신을 담고 있다. 전신사조란, 인물의 형상재현 이상에 정신까지 담아내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외면적으로 똑같게 그리는 것은 물론 내면도 그릴 수 있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전신사조적 의미를 담고 있는 조선의 초상화는 우리나라 전통회화에서 가장 근원이 되는 것이요 조상의 정신을 이어나가는 예술행위의 목적과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조선시대 초상화가 예술적으로 월등하다 느끼는 것은 전시현장에서 서양과 중국, 일본의 작품들과 생생하게 비교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선의 왕들 초상화만으로 전시실을 채웠다면 박물관전시에 틀을 벗어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국내외 대작의 비교와 화면 속 인물들의 다양함이 전시를 쉽게 구분해 구성할 수 있게 했고, 관람객으로 하여금 흥미로운 요소이자 기획에 완성도를 높일 수 있게 했다.

 조선시대 회화 바람이 불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초상화의 비밀’ 기획전시를 시작으로- 간송미술관에서는 ‘풍속인물화대전’이 열리고, 삼성미술관 리움에서는 ‘조선화원대전’을 선보인다. 흔하지 않은 기회이다. 한국미술 전시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고미술을 대상으로 한 대형전시에 걸맞는 ‘제대로 된’ 기획이 첫 발을 내딛는 의미있는 무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