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의 가을, 이곳을 놓치지 마세요
종로의 가을, 이곳을 놓치지 마세요
  • 홍경찬 기자
  • 승인 2011.10.27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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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테마별 가을 명소 도심 속에서 가을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는 곳

 경복궁 돌담길‘효자로’
  경복궁역 4번 출구로 나와 호젓한 효자로를 따라 청운공원으로 가는 길은 도로 양쪽으로 은행나무와 경복궁 영추문 돌담길, 그리고 갤러리와 까페가 줄지어 있어 낭만이 가득하다. 특히 가을이면 낙엽이 쌓여 걸을 때 아삭아삭 소리를 낸다. 주변에는 대림미술관, 보안여관 등 볼거리와 이야기 거리가 많아 지루할 틈이 없고, 박정희 대통령의 일화가 남아 있는 무궁화동산, 대고각, 육상궁, 최규식 경무관 동산, 창의문 등 무수히 많은 유적이 있다.

▲ 순라길
 종묘를 둘러싼 돌담길‘순라길’

 종묘 매표소를 정면으로 보고 20m정도만 더 가면 돌담길이 나온다. 이 돌담길을 따라 걸어가면 창덕궁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을 ‘순라길’이라 부른다. 순라길은 조선시대 순라군들이 육모방망이를 들고 야간에 화재와 도적을 경계하느라 순찰을 돌던 길이다. 이 길의 한쪽은 주거지를 경계로 하고, 다른 한쪽은 종묘를 경계로 해 자연스럽게 조성된 공간이 그대로 길이 된 것으로, 원래는 너비가 2m에 미치지 못하는 흙길이었다.
▲ 경복궁돌담길

  1930년대 도시화로 인해 대형필지가 나누어지면서 들어선 집 건물 벽면과 종묘 담장이 이 작은 길의 윤곽이 됐다. 지난 1995년 종로구가 지금의 서순라길을 일방통행 1차로로 새롭게 정비했으며, 2006년에는 서순라길 입구 부분과 종묘 사이의 기존 주택들을 철거하고 공원이 새롭게 조성됐다. 순라길은 자연 발생의 골목길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역사문화탐방로'로 지정됐다.

 창덕궁을 따라가는 소담스러운 돌담길‘북촌길’

 ‘북촌 1경’은 북촌문화센터에서 나와 북촌 길 언덕을 오르면 나온다. 돌담 너머로 고풍스러운 창덕궁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북촌 2경’은 원서동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불교미술관과 연공방을 지난 골목 끝이다.한옥이 어우러진 멋스러운 골목길을 걸으며 가을을 흠씬 느낄 수 있다.

▲ 북촌길

 흙을 밞으며 거닐어 보는 산책길

 ◦인왕산 서울성곽길 교남동 바로 위쪽에 위치한 성곽으로 왕복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올라갈 때는 바깥쪽으로 내려올 때는 안쪽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생태학습장으로도 좋고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으며 서울 전망도 볼 수 있다. 또한 시대별성곽 축조방식을 알 수 있어 태조, 세종, 숙종 시절을 지나 현재 복원된 모습까지를 비교해 보면서 걷는 것도 재미있다.

▲ 낙산공원서울성곽

 낙산공원 서울성곽길,  이 길의 매력은 7,80년대의 향수를 느끼면서 하늘 위를 걷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달동네이기 때문이다. 동대문 성곽공원에서 출발해 성곽을 따라 걷다가 통문을 통해 이화동 달동네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집들의 낡은 지붕과 담벼락에 길에 늘어선 넝쿨은 지난날을 회상하게 한다. 이곳에서는 서울시 전경이 한눈에 다 들어와 하늘길이라고도 부른다.

 사직동 오솔길, 도심 속 오아시스인 이 길은 사직동주민센터에서 출발해 사직터널 쪽 오솔길과 연결된다. 이 길의 특징이라면 무엇보다 도심이지만 좁고 한적하며 조용한 길이라는 것이다. 좁은 길을 따라 걷다보면 마치 자연의 한 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가는 길에는 단군성전과 사직단, 성곽 등 유적지를 만날 수 있고 인접동인 교남동의 딜쿠샤, 홍난파 가옥과도 연결돼 있어 근현대사를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사직터널 바로 위로 나있는 연결로는 붉은 단풍이 바위틈으로 살짝 보이면서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장관을 연출한다. 또한 오솔길에는 일본인이 옛날에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적상가옥이 일부 남아 한옥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부암동 능금나무길에서 백석동천

 이 길은 곳곳의 드라마 촬영지와 도롱뇽 보러가는 생태탐방길로 이름나 있다. '내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네 집과 ’커피프린스 1호점‘ 한성이네 집 등 텔레비전 속에서 보던 곳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걷다 보면 하얀 바위가 선명한 북악산과 북한산의 매력적인 능선을 만날 수 있다.

 서울 한복판, 양반들의 별장가는 길
 
 석파정(石坡亭), 경복궁에서 상명대 방향으로 가다보면 자하문 터널을 지나자마자 왼편 언덕 절개지 위에 한옥 건축물이 보인다. 이것이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된 흥선대원군의 별장 ‘석파정’이다.
  원래 석파정은 조선 말 영의정 등 고위직을 지낸 김흥근이 경영한 별서로 한양 일원에서도 경관이 빼어나 경승지로 소문이 자자했던 곳이다. 이에 당대의 세도가 흥선대원군이 석파정을 마음에 두고 팔기를 청하였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는데, 급기야 흥선대원군은 석파정을 하루만 빌려줄 것을 청하여 허락을 받은 뒤 아들인 고종과 더불어 방문하기에 이른다. 이 사실을 접한 김흥근은 임금이 머물던 곳을 신하가 감히 다시 찾을 수 없다하여 이 별서를 흥선대원군에게 헌납했다는 이야기가 황현의 ‘매천야록’에 전해지고 있다.
  석파정 서북쪽 뒤 바위 앞면에 ‘삼계동’이라고 새겨진 글자가 있어 김흥근이 소유하며 살고 있을 당시에는 ‘삼계동정자’라고도 불렸다가, 흥선대원군이 이 별서를 차지한 뒤, 별서의 앞산이 모두 바위이므로 자신의 호를 석파로 바꾸었고, 또 정자의 이름도 석파정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 석파정

 부암동 안평대군 이용 집 터(무계정사 터)
 부암동은 예로부터 경치와 바위가 많아서 ‘동천’이 많다. 동천은 지금으로 따지자면 풍치가 좋은 곳을 말하는데, 그러다보니 왕실과 사대부들의 별장이 많다. 별장에 들러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옛 사람들의 풍류가 생각나고, 저절로 콧노래가 흥얼거려진다. 무계정사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호로 세종의 셋째왕자인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의 정자이다. 안평대군이 꿈에 도원(桃園)에서 놀고 나서 그곳과 같은 자리라고 생각되는 곳에 정자를 세우고 글을 읊으며 활을 쏘았다고 전해지며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유지 앞의 바위에는 한 쪽 면을 다듬고 그 윗부분의 가운데 큰 현판 모양으로 장방형 틀을 판 평면에 ‘武溪洞(무계동)’이라고 새겼는데, 이 글씨는 필적으로 보아 안평대군의 글씨로 추정된다.

  그는 도성의 북문인 창의문(彰義門) 밖인 이곳에 정자를 짓고 1만권의 장서를 갖추었으며, 또한 용산강가에는 담담정(淡淡亭)을 지어 이 정자들을 오가며 글 잘하는 선비들을 불러 모아 함께 시문을 즐겼다고 한다. 1453년(단종 1) 안평대군이 역모로 몰려서 사약을 받고 죽은 이후 이곳도 폐허가 되고 말았다.

 반계 윤웅렬 별서
  대한제국시기에 법부대신과 군부대신을 지낸 반계(磻溪) 윤웅렬(尹雄烈)이 당시 도성 안에 유행하던 성홍열을 피하기 위해 지은 별장으로 1905년 6월에 착공하여 1906년 3월 이전에 완공하였다. 자하문 고개 너머 왼쪽에 있는 계곡의 경사진 언덕에 석축을 쌓고 지었는데 원래는 2층의 벽돌조 건물 1동이었으나 1911년 윤웅렬이 사망한 뒤 그의 셋째 아들 윤치창(尹致昌)이 안채 등 한옥 건물을 더 지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높은 터 위에 행랑대문채가 있고 그 안에 사랑채와 안채가 있는 집이다.    대문채는 一자형으로 오른쪽 둘째 칸은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고, 사랑채는 방과 방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쪽에는 툇마루를 달았다. 안채는 행랑대문채의 동북쪽에 자리하고 있고,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건넌방과 안방이 배치되어 있다. 안방의 남쪽에 부엌과 방이 있으며, 사랑채와 안채의 옆면 뒷쪽에는 정원으로 출입할 수 있도록 내칸을 두었다.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안채와 정원이 잘 꾸며져 있으며, 전통 한옥건물에서 조금씩 현대화해가는 초기 과정의 특색을 보이고 있는 집이다. 

▲ 윤웅렬별서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는 곳
 인왕산 선바위, 선바위는 서울시 민속자료 제4호로, 인왕사 국사당 뒤편에 있는 두 개의 거석이다. 형상이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여 ‘禪’자를 따서 선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선바위는 높이 7~8m, 가로 1m 내외, 앞뒤 폭이 3m 내외로 두 개의 큰바위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형상으로, 바위 아래에는 가로 약 10m, 높이 70~80cm의 제단이 시멘트로 단장되어 있다.
  선바위는 일제가 남산에 있던 국사당을 선바위 곁으로 옮긴 뒤 무속신앙과 밀착하게 되었으며, 국사당은 무신당으로서 굿을 행하는 곳이니 바로 옆 선바위와 복합적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 선바위
 황학정,국궁의 장소 
  지금 황학정이 세워져 있는 곳은 오사정의 하나인 등과정이 있던 자리다. 오사정은 조선 전기부터 무인의 궁술연습지로 유명했는데, 갑신정변 이후 활쏘기 무예가 쇠퇴하자 많은 활터가 사라졌고 일제강점기에는 활쏘기를 금지했으나 황학정만 그 맥을 이어왔다. 대한제국 때까지 남아 있던 유일한 궁술연마장으로 지금도 이곳에서는 궁술행사가 열린다. 인왕산 밑자락으로 가을 단풍을 만끽하며 국궁의 참맛을 느끼기에 좋다.

▲ 황학정
 문묘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59호인 이 은행나무는 성균관대 근처에 있는 문묘(文廟)의 명륜당(明倫堂) 경내에 서 있는데, 임진왜란(1592) 당시 불에 타 없어졌던 문묘를 다시 세울 때(1602)에 함께 심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높이 26m, 가슴높이 둘레 12.09m에 이르는 웅장한 나무로 가지 발달이 왕성하고, 유주(乳柱)가 잘 발달되어 가을이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우리나라에서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19점에 이르는데 그 중 이 문묘의 은행나무는 유주를 잘 발달시키고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유주는 일종의 기근(氣根)이라고 믿어지는데 일본에서는 더 흔하고 그 발달도 현저하나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그러하지 못하다.

▲ 서울문묘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