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
  • 홍경찬 기자
  • 승인 2011.10.3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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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옥의 연출 50주년 100번째 작품, 대학로의 중심 한국공연예술센터에서

[서울문화투데이 홍경찬 기자]김정옥 연출작업 50주년 기념작품이자 100번째 연출작품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이 한국공연예술센터(이사장 최치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는 11월 23일 ~ 12월 11일까지 펼쳐진다. 

▲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
 올해 연출작업 50주년을 맞는 김정옥은 극단 자유의 예술감독을 겸하며 이론과 현장, 행정 경험을 두루 갖춘 연극계의 '큰어른'이다.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창설하고 1959년부터 1997년까지 예술대학원원장으로 재직하여, 후진양성과 연출작업을 지속해왔다. 또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과 국제극예술협회(ITI) 세계본부 회장 등을 역임했다. 올해 여든을 맞은 나이에도 소년과 같은 왕성한 창조력으로 무대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가 100번째 연출작품으로 선택한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은 월리엄 포크너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알베르 까뮈가 무대언어로 각색한 작품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세계적 문호인 두 작가의 공동 작업으로 탄생한 이 작품은, 1956년 까뮈의 연출로 프랑스에서 초연된 이후, 세계 각국에서 지속적으로 공연되어졌다.

 과거에 얽매여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는 백인여성 템플과, 그녀의 딸을 어쩔수 없이 살해하고 교수형을 선고받는 하녀 낸시에 관한 이야기가 추리극의 형식으로 펼쳐지는 연극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

 김정옥 선생은 100번째 기념작으로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로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이 다루고 있는 인간의 고통과 욕망에 대한 본질적 문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퇴색되지 않을 것이며, 희랍극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 정통 연극으로 인간 비극의 본질을 파헤치고 싶었다고 밝혔다.  
 
  김정옥은 1969년도 극단 자유의 제10회 정기공연작품으로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을 처음 선보여, <제6회 백상예술대상>의 연극부문 연출상을 받았으며 출연배우 박정자가 연기상을, 최연호가 미술상을 수상했다. 또한 <제6회 동아연극상>에서는 출연배우 최지숙이 여자 연기상 수상했다.

  2011년 김정옥 연출 50주년, 100번째 기념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 무대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무대예술의 대표적 장인이자 명배우 김성녀가 주인공 ‘템플’역으로 출연하며 오영수, 권병길 등 극단 자유 출신의 명품 연기자들과 이호성, 전국향 등 관록의 배우들이 출연한다.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은 20세기 미국 남부문학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명으로 칭송받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원작(1951년)으로, 인간의 죄의식과 그에 따른 책임 문제 등을 속속들이 파헤쳐 놓은 작품이다. 소설 <이방인(1946년)>, <페스트(1947년)> 등으로 역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알베르 까뮈는, 우리 시대 인간의 정의에 대한 까뮈 특유의 탁월한 통찰과 진지함으로 원작의 책임과 진실의 문제를 더욱 세심하게 다듬고 극적인 전개방식으로 각색, 희곡으로 완성했다.

  이 작품은 백인여자와 흑인 하녀 사이의 이야기다. 함께 사창가에 몸담았던 과거가 있으나 이젠 상류사회의 여인이 된 백인여성 ‘템플’이 그녀의 아기를 죽인 흑인하녀 ‘낸시’를 변호하기 위해, 파국을 불러일으킨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다.

 많은 부분이 등장인물들의 긴 대화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는, 섬세한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져 작품이 전개되는 내내 마음 졸이며 여 주인공 ‘템플’의 고백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극적 긴장감이 가득하다.

 마치 추리극 한편을 보는 듯한 이 연극을 통해, 윌리엄 포크너와 알베르 까뮈는 자기 자신을 위해 도덕과 정의를 저버리는 인간 본성의 추악함과, 백인들이 우월하게 흑인들을 지배하고 인간이 인간위에 군림하는 세습 혹은 그로 인해 야기되는 세상의 병폐를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낸시’의 절규와 더불어, 인간의 수치와 본성의 적나라함을 표출하는 ‘템플’의 장시간의 독백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초연당시 김정옥은 “정말 인간이란 이 세상에 고통을 체험하기 위해서 태어났는지 모른다. 그 고뇌야말로 세상을 밝히는 진정한 빛이라고 ‘낸시’는 외치고 있다. 그러나 그 아픔을 혼자서 견뎌야만 한다면 얼마나 처참한 일이냐” 라고 말했다. 그는 이 작품이 희랍극의 전통을 이어받은 작품이며 자유롭고 추상적인 공간에서 인간의 비극 본질을 파헤치고 싶었다고 밝혔다. 1969년 초연 공연 이후 반세기 가까이 흘렀지만,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이 다루고 있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퇴색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낸시’와 ‘템플’, 두 여주인공들에만 포커싱이 된 초연과 달리, 2011년 공연에서는 아픈 진실을 강요하며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스티븐스’와, 1930년대의 미국남부의 상류층 남성으로 도덕과 정의보다는 체면을 중시하는 초라한 가치관의 전형인 남편 ‘고완’의 역할도 세심하게 다룰 예정이다.

 올해 연출작업 50주년을 맞이한 김정옥은 한국 연극의 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을만한 연극계의 큰 어른이다.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창설하고 1959년부터 1997년까지 예술대학원장으로 재직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과 국제극 예술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 연극의 발전을 이끌었다. 특히 전 세계 연극기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영향력 있는 기구인 국제극예술협회(ITI)를 7년간이나 장기로 역임한 것은 실로 대단한 일로서 예술행정가로서 탁월한 업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그는 연출가로서도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불태웠다. 1961년 <리시스트라다(아리스토파네스 作, 이화여대 연극반)>를 시작으로 극단 자유를 창설하여 왕성한 창조력으로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켰다.  2011년 연극<흑인창녀를 위한 고백>은 그의 100번째 연출작으로서 1969년 한국 초연 이후 3번째 공연이다.

 한 연출가의 연출 50주년, 연출작품 100작품이라는 것은 세계 연극사에 유래가 없을 정도의 대 기록이다. 이 기록을 완성하는 작품으로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이 선택된 것은 이 작품이 근래에 보기 드문 정통연극으로서 인간의 원초적 심리를 심도 있게 파고든 수작이며, 흥미 있는 내용과 더불어 공연 내내 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문학적 깊이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대단한 작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