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마우스는 누구편? - (1)
미키마우스는 누구편? - (1)
  • 서문원 기자
  • 승인 2011.11.0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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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마우스와 월트 디즈니의 관계

이 기사는 3편으로 나눠 서술한다. 미키마우스 탄생 배경부터 제작자 월트 디즈니와 주변을 엮어봤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월트 디즈니와 만화주인공들, 이들의 출발은 소박했다. 그러나 만화영화사 규모가 대형화되고 경제위기, 노사갈등, 전쟁 등을 겪으며 점차 괴물로 변했다. 마치 얼굴은 미키 마우스인데 반해 속은 다른 괴물들로 채워졌던 것이다. 바로 그 이면을 파헤쳐 보고자 써봤다. 

1940년대에 나온 장편만화영화 '판타지아'는 적어도 이념과 속설을 넘어선 최고의 작품임에는 틀림 없다. 영화속 주인공 미키 마우스는 이 작품에서 선과 악 어느 편도 아닌 월트 디즈니 곁에 서성대며 그의 충실한 선전용품으로 완성됐다. 디즈니 월드에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익을 안겨준 마스코트다. 

덕분에 월트 디즈니 컴패니는 현재 ABC방송국과 ESPN스포츠, 월트 디즈니 픽쳐스와 영화제작.배급사인 터치스톤픽쳐스, 인기만화영화 '토이 스토리'1.2.3(1995)과 몬스터주식회사(2001), '니모를 찾아서'(2003) 등 유명 애니매이션을  제작한 픽사애니매이션 스튜디오. 이 밖에 세계적으로 14개가 넘는 디즈니 월드같은 리조트 위락시설을 보유한 세계 최대의 월트 디즈니제국으로 완성됐다.

현재 월트 디즈니 컴패니는 아울러 사우디왕가와 손잡고 아이폰의 애플社와 구글기업 주식을 대거 확보하고 세계 IT계마저 장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구글은 최근 모토롤라 휴대사업부문을 인수하고, 위기에 처한 핀란드 노키아社와도 대규모 딜을 준비 중에 있다.

월트 디즈니의 야심과 비전을 담은 '판타지아 '

우선 이들의 창립자인 월트 디즈니의 비전이자 역사랄 수 있는 '판타지아'부터 감상해보자. 월트 디즈니의 아메리칸드림은 결코 우연한 기회에 창조된 게 아니다. 이는 여러 역사적 관계와 보이지 않는 힘, 그 권력의 주체가 함께 작동되면서 미키 마우스 제국이 완성된 것이다.

아래 동영상은 월트 디즈니社의 대표적 애니매이션 판타지아 중 제3장에 해당되는 '마법사와 제자'(1940.11. The Sorcerer's Apprentice)다. 이 전의 월트 디즈니 애니매이션과 이 작품 상영뒤 월트 디즈니 애니매이션은 영화음악과 영화속 SF적 요소를 보다 더 구체화시키는데 크게 일조했다. 

                              

애니매이션 왕국 월트 디즈니의 상징은 미키 마우스와 도널드 덕, 구피 뿐만이 아니다.

지난 1937년 독일 그림형제(Jacob & Wilhelm Grimm)의 동화를 각색해 만든 디즈니 만화영화 일곱 난장이와 백설공주, 그 뒤 피노키오, 아기코끼리 점보, 신데렐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숙녀와 건달, 피터팬, 잠자는 미녀공주, 곰돌이 인형 푸우, 101마리의 달마시안, 아더왕, 로빈후드 등 셀 수없는 수많은 작품들이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의 눈을 지나갔다.

그러고보니 20세기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월트 디즈니가 만든 만화책과 영화를 보며 성장했다. 아무리 일본 애니매이션이 인기를 얻고, 유럽의 스머프 마을(벨기에)과 영국의 텔레토비 인형들이 아이들을 유혹했지만 美 디즈니에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캐릭터들을 이기지 못했다. 

애니매이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판타지아

                          

왼쪽은 장편애니매이션 '판타지아' 포스터다. 오른쪽 사진은 미키 마우스를 창안해낸 전설이 된 애니매이터 어브 아이웍스의 생전 모습이다. 연출보다는 스토리와 애니매이션 작업에 전부를 걸었던 인물이다. 독일계 미국인으로 자기 정체성이 모호했던 삶과 성격이 월트 디즈니 만화제작에 큰 도움이 됐다.

지난 1940년 상영된 장편 애니매이션 '판타지아'는 두 가지 특징이 존재한다. 그 중 하나는 미키마우스가 단순한 생쥐의 모습에서 현재 모습으로 바뀐 점. 다른 하나는 우화와 풍자를 소재로 한 애니매이션이 당시 주류였다면 '판타지아'부터는 기존 패러다임을 뒤집고, 진화론 이어 신화를 토대로 모든 연령대가 관람 가능한 영상물로 구성된 점이다.

내용을 보면 백악기와 그 이후 그리스 신화 인물을 묘사한 장면이 눈에 띈다. 현재 일본 애니매이션은 물론 현존하는 모든 SF영화들의 토대가 됐다. 아울러 '공감각'이라는 요소를 구현하고자 음악과 애니매이션을 십 분 활용함으로써 기존에 없는 유행을 선도했다. 판타지아는 당시는 대중들로부터 외면받았지만 그뒤 1980년대에 들어서야 대중들에게 어필됐다. 시대를 앞서간 셈이다.

당시 사고 방식으로는 월트 디즈니와 영화음악 담당자 레오폴드 스토코브스키(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가 제작한 판타지아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당시 평단은 찬반논란보다 거부감으로 가득한 비평이 쏟아냈다.

현대에 이르러 산업 매커니즘으로 이해되는 'The Sorcerer's apprentice'(미키마우스가 마법사 제자로 출연했던) 장면을 두고 당시는 파시즘으로 해석했고, 베토벤 심포니 6번 '전원'(The Pastoral Sympony) 부분은 현대로 와서 '목가적 분위기'라고 평한데 반해  당시는 비종교적 표현으로 이해했다.

특히 판타지아 종반부에 해당되는 '민둥산의 하룻밤'(Night On Bald Mountain, 러시아 무쏘그스키의 미완교양곡)은 당시 영화평론가들로부터 '기독교를 비방한 혁명적 영상'이라고 표현됐다. 혁명이라는 건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발상이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다.

창업자 월트 디즈니 다운 발상이라고 봐야한다. 그러나 위 영화상연뒤 관객들도 돌아서고 투자마저 끊기자  궁여지책으로 정부와 미군홍보물을 제작한다. 결국 제 2차세계대전 종전뒤 "월트 디즈니가 먹고살려고 반공주의자가 됐다"라는 설도 나돌았다. '회사內 스탭노조 때문에 반공이데올로기를 이용했다'는 기사도 보도됐다.

분명한 건 월트 디즈니가 2차 세계대전 중 성공가두를 달리게 된 원인으로 지난 1929년 헐리우드 진출 당시 유대재벌로부터 투자를 받은 대가로 전쟁과 군수산업에 집중하던 미국 정부측 홍보선전물을 제작했기 때문이다. 한편 월트 디즈니는 이념과 무관한 사람이다. 만화작가로 일을 하다가 영화제작을 하고, 이를 토대로 수익을 올리려던 사업가다.

어쨋든 월트 디즈니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었고, 그것은 정치.사회.문화 모든 것들이 망라된 또 하나의 세상이었다. 지금부터 61년전 1940년 11월부터 다음 해 1월까지 상영된 '판타지아'는 수많은 비판과 찬사를 뒤로 하고 흥행참패로 서둘러 막을 내렸다. 그러나 최근 DVD가 보급되고 각종 케이블채널로 방영되고부터  재상영이 이뤄지는 등 재조명 받았다. 

미키마우스의 탄생 

유명한 만화캐릭터 미키 마우스는 독일계 미국인 어브 아이웍스(Ubbe Ert Iwwerks 독일어로 우베 에어트 이베억스)가 창안해낸 작품이다. 독일인 같지않은 이름이지만 부모출생지가 네델란드와 독일 국경에 있는 니더작센州 항만마을로 크룸혼(Krummhoern, 현재 Uttum)이다.

이어 또 한 명의 독일인이 눈에 띄는데, 볼프강 라이터만(Wolfgang Reitherman)이다. 그는 바이에른州 수도 뮌센출신의 독일인으로써 유년기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뒤 성인이 된 1934년부터 월트 디즈니社에 입사하고 맡은 일이 바로 맨 위에 소개된 월트 디즈니 전 작품들이다.

초창기에는 윌프레드 잭슨의 'Music Land'(1935)에서 애니매이터로 활동했고, 지난 1940년 미키마우스가 출연하고 백악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역사와 배경음악을 위해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동원된 대작 만화영화 '판타지아'에 참여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자기정체성을 후벼파던 정글북

' 곰돌이 인형 푸우'와 '정글북'은 볼프강 라이터만이 연출한 대표작이다. 지난 1967년에 나온 '정글북'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진영간의 독주체제속에서 파생된 혼란상을 인도라는 낯설은 공간을 활용해 '동물과 인간'으로 엮어 다양한 스토리와 영상을 구현했다.
 
물론 이 부분은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