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제3회 문화대상 수상자 - ‘마임’ 유진규
서울문화투데이 제3회 문화대상 수상자 - ‘마임’ 유진규
  • 김민지 기자
  • 승인 2011.12.0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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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은 의미,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세상은 말로 가득하다. 본질을 위한다는 이유로 이런 저런 미사여구를 붙이고 해석에 해석을 더하다보면 어느 새 ‘진짜’는 보이지도 않고 결국 남는 것은 마구잡이로 풀칠해 붙여놓은 ‘말’들 뿐이다.

이런 속에서 조용히 ‘몸’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마임이스트 유진규이다. 국내 최고의 마임이스트로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그는 예술을, 낭만을 침묵의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가이다.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건국대학교 수의학과에 입학했지만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에 실망한 그는 마치 운명처럼 연극부에 들어가게 된다.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한다는 것에 매력을 느껴 학교를 중퇴하고 사회극단 ‘에저또’에 들어간다.

에저또는 사실주의를 거부하고 마임, 가두극, 해프닝 등의 전위적인 연극을 중요시 여기는 극단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당시 한국에는 없던 장르인 마임을 배우게 되고 마임이스트로서의 인생이 시작됐다.

한국의 거의 유일무이한 마임 예술가인 유진규는 한국마임협의회 회장, 춘천마임축제 예술감독, 유진규네 몸짓 대표 등을 역임하고 제39회 강원도문화상을 받는 등 이력도 화려하다. 그런 그가 <서울문화투데이 제3회 문화대상>을 수상하게 됐다.

- 이번 서울문화투데이 제3회 문화대상 수상 소감이 어떠신가요?

제가 춘천마임축제의 예술감독으로 상을 받은 적은 몇 번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마임장르를 개척해온 예술가로서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해 내심 섭섭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 공로를 처음으로 인정받아 기쁘기 짝이 없습니다. 상은 인정이며 인정받는다는 것은 역시 기쁜 일입니다. 이제 상은 잊어버리고 격려에 힘내면서 초발심으로 앞만 보고 나가겠습니다.

소리 없는 아우성, 표현은 소통이다.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해 연극을 시작한 그에게 마임이란 장르는 어쩌면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외로우리만큼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 모든 인물과 사물을 표현해야 하는 고독한 작업 속에서도 그는 그것이 오히려 삶과 더 가까운 모습이라 인식하게 된다.

언어를 배제한 완벽한 무성의 공간 속에서 몸의 움직임만으로 삶을 더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어린 유진규가 마임에 빠진 이유였다.

- 다른 예술도 마찬가지겠지만 마임은 특히 인간의 신체를 사용해 그 의미를 전달하는 의미에서 관객과의 소통, 타인과의 소통이 대단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예술은 혼자 행위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있는 행위입니다. 소통하기 위한 방법은 수도 없이 많이 있지만 예술가들은 늘 자기만의 새로운 소통에 대해 고민합니다. 세상에 새로운 것이 있겠습니까? 다 아는 이야기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로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누가 예술은 사기라고 얘기 했는데 그 말이 생각납니다.

-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마임은 한국의 대중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장르인 것 같습니다.

마임 뿐 아니라 모든 현대 예술이 같습니다.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대중예술입니다. 마임에도 판토마임, 어릿광대, 저글링 등 대중적인 마임이 있습니다.

어느 장르나 주관적인 순수 예술로 들어가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기 어렵습니다. 마치 산속의 깊은 샘물을 마시러 오는 사람이 많지 않듯이 말입니다.

예술과 소통은 짐짓 합일을 볼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둘이 불가분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기에 마임이스트 유진규는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것은 고독한 작업이었다. 그가 돌연 마임 공연을 접고 춘천으로 향한 것은 80년대 당시의 시대적 고민과 작품의 한계 등 때문이었다.

춘천에서의 삶, 그러나 몸짓은 계속됐다

수의학과에 진학할 정도로 동물을 좋아했던 그가 시골로 가 선택한 것은 축산업이었다. 하지만 농촌 생활은 쉽지 않았다. 외지인에 대한 텃세도 심했고 때로는 골탕을 먹기도 했다. 심지어 수입소 파동이 일면서 그는 시골생활을 접고 카페를 열어 예술가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무대로 돌아온 게 88년이었다. 그런 그에게 춘천이라는 곳은 단순히 추억의 일부만은 아닌 듯 했다.

- ‘춘천’과 ‘춘천마임축제’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춘천은 1981년 마임 배우에서 소 키우는 생활인으로 삶을 전환하기 위해 선택한 장소입니다.

춘천마임축제는 그러한 생활을 8년간 한 뒤 다시 마임의 현장으로 돌아오면서 마임 부흥을 위해 시작한 예술 운동입니다. 모두 제 삶의 중요한 분기점입니다.

춘천에 뿌리내린 마임은 유진규의 고뇌의 결정체였다. 마임이라는 장르의, 유진규 본인의 존재에 대한 고뇌와 위기의식이 마임페스티벌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죽기 살기로 매달리다’라는 말은 그 당시의 유진규와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이미 ‘춘천마임축제’가 확고부동하게 자리매김한 지금의 시점에서도 그는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시 새로운 도전에 몸을 던졌다. 바로 ‘유진규의 빨간방’과 ‘하얀방’이다. 이는 설치공연으로 제도적 틀에 묶인 기성 예술을 넘어 8시간 동안 지속가능한 공연을 실험하는 등 그동안 시도되지 않았던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계획이었다.

특히 ‘공연은 왜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관객을 모아놓고 해야 하는가’라는 공연 자체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던지는 파격적인 무대였다.

- 이미 빨간방, 하얀방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셨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공연들에 대한 계획이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늘, 공연은 어떤 것인가? 질문하면서 부정의 부정을 거듭하던 저의 작업은 최근에 극장을 떠난 새로운 개념의 설치공연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연극이 소설이라면, 마임은 시(詩)이다.”

2008년부터 시작한 방 시리즈는 무대, 관객, 배우가 없는 공연, 누구를 보거나 누가 보아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을 보는 공연으로 자각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시리즈인 까만방이 올해 12월 말 춘천에서 초연을 갖고 내년 8월에 인사아트센터에서 본격적으로 설치, 공연됩니다.

마지막에서 와서야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대체 마임이 뭐냐고. 어린 시절 유진규의 마음을 흔들고 확고부동한 자리에 오른 그에게 아직까지도 고민을 던지고 도전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의 대답은 명확하고 확고했다.

- 마임이란 무엇일까요?

마임은 움직임에 관한 예술입니다. 모든 움직임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 움직임의 본질적인 의미를 이미지로 변환시켜 다시 움직임으로 보여 주는 것이 마임이라고 생각합니다.

- 마임이스트 유진규는 어떤사람일까요?

나를 바라볼 때 한쪽으론 매너리즘에 빠진 모습이 보이고, 다른 한 쪽으론 생명줄을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이 보입니다.

나는 살아 나간 다는 것이 반복 행위가 아니라 안 했던 일을 해 나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나는 그러한 믿음이 행동으로 옮겨지길 바랍니다.

김민지 기자 press@sctoday.co.kr